[철학] [현대철학자들 3] : 소쉬르 (1)
본문
3. 소쉬르(1857-1913)
(1) 도대체 ‘데카르트적’이란 어떤 의미일까?
내가 아는 단순무식형 남편인 J씨가 와이프한테 이렇게 말했다. “넌 내 로봇이야!” “내가 정한 룰대로 넌 따라와야 한다”는 뜻이다. 이 때 J씨는 지극히 데카르트적이다. J씨를 인간의 정신․의식․자아(뽀대나는 말로 주체)라고 하고, 와이프를 자연․세계․사물(뽀대나는 말로 대상)이라고 하면 그야말로 딱이다. 데카르트의 후예들인 실증주의자들과 교만한 과학자들은 이를 자신들의 신념으로 받아들였다.
* 이제부터 ‘주체’라는 말에 익숙해지자. 철학하는 작자들이 원래 어려운 말만 골라서 쓰니까.
자연이란 자연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과학적으로 파악되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파악되지 않는 것은 자연이 아니라, 무릉도원이나 유토피아다. 그런 건 신화의 세계에나 속한다. 만약 그런 신화 같은 자연, 즉 과학이 판명할 수 없는 자연을 믿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근대인들은 어떻게 했을까? 죽이거나, 감옥에 넣거나, 정신병원에 가두었다.
* 시애틀 추장의 연설문을 보면 서양 근대인들의 자연관이 얼마나 오만과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지 알 수 있다. 여기 시애틀 추장의 연설문을 요악해 본다.
“우리가 땅을 팔지 않으면 백인들은 총을 들고 와 빼앗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하늘을 사고팔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대지의 온기를 사고판단 말인가? 신선한 공기와 재잘거리는 시냇물을 어떻게 소유할 수 있단 말인가? 소유하지 않은 것들을 어떻게 저들에게 팔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대지의 일부분이며 대지 또한 우리의 일부분이다. 들꽃은 우리의 누이고 사슴 말과 얼룩독수리는 우리의 형제다. 바위투성이의 산꼭대기, 강의 물결과 초원의 꽃들의 수액, 조랑말과 인간의 체온, 이 모든 것은 하나이며 모두 한 가족이다. 시내와 강에 흐르는 반짝이는 물은 우리 조상들의 피다. 백인들은 어머니 대지와 그의 형제들을 사고 훔치고 파는 물건과 똑같이 다룬다. 그들의 끝없는 욕심은 대지를 다 먹어치우는 것도 모자라 끝내 황량한 사막으로 만들고 말 것이다. 인디언들은 수면 위를 빠르게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을 좋아한다. 그리고 한낮의 소낙비에 씻긴 바람의 향기와 바람이 실어오는 잣나무 향기를 사랑한다. 나의 할아버지에게 첫 숨을 베풀어준 바람은 그의 마지막 숨도 받아줄 것이다. 바람은 아이들에게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 준다. 생명의 거미집을 짜는 것은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그 안의 한 가닥 거미줄에 불과하다. 생명의 거미집에 가하는 행동은 반드시 그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한 부족이 가면 다른 부족이 오고, 한 국가가 일어나면 다른 국가가 물러간다. 사람들도 파도처럼 왔다 가는 것이다. 언젠가 당신들 또한 우리가 한 형제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쯤만 했을까? 천만에. 아예 그런 인간들이 생겨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소위 ‘의무교육’이라는 것을 만들어, 과학적 사고를 주입시켰다. “아이야, 산타클로스나 루돌프 사슴은 없단다. 넌 이제 그런 걸 생각할 나이가 지난 거야.” “아이야, 이 개구리를 해부해 봐, 재미있지 않니? 이 세상 모든 자연물은 우리가 해부해서 진리를 밝히기 위한 재료란다.” “그 재료들은 우리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단다.”
이제 자연의 본질은 없어졌다. 과학의 본질에 입각해 새로운 자연이 세워졌다. 마치 빌딩이나 실험실이 세워지듯이. 그리고 근대인들은 그 빌딩 속에서, 실험실 속에서 살게 된 것이다. 서양의 근대인들이 사는 공간은, 동양인이나 근대 이전의 서양인들이 살던 공간이 결코 아니다. 아주 단순화된 공간, 아주 밀폐된 공간, 아주 고립된 공간이었다. 결코 미학적 공간이 아니었다.
* 알퐁소 도데의 「별」의 마지막 장면을 생각해 보자. 유성 한 줄기가 스쳐간다. 스테파네트가 저게 뭐냐고 목동에게 묻자, 목동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영혼’이라고 대답한다. 스테파네트는 목동 어깨에 기댄 채 잠든다. 목동은 생각한다. “저 숱한 별들 중에 가장 빛나는 별님 하나가 그만 길을 잃고 내 어깨에 내려앉아 고이 잠들어 있노라”고. 이 순수한 영혼의 목동, 근대 교육으로 근대정신으로 무장되지 않은 목동이 근대인들의 살벌한 공간 중에서 있어야 할 곳은 다름 아닌 ‘정신병원’인 것이다.
-
[인문학] [밑줄쫙-문화] 한(恨) : 한국과 아일랜드2015-04-16
-
[인문학] [밑줄쫙-문학] 내 인생의 겨울 연가 : 플랜더스의 개2015-04-15
-
[인문학] [밑줄쫙-철학] 침묵 : 아기의 침묵과 노인의 침묵2015-04-15
-
[인문학] [밑줄쫙-철학] : 행복의 쓰임 하나 : 언론의 폭력으로부터의 자유 및 관대함2015-04-15
-
[인문학] [밑줄쫙-역사] 역사 : 생물학의 한 조각2015-04-09
-
[인문학] 해방 후 3년 동안의 짧은 역사에 대한 소회2015-04-08
-
[인문학] [많이 나아진 문장 1] 함께읽기의 즐거움 : 신영복 교수의 경어체2015-04-07
-
[인문학] [밑줄쫙-문학] 기록하는 자 : 엄마의 가계부2015-04-06
-
[인문학] 김남일은 시인 신경림의 어린 시절 한 토막을 이렇게 아름다운 언어로 형상화했다.2015-04-06
-
[인문학] 앞에서 소개한 문장이 왜 안 좋은 문장인지 점점 깨닫기 시작하면서,저는 이런 문장을 쓰게 되었습니다. 뭔가 더 나아진 느낌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런 느낌을 받지 못하신다면, 제가 슬플 겁니다.2015-04-04
-
[인문학] 힘들겠지요. 잘 쓴 글을 보면서, 눈을 정화하세요. 그냥 두면 합병증 생깁니다.2015-04-04
-
[인문학] 뭔 소린지 저도 잘 모르겠네요. 지금 보면 어지러워질 뿐이에요. 문법구조가 틀리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복잡하게 써 보자고 작정한 문장 같네요. 우습네요.2015-04-04
-
[인문학] 왜 안 좋은 글인지 잘 설명해 줘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가 지금 다시 이 테마로 글을 쓴다면? 죄송하지만, 이 테마로는 글을 쓰지 않을 겁니다. 제 능력을 넘어요.2015-04-04
-
[인문학] 한 15년 전에는, 제가 이런 글을 썼습니다. 지금 보니, 어떻게 이런 글을 썼는지 끔찍하네요. 여러분들은 이렇게 쓰면 안 됩니다. 안 좋은 글을 왜 올리냐고요? 유시민의 을 읽고 나니, 글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올렸습니다. 이렇게 쓰면 안 된다는!2015-04-03
-
[인문학] 베레비는 또 이렇게 말했죠. "인간은 서로 비슷한 사람들과 한패가 되는 게 아니라, 한패가 되고 나서 비슷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정곡을 찌르는 말 아닌가요?2015-04-01
-
[인문학] 가 보지도 들어 보지도 못한 교회 사진을 이렇게 올리며 갈릴레오의 참회성사를 여러분들께 소개할 수 있는 인터넷이라는 존재가 은혜라면 은혜겠다는 생각이 듭니다.2015-03-27
댓글목록1
아온님의 댓글
과학을 그렇게 미워하지 마시오. 현대과학의 발전은 철학과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다오.근원 물질은 형체도 모호한 쿼크가 되었고 전자는 확률로서만 존재하며
관측론에서는 관측의 주체와 객체는 모호하고. 정보는 물리학적 양이 되었다오.
과학은 철학의 도구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