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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좋은 글 1] : 철학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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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 개혁의 원대한 포부나 이상을 품고 계발되었든, 단순히 훌륭한 이론 체계를 구축하는 유희의 결과물이었든, 철학이 단순한 지적 성찰 이상의 일을 해 온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라톤 이래의 철학자들에 대한 비아냥 섞인 평가들은 수 없이 있어 왔고, 이는 실제적 유용성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이루어져야만 철학 행세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현학성에 대한 냉정한 평가일 것이다. 하지만 플라톤의 정치 프로그램이나 데카르트의 코기토, 루소의 사회 계약설에서 헤겔, 마르크스의 역사 철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철학들이 단순히 유토피아론에 그쳤다고 볼 수 있을까?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고 하는 지극히 개인적 인식 차원에서 촉발될지라도 철학은 단순한 지적 만족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인간과 세계를 변화시키는 실천적 힘을 지니고 있다. 이는 데카르트가 근대를 열었다느니, 루소가 프랑스 혁명에 지대한 역할을 수행했다느니, 마르크스가 20세기의 세계 질서를 혁명반혁명으로 대립 구도화했다느니 하는 구체적 사실(史實)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철학의 작업이, 인간이 타인과 세계 전체와 맺는 관계에 대해, 인간 자신의 역사와 그 결과물에 대해 자의식을 가지는 것에서 출발했다는 점에 대해 합당한 평가를 내림으로써, ‘하루 일과를 마친 후 하늘로 날아 오르는 새라고 하는 비유용성의 유용성을 발견해야 할 것이다.

    물론 과학과 기술의 구체적 성과물 앞에 세계는 그 기본틀 자체가 변화되어 왔고, 인간의 사고나 구체적 생활도 그 변화의 자장(磁場)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근대 이후 대부분의 영향력 있는 사상가들이 실상은 과학자들이자 동시에 기술 혁명의 이론가들이었음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학과 기술의 막대한 힘이 철학 담론과는 무관하다 할 만큼 세계 변화의 실제적 행동 양식이었음은 한 마디로 재론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를 해석하고 변혁시키려 했던 철학적 담론들이 기어코 유토피아론으로 전락하고 말아야 하는 것일까?

    결코 그럴 수는 없을 것이요, 그렇게 될 수 없을 만큼의 실천력을 우리는 철학에서 발견해야 할 것이다. ‘유토피아론은 항상 가능성에 대한 강력한 동경이자 모색이지, 단순한 지적 놀음이 아니다. 일단 일정한 틀로 세계를 변화시켜 놓으면 무의식적으로, 즉 자의식이 감지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에 종속되는 과학과 기술력에 비하면 오히려 적극적 실천이다. 세계는 바꾸어야 할 구체적 존재이기도 하지만 변화가능성의 추상적 양태이기도 하며, 그 가능성에 늘 깨어 있는 철학적 담론의 실천력은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 ‘하늘로 날아 오르는 새는 그저 한가로이 세상을 날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새 세상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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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변태님의 댓글

한 15년 전에는, 제가 이런 글을 썼습니다.
지금 보니, 어떻게 이런 글을 썼는지 끔찍하네요.
여러분들은 이렇게 쓰면 안 됩니다.
안 좋은 글을 왜 올리냐고요?
유시민의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을 읽고 나니,
글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올렸습니다.
이렇게 쓰면 안 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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