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가죽나무 : 도종환
 
                    
                                2014-10-04 12:42
                                21,980
                1
                                0
                                            
        본문
나는 내가 부족한 나무라는 걸 안다
내 딴에는 곧게 자란다 생각했지만
어떤 가지는 구부러졌고
어떤 줄기는 비비 꼬여 있는 걸 안다
그래서             대들보로 쓰일 수도 없고
좋은 재목이 될 수 없다는 걸 안다             
다만 보잘것없는 꽃이 피어도
그 꽃 보며 기뻐하는 사람 있으면 나도 기쁘고
내 그늘에 날개를 쉬러 오는 새             한 마리 있으면
편안한 자리를 내주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내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하는 사람에게
그들의 요구를 다 채워줄 수 없어
기대에 못 미치는             나무라고
돌아서서 비웃는 소리 들려도 조용히 웃는다             
이 숲의 다른 나무들에 비해 볼품이 없는 나무라는 걸
내가 오래전부터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 한가운데를             두 팔로 헤치며
우렁차게 가지를 뻗는 나무들과 다른 게 있다면
내가 본래 부족한 나무라는 걸 안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누군가 내 몸의 가지 하나라도
필요로 하는 이 있으면 기꺼이 팔 한 짝을
잘라 줄 마음 자세는             언제나 가지고 산다             
부족한 내게 그것도 기쁨이겠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가죽나무일 뿐이기 때문이다 
                                
                    0
                
                                            
             로그인 후 추천 또는 비추천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1
마루밑다락방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