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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사] 발해 8 : 11대 대이진 왕과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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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이진 왕 이후 부터는 시호를 모른다.

발해왕의 시호를 기록한 신당서의 발해국기가 대이진 왕 시기에 작성되었고, 

그 이후의 문서에는 시호가 기록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이진 왕은 선왕 대인수의 손자로, 아버지 대신덕이 일찍 죽어, 할아버지의 뒤를 이었다.

아들들을 당나라에 수차례 파견하는 등 당의 문화를 적극 수용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5경15부 62주로 이루어진 행정구역의 확정과 중앙집권적인 행정 제도를 확립하였다.

발해를 율령제국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고 군사 기구를 발전시켜 모병제에 의한 상비군을 편성하는 등

할아버지의 업적을 발판 삼아 발해를 크게 융성시켰다.

인구도 발해 역사상 가장 많은 약 300만이었다고 한다.


이때가 발해의 최전성기였을 것이나 기록이 별로 없다.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장성한 아들이 여럿 있었는데 동생 대건황이 뒤를 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12대 대건황 왕... 14년동안 왕위에 있었는데 당과 일본에 사신을 보낸 기록 말고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13대 대현석 왕... 대건황 왕의 아들이고, 재위기간이 24년이다.

24년 동안 뭔 짓을 했는지, 이때를 기점으로 중앙귀족들의 권력투쟁이 심해지는 등 발해에 망조가 들기 시작하였다.

발해사에는 누락된 왕이 많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이 기간 동안  여러 왕이 교체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대인수, 대이진, 대건황으로 이어진 60 여년, 이 평온과 영광의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14대 대위해 왕... 재위 기간이 12년인데 알려진 바가 발해왕 중 가장 적다.

누락되었다가 20세기에 등재가 되었는데, 누구의 자식인지, 언제 즉위하였는지도 모르고,

다음 대, 대인선 왕과의 관계도 확실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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