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사용에 대한 인식 차이: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자아의 문제?
- 문화심리학이 보여 주는 '자아의 경계'와 AI 시대의 인간 이해
요즘은 좋은 쪽으로건 나쁜 쪽으로건 'AI'가 꽤 논란거리입니다.
특히 국제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다 보면 AI에 대해 꽤 부정적이거나 배타적인 반응을 보이는 분이 많고 때로는 그런 분들이 주도권을 쥐고 여론을 형성하기도 합니다.
물론 사람마다도 다 의견이 다릅니다만, 그 속에서 약간의 경향성이 보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서 유럽 주류국가들에서 AI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조금 더 짙은 것 같습니다. 반면 유럽 안에서도 비주류 국가와 유럽 주류국가와 비슷한 정서를 가질 것 같은 미국에서는 부정적인 인식이 조금 옅고 오히려 실용적인 시각이 조금 더 높다는 연구들이 많습니다.
미국 역시 독립적 자아관의 뿌리를 갖고 있지만, 개척자 정신·자본주의적 실용주의·엔지니어링 문화가 침해에 대한 경계심보다 효율성과 유용성을 앞서게 만든 반면, 유럽 주류 국가들은 인간 중심주의(Humanism) 역사와 주체성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철학적 전통이 더 강하게 작용했을 수 있다고도 봅니다.(물론 유럽이 그렇듯 미국도 넓다 보니 지역에 따라 편차가 꽤 있다고는 합니다만,···)
반면 아시아 국가들에서는 비교적 실용적 인식이 높은 편이라고 합니다.
특히 유럽 주요 국가의 경우에는 일찌기 기술 혁명의 혜택을 많이 본 나라 임에도 AI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 또한 깊다는 것도 조금 아이러니 하기는 합니다.(물론 그렇게 보자면, 산업혁명 뒤 기계파괴운동이 가장 격렬했던 곳도 산업혁명이 가장 먼저 일어나고 영향을 받던 영국이었다는 것도 아이러니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만,··· ^^;)
이렇게 가장 먼저 기술혁명을 경험했고 혜택을 봤던 사회에서 왜 AI에 대한 거부감이 더 강하게 나타나는가 하는 역설이 저에게는 흥미로운 질문이었습니다.
과연 그 이유가 뭘까요?
스스로는 사람을 대체한다거나 일자리를 뺏는다거나 인간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등의 이유를 대지만 그러한 불안은 다른 유럽 나라들과 미국이나 심지어 아시아 국가들도 걱정하고 있는 바이고 영향을 받는다면 그 양상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국은 ‘기술’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AI를 이용한 결과물에 대해 유럽 주요국가 구성원들이 주류인 기술 기반 커뮤니티에서 특히 이런 관점이 널리 퍼져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활동하는 덜 알려진 기술 기반 커뮤니티는 물론이고 심지어 레딧 등에서는 이런 경향이 꽤 강해서 번역조차도 LLM을 쓰지 말고 일반 번역도구를 쓰라고 요구할 정도입니다.(그런데, 세상에는 인도유럽어족과 비슷한 언어만 있는 것이 아니며, 어떤 언어는 표현 방식이나 정서가 사뭇 달라서 맥락이나 배경 설명없이 번역을 하면 뜻이 온전히 전달이 안 되는 걸 어쩝니까!)
그런 점에서 자기 중심적 자아 테두리 밖의 다른 가능성을 전혀 인정하지 못했던 과거의 사고방식과 닮아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심지어 그 중에는 일부라도 AI의 도움을 받아 글을 쓰는 사람에 대해 “스스로 생각을 못하나”라거나 인간성 혹은 인간의 창의성을 모독한 것처럼 여기거나 AI를 (일부라도)이용한 결과물은 그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태도 같은 것도 보입니다.(물론 좀 극단적인 경우로 이것 자체를 사회적인 인식으로 볼지 개인의 성향 차이로 봐야 할지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이 문제를 두고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보다 보니, 어쩌면 이것이 단지 ‘AI’나 ‘기술’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인이나 동아시아인-제가 확신할 수 없어서 거론하지 않는 것이지만 어쩌면 동남·남아시아인이나 그 밖의 문화권에서도 그런 곳이 더 있을 것 같습니다.-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나라는 것’을 구성하는 요소를 꽤 폭넓게 보는 편입니다.
‘나라는 것’은, 자라오면서 어버이[부모님]로부터, 스승으로부터, 벗으로부터 그리고 수많은 존재로 부터 영향을 받고 배우며 형성되어 온다고 여깁니다.
그것이 비단 물리적인 ‘누구’ 뿐만 아니라 책 한 권 혹은 문장 한 줄에, 음악 한 곡에, 시 한 편에서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나와 직접 관계가 없더라도 어떤 사람에게 감화를 받고 그 사람의 의식을 받아들였다면 나 역시 그 사람의 체계의 일부라고 느낍니다. 내가 그 사람의 의식 세계에 편입이 되거나 혹은 내 속에 그 사람의 의식 일부가 들어온 것이 아니라 그냥 서로 보이지 않지만 끈끈한 연결관계로 엮여 있다고 느낍니다.
또는 다르게 표현하면, ‘나라는 것’과 ‘나 아닌 것’ 사이에서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애초부터 ‘나라는 것’이 따로 있지 않았고 그것이 형성되어 온 과정은 수많은 영향 속에서 ‘나라는 것’이 형성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를 설명할 때 거의 항상 ‘관계’를 설명합니다.
반면 어떤 문화권에서는 ‘나’를 직접적으로 내세우지 않는-? 못하는?- 것을 주체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혹은 ‘내’가 ‘나 아닌 것’에 영향을 받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거나, 부정적으로 까지 보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아무리 영향을 받아도 본연의 ‘나’는 여전히 유지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종종 동아시아의 완곡화법을 신념이 약하거나 주체성이 모자라는 것으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인식권역에 따라 다른 인식 차이를 보여주는 실험 : 가운데 사람은 행복한가 하는 인식 차이
이러한 차이는 여러 문화심리학 연구에서도 반복해서 확인되었습니다.
사람의 표정을 읽을 때 주변 맥락을 얼마나 함께 고려하는지 비교한 마스다 다카히코 교수의 연구, 어항 속 물고기를 관찰하며 중심 대상과 배경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살펴본 리처드 니스벳과의 공동 연구, ‘나는 누구인가’를 기술하게 했을 때 관계 중심으로 설명하는 문화와 개인 특성 중심으로 설명하는 문화의 차이를 밝힌 Markus & Kitayama, Cousins 등의 연구, 그리고 심지어 fMRI를 이용해 ‘나’와 ‘어머니’를 처리하는 뇌 활동까지 비교한 Zhu 등의 연구는 모두 문화에 따라 자아와 관계를 인식하는 방식이 상당히 다를 수 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물론 이것만으로 문화권마다 AI에 대한 태도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경제적 이해관계, 제도, 산업 구조 등 다양한 요인이 함께 작용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다만 문화심리학이 보여준 ‘자아의 경계’와 ‘관계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왜 같은 기술을 두고도 어떤 사람은 인간성에 대한 침해로, 또 어떤 사람은 자연스러운 사고의 확장으로 받아들이는지를 이해하는 중요한 틀이 되어 줍니다.
어쩌면 지리적·국가적 경계로서의 문화권보다, 자아와 환경을 바라보는 인지적 패러다임으로서의 ‘인식권역’이라는 틀로 바라볼 때 이 현상이 더 명확해지지 않나 싶습니다.
즉, 어떤 인식권역에서는 ‘나 아닌 것’의 영향을 자아에 대한 침해로 보지만, 다른 인식권역에서는 이를 자연스러운 관계의 연장선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물론 ‘AI’라는 것이 기존의 어떤 연장보다도 독특하고 독보적이며 강력하다는 점에서 AI에 대한 우려나 부정적 시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이러한 고찰을 통해 어느 한쪽의 시각을 고치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AI’라는 거대한 ‘현상’을 통해서 우리 세상을 돌아보고,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되짚고 나아가 우리의 기존 철학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고, 그럴 수만 있다면 ‘AI’가 단지 기술혁명이 아니라 우리 삶, 철학, 의식 전반의 혁명으로도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울러 이런 성찰을 통해 ‘AI’를 타자적인 존재로서, 위협적인 존재로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서로 공존할 수 있는지를 살피고, 이런 공존이 결국에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는 방향이 되도록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부디 인간이 겸허함과 포용 정신 그리고 인간 만의 지혜를 발휘해 주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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