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일반

몽골의 정복전쟁 :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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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의 비밀을 가진 사나이 주치가 만악의 근원이었다.

징기스칸은 공처가 수준의 애처가였으므로 볼테가 난 자식은 다 자기 자식이라고 받아들였고 차별없이 키웠으나..

숫놈의 본능은 어쩔 수 없어서 성장한 이후에는 이런 저런 차별로 주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마음을 다친 주치는, 정복지에 칩거하여 몽골 본토 출입을 거의 하지 않았다 하는데...

그로 인하여 반역의 의심까지 받았으나 징기스칸 보다 6개월 먼저 사망하는 바람에 의심이 풀렸다고 한다.

의심은 풀렸으나 대신에 암살설이 대두하여 이래저래 논란이 되었다.

주치의 이런 콤플렉스는 대를 이어 바투에게 상속되었다.

 

징기스칸 사후 바투는 후계자에서 배제되었고 사촌들의 멸시와 조롱을 받았다.

어버지에 이어 상처를 받은 바투는 이후 독자노선을 걷게 된다.

징기스칸의 조치로 몽골군의 숫자를 늘릴 수 없던 바투는 다양한 유목민들을 받아들여 군대를 확충하고

징기스칸의 뒤를 이은 오고타이에게 서유럽 정벌을 건의한다.

동쪽 본토는 인연이 없는 땅이니 서쪽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싶었는지 모르나 이로 인해 러시아엔 벼락이 떨어졌다.

오고타이는 바투의 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아들 구육과 카단, 카단의 아들 카이두,툴루이의 아들 몽케, 차가타이의 아들 바이다르와 손자 부리, 징기스칸의 4구중 한 명인 수부타이를 파견하는 등 적극 지원에 나선다.

바투한테 미안하긴 해서 그랬는지 불쌍해서 그랬는지....

 

1236년에 시작된 원정은 볼가강을 건너 불가리아로 침입하였고 킵차크 대초원을 정벌하였다.

이후 러시아 공국의 라잔,콜롬나,모스코바, 블라디미르등의 도시와 크림반도 우크라이나, 폴란드, 헝가리에 이어 오스트리아 근방까지 점령하였다.

유럽에 최강의 황색 공포가 군림한 것이다.

그런데 원정 도중 오고타이가 죽었다.

왕족과 장수들은 쿠릴타이에 참가하기 위해 당연히 귀국하였고...그 동안의 정복지는 바투 차지가 되었다.

가봐야 대칸위는 고사하고 멸시나 받을게 뻔하므로 실속이나 차리려고 남았는지는 모르나 현명한 선택이었다.

귀국하는 놈들이 지들이 끌고온 전사들은 다 데리고 갔을 것이므로 남은 군사만으로 전쟁을 계속하는 것은 무리다.

그래서 유럽은 몽골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나 바투가 둥지를 튼 러시아는 지옥이되었다.

바투는 자기 영역을 독립적으로 운영하였고 킵차크 한국이라 불렀다.

바투와 사이가 나빴던 3대 칸 구육이 열받아 정벌을 하려하였으나...

얘도 지 애비를 닮았는 지 명이 짧아 충돌 직전에 죽어버리고 만다.

구육이 죽고나자 바투를 견제하거나 무시할 수 있는 세력은 없었고...

바투는 거물이 되어 있었다.

바투는 쿠릴타이에 참가하여 오고타이의 자손들을 찍어누르고

톨루이의 자식인 몽케를 대칸위에 올린다.

대칸이 된 몽케는 알아서 밉상인 놈들을 모조리 잡아 죽이고...바투가 얼마나 통쾌했을까?

세력도 약한 주제에 정적을 모조리 숙청한 몽케는 바투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고 공동 통치의 형태를 취한다.

그래서..바투는 거의 독립했다.

 

몽골과 러시아의 첫 전투는 1224년 제베와 수부타이가 이끈 몽골군이 호라즘의 모하메드 2세를 쫒을 때 일어났다.

칼가강 전투에서 8만의 러시아,쿠만 연합군이 수보타이와 제베가 이끈 2만 몽골군에게 가볍게 격파당하였고
뒤를 이어 키예프 러시아군이 공격을 했지만 얘들도 초전에 박살나는 것은 물론

잔여 병력이 진지에서 죽을 각오로 싸웠지만 몰살되었다....징기스칸 생전에 일어난 일이다.


1236년 본격적인 유럽정벌이 시작되었다.

제일 먼저 불벼락을 맞은 라잔은 주민전체가 합심하여 극렬히 저항하였으나 결과는 몰살이었다.

블라디미르 공국은 겁도 없이 항복을 권유하는 사신을 죽였다가 일주일 만에 정복당하였고 영주 유리 2세는 가족과 함께 참혹하게 죽었다.

모스크바 공국은 몽골군이 기만작전을 써서 가볍게 함락시키고 대량살육...쩝

모스크바를 초토화시킨 후 수즈달리로 진격하여 우아하게 건설된 궁전을 파괴하고 수공업자들을 왕창 포로로 잡았고..
노보고르드 공국은 땅이 질척거려 패스.. 나중에 항복을 받았다.
키예프도 함락시켰는데 이 때 왕이 도망가는 바람에.. 얘 잡으려다 폴란드까지 공격하여 볼레슬라브왕까지 죽였다.

이때 키예프의 장군인 드미트리가 용감했다 하여 풀어주었는데...

이후 드미트리는 러시아에서 저항의 상징이 된다.

사회의 변혁기마다 드미트리가 등장하는데 한꺼번에 5명이 등장한 적도 있었다 한다.

키예프를 정복한 바투는 폴란드, 헝가리, 체코를 공격해 들어갔다.

폴란드에 침입한 몽골군은 계속 서진해 슐레지엔의 발슈타트 전투에서 독일군을 크게 무찔렀고,

 헝가리로 진출한 몽골군의 선발대는 아드리아 해안까지 나아갔다. .. 유럽 애들 얼마나 놀랐을까?

그런데 오고타이가 죽는 바람에 일단 중단, 볼가강 하류로 되돌아와 킵차크 한국을 건설하였다.

독립을 잃어버린 러시아의 여러 공국들은 킵차크 한국의 모든 통제를 받았고...

점령당한 러시아의 모든 도시에는 킵차크 한국에서 세금징수 관리가 파견되었다.

러시아에 지옥문이 활짝 열렸다.

 

유럽을 침공한 몽골족을 타타르라고 부르는데..

그리스어로 지옥을 뜻하는 타르타로스에서 유래한 말이라고도 하고 징기스칸에게 초장에 깨진 부족 이름이 잘못 알려져서 그런다고 하고...

뭐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유럽에서 말하는 타타르는 몽골족을 의미하고

나중에는 킵차크 한국의 지배민족을 의미하는 말이 되었다.

바투의 자손들이 240년간 러시아를 지배하면서 어찌나 알뜰히 착취했는지

민족 이름인 슬라브가 노예 슬레이브의 어원이 되었다.

한참 때 슬라브인 노예가 2000만이 넘어 러시아에 슬라브 민족이 멸족했다는 말까지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악독하기만 했던 몽골의 통치는 아이러니히게도 분열되어 있던 러시아의 제공국들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어 통일된 지역으로 만들었고

몽골의 세리 노릇을 했던 모스코바 공국을 지도적 위치로 끌어올려 나중에 통일된 대제국이 될 수 있게 했다.

반면에 상당히 민주적 정치풍토였던 러시아에 황제에 대한 개인숭배와 전제 군주제라는 유산을 남겨

로마노프가의 전제 황권과 스탈린의 독재가 가능한 정치풍토를 만들었다.

몽골 놈들 죄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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