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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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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투..

징기스칸의 큰아들 주치의 둘때 아들이다.

주치는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사나이였다.

징기스칸의 씨가 아닌 어머니를 약탈한 메르키트족 칠게르의 씨인 것이다.

칠게르는 징기스칸한테 죽었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냥 곱게 놔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징기스칸은 모계를 중시하는 유목민의 관습에 따라 주치를 아들로 인정했다.

둘 사이는 친했다고 하는데 그래도 양가 감정에 평생 시달렸을 것이다.

사랑하는 아들을 의심해야 하는 징기스칸의 고민은 주치가 유럽 원정 초기 징기스칸 보다 6개월 먼저 죽으며 해소되었다.

주치의 후계를 이은 것은 허약한 형을 제친 바투였다.

주치는 장남이었으므로 영지는 몽골에서 가장 먼곳인 러시아 초원지대였으며

바투는 러시아 초원을 발판삼아 서쪽으로 진군하여 유럽에 극강의 공포를 선사하였다.

 

바투의 영토는 세메이, 악몰린스크, 투르가이, 오랄, 아다지, 호라즘 왕조 본토를 포함하였고

킵차크인들의 땅부터 볼가 강 서쪽의 정복지인 드넓은 초원지대를 포함하였다

바투는 장남 집안의 계승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주치의 혈통이 문제가 되어

칸위에 도전은 커녕  사촌들에게 공공연히 무시와 모욕을 당하는 처지였다.

결국 바투는 가장 세력인 약한 톨루이의 자식들과 손을 잡았고 몽케를 대칸 위까지 밀어올린다.

바투는 몽케 대칸이후 킵차크칸국을 반독립적인 세력으로 이끌었으나 몽케는 감히 손 볼생각도 못했다고 한다.

바투는 재수없는 사촌들과는 엮이기 싫었는지 뒤도 안돌아보고 서쪽으로만 진군하여 헝가리까지 집어삼킨다.

폴란드는 잡아먹히기 직전에 몽케가 죽는 바람에 바투가 회군해서 겨우 살았다고 하는데...

실은 폴란드가 치고 빠지는 전술을 사용하여 상당히 괴롭히고 있었다 한다.

마음 먹은대로 잘 안되니까 일단 회군하고 나중에 보자 식이었던 것 같은데...

몽골의 침공은 더 이상 지속되지 않았다.

 

바투의 군대가 얼마나 신출귀몰했는지 러시아 문학에는 신의 군대라고 표현되어 있다고 한다.

신이 소돔성을 멸했듯이 타락한 자신들을 벌하러 온 신의 군대...참으로 독특한 기독교적인 사고방식이다.

몽골인들은 바투를 사인 칸이라 불렀는데, 훌륭한 임금이라는 의미이다.

몽케를 옹립하여 대칸의 옹립자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몽골의 전승에는 현명하고 온화한 칸이라고 묘사되어 있다는데..

두 번만 온화했으면 유럽은 씨가 말랐겠다...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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