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일반

탈라스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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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통일한 선비족이 돌궐을 양분하여 동쪽은 복속시키고 나머지는 서쪽으로 몰아내었다.

이 이 쫒겨난 투르크족은 이전의 흉노가 한 것처럼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 자리를 잡았다..

중국은 당 현종때 `개원의 치` 라불리는 중흥기를 맞이하였으며, 이 넘치는 힘을 이용하여 중앙아시아로 세력을 확장하였다. 

이 두세력이 탈라스 강가에서 751년 맞붙은 전투가 탈라스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중국측은 7만의 보병을 고구려 유민 출신의 명장 고선지가 이끌었고

투르크쪽은 이슬람과 연합한 세력으로 20만의 기병과 보병의 혼합부대였다고 한다.

 

중국은 보급에도 어려움을 겼었고, 군대의 구성도 보병만으로 단조로웠으며, 숫자도 적은데다가, 그나마 복속했던 도시국가의 군대마저 배신을 하였으니 이길 수가 없는 싸움이었다.

7만의 군대중 도망친 숫자는 2000 이 안되었다 하니 가히 전멸이라 할만하다.

 

이는 선비족에 의해 쫒겨났던 돌궐의 후예들이 이슬람과 연합하여 중국의 팽창을 저지하고 수뇌부에게 심대한 타격을 준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고선지 장군이 처형되엇음은 물론이고, 당나라는 안녹산의 난이 발생하는 등 혼란을 겪게되고

또 다른 돌궐의 후예인 위그르에게 눌려 거의 종속국의 처지로 전락하고 만다.

 

탈라스 전투는 실크로드의 지배권을 확보하려는 중국세력을 투르크와 이슬람이 손잡고 막아선 사건으로

이 싸움에서 진 중국세력은 중앙아시아의 지배권을 상실하고 약화되었으며 위그루의 강성을 초래하였다 .

종교적인면으로는 이슬람의 중앙아시아 진출을 가속화시켜 결국 불교를 꺽고 이 지역의 지배적인 종교가 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중국의 제지기술이 유럽에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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