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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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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르인들에 의해 이루어진 수메르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라 부르며 지금까지 알려진 문명 중 가장 오래된 문명이다.

더 오래된 신석기 시대 문명은 문화라고 부르더라....너무 볼만한 게 없어서 그러나?

아무튼 수메르인들은 청동기를 사용했으며 지금의 이라크 지방인 메소포타미아의 남부에 문명을 건설하였다.

바그다드 북부에서 페르시아만에 이르는 지역이다.

 

청동은 구리에 주석이나 아연을 섞은 것이다... 아연을 섞은 것은 따로 황동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그냥 뭉뜽그려서 청동기라 부른다.

돌은 지구상 어디에나 있지만 구리, 주석 , 아연은 광산이 있어야 한다.

아마도 광산 인근에 살던 어떤 천재가 돌보다 더 단단하면서도 가공하기가 쉬운 금속의 쓰임새를 발견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금속 사용이라는 경쟁력을 발판 삼아 아직도 돌덩이를 갈고 있는 주변 부족을 압도하며 지배층을 형성하였을 것이고 이 지배층이 주변 부족을 노예로 삼아 문명을 건설하였을 것이다.

수메르 문명은 이 청동기를 바탕으로 이룩된 문명이며 제대로 문명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최초의 문명이다.

 

수메르인들..

이들이 어떤 민족인지는 확실치 않다. 단일 종족일 수도 있고 여러 종족의 연합체일 수도 있다.

이들은 청동기를 들고 갑자기 메소포타미아의 남부 지방에 나타났는데

원주민격인 우바이드나 셈족과는 혈통적으로 관련이 없으며 어디에서 왔는지 전에는 뭘 하던 민족인지 알려진 바가 없다.

그래서 수메르인을 자기 민족의 기원이라고 주장하는 나라들이 많다.

한국도 수메르인이 조상이라고 주장하는 나라의 하나이며 일본도 그렇다.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 상당한 수준의 문명을 창조하고 번성한 수수께끼같은 민족이므로 모두가 우리 조상이었으면 하는 마음을 갖는 것 같다.

이 민족의 기원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으므로 말도 안되는 억측도 많다.

우주인이었다는 설, 노아의 방주가 도착해 그 자손이 번성하여 이루어진 민족이라는 설...에휴.. 말을 말자...

인더스강 하구 해안지방에서 기원전 9000년 경의 유적이 발견되었는데 이들이 수메르 문명의 기원이 아닌가 하는 예측이 그나마 신빙성이 있다.

인더스 강하구에서 문명을 이루고 살던 민족들이 빙하기가 끝나면서 해수면이 상승하자

일부는 메소포타미아로 가서 수메르 문명을 건설하였고

일부는 상류로 이동하여 히라파와 모헨조다로 유적지로 알려진 인더스 문명을 건설한 것이 아닐까 한다.

인더스 문명을 건설한 민족은 약 14종의 잡종 민족이고 아리안족에 의해 멸망하였으므로 아리안은 수메르의 후예가 아닐 것이다.

인더스문명을 건설한 인종 중에 드라비다 족도 있었을 것이므로 한반도와 일본의 모계 기원이 수메르인 일 수 있다.

 

수메르인이 어디에서 왔건 이들은 청동기를 가지고 있었고 문자가 있었으며 종교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문자와 종교는 웬만한 종족은 다 가지고 있었으므로 청동기가 이들이 가지고 있었던 진정한 경쟁력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메소포타미아의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 옹기 종기 모여 원시 농업 또는 상업에 열중하던 원주민을 정복하고 그들을 복속시켜 문명을 건설하였을 것이다.

메소포타미아 남부지방은 신석기 문명이 많이 발달한 선진적인 지역이었다.

이들은 원시적인 도시국가를 형성하고 나름 잘 살고 있었다.

이곳에 수메르인이 청동기를 들고 낯도깨비처럼 나타나 일부는 정복하고 일부는 회유하여 복속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수메르인들은 기 형성되어 있던 도시국가 체제를 그대로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수메르인들은 지들끼리는 상당히 평등했다고 할 수있다.... 씨족 공동체의 전통일 수도 있다.

민회도 있었으니 원시적인 시민 계급이라고 할만한데 도시국가와 시민계급은 이후 그리스 문명의 체제와 비슷하다....수메르가 망한 후 일부 유민이 그리스로 도망가지 않았을까?

 

메소포타미아는 비옥하기는 해도 자연재해가 많은 땅이었다.

특히 홍수는 아주 골칫거리여서 노아의 방주의 기원이 되는 길가메쉬의 서사시가 씌여진 배경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자연재해들은 자연을 두려워하게 했으므로 자연의 힘을 상징하는 신을 양산하게 했다.

수메르의 신은 약 2000 에서 3000정도 였다고 한다.

 

지배의 도구로 종교만큼 좋은 것도 없다.

수메르는 신전 중심의 도시국가 연합체 성격이 짙었는데 지그라트 즉 바벨탑이 이들의 신전이었다.

지그라트는 하늘의 문 또는 신의 문이라는 뜻으로 벽돌을 구어 높이 쌓아 올린 것이다.

각 도시는 신의 소유라고 생각했으므로 신전을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되었다.

모든 정치, 경제, 사회 활동의 중심이 신전이었으므로 제사장의 권력이 막강하였다.

원주민을 동원하여 높이 쌓아올 탑의 꼭대기에 신전을 설치하고 여사제를 상주케한 다음 제사장이나 왕이 올라가 신과 만나는 것이다.

올라가자 마자 신이 만나줄리는 없고, 며칠씩 자면서 예식도 행하고, 기도도 하면서, 여사제와 술도 한잔하고, 동침도 하고 그러면서 기다렸을 것이다.

그래서 신을 만났는지는 알 수 없으나 밑에서 기다리는 중생들한테는 만났다고 그랬을 것이고..

뭐라고 그러더냐고 물어보면 대충 얼버무린게 신탁일 것이다.

 

이들은 10여개 이상의 도시국가를 이루어 법전도 만들고, 12진법, 60진법도 만들고, 바퀴도 발명하고, 길가메시의 서사시도 쓰면서 서로 협조도 하고 갈등도 하면서 한 천년 잘 먹고 잘 살았다.

 모든 번성한 것은 반드시 쇠퇴하는 법

초기의 잘나가던 도시 국가들은 지들끼리 다툼으로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도시 국가들을 조율할 수 있는 왕의 권력이 강해지기도 하였으나

각 도시마다 버티고 있는 제사장의 권력이 막강하였을 것이므로 잘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힘센 왕이 나타나기도 하고, 힘을 키운 셈족에게 지배를 받기도 하며 그럭저럭 망해가다가

우르 3 왕조로 바뀌어 잠시 옛 영화를 회복하였으나

기원전 1900년 경 셈족에게 먹혀버리면서 끝나고 말았다.

기원전 3000년 경에 시작했으니까 한 1100년.... 그만하면 여한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수메르족은 완전히 사라졌다.

유민이 되어 어디 떠돈 것도 아니고 셈족에 완전히 먹혔는지 흔적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너도 나도 수메르의 후손을 주장하는 빌미를 주었다. 

우리 나라는 수메르가 소머리하고 음이 비슷하다고 해서 우리 조상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소머리족...비슷하기는 하다...쩝 

 

수메르 문명은 셈족에게 이어져 함무라비 법전으로 알려진 바빌론 문명이 된다.

그런데 함무라비 법전이 최초의 법전이 아니다.

우르 제3왕조의 창시자인 우르남무가 먼저 법전을 남겼다.

우르남무 법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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