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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2 : 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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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멸망 후 이적이 보장왕과 남건이 형제를 끌고 갈 때 같이 끌고 간 고구려 백성이 20여 만이었다.

당시 고구려 인구가 한 100만 쯤 되었을 테니까 인구의 1/5을 끌고 간 것인데,

아마도 평양 부근은 사람 씨가 말랐을 것이고 주요 지역들 또한 공동화되었을 것이다.

이놈들은 끌고 간 유민들을 오늘날의 조양인 요서 지방의 영주라는 곳에 풀어놓았다.

그런데 이 영주라는 곳이, 그동안 사람이 살지 않던 빈 땅이 아니라, 원래 거란족의 땅으로 현재 당에 복속한 거란족이 살고 있는 지역이었다.

거란족이라고 해서 점령 당한 처지를 마냥 행복하게 받아들였을 리는 만무하고...

이 불만의 땅에 고구려인 수십만이 도착한 것이다.

거러지의 모습으로...


당연히 텃세가 있었을 것이고 고구려 유민들은 지들끼리 모여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끌려간 유민들은 유민들 대로 문제가 있었다.

당나라 놈들 눈에야 그놈이 그놈 같았을지 모르나, 고구려는 신분제 사회였고 귀족 평민 노예의 3단계로 나누어져 있었다.

평민은 다시 지배계층인 호민과 거의 농노 수준인 하호로 나뉘어 있었고.

따라서 유민들은 양반인 귀족과 호민, 상놈인 하호와 노예가 뒤섞여있었고, 종족도 이것 저것 뒤섞여 복잡하였을 것이다.

당나라가 귀족과 호민은 장안 등 다른 지역으로 분리시켰다 하나 완벽했을 리는 없고...

중간급들 상당수는 이곳에 있었을 것이다.

유민들 중에는 한 번 상전이면 영원한 상전이라고 생각하는 갸륵한 종놈도 있었을 것이고 이 판국에 양반은 무슨 놈의 양반이냐고 눈을 부라리는 놈 등 벼라 별 인간들이 다 있었을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귀족과 평민은 사이가 안 좋고 끼리끼리 모이는 법, 대충 지배계층 출신과 피지배계층 출신으로 나뉘었을 공산이 가장 크다.

아니면 지역, 출신 별로 나뉘었거나, 평양 인근 출신과 그 외 지역, 성내 거주와 과 성외 거주자 등등.... 경우의 수는 많다.

어떻게 나뉘었건 고구려 유민은 두 집단으로 나뉘어 있었고 지도자는 각각 걸걸중상과 걸사비우였다.

고구려 유민이 날 설고 물 설은 타국에서 험난한 생활을 이어간 지 어언 20여 년, 

거란의 이진충이 난을 일으켰다.

 

이진충이가 반란을 일으킨 해는 696년으로,

측천무후가 자기 아들을 쫓아내고 중국 역사상 유일 무이한 여황제로 등극하면서 주나라를 연지 9 년째 되는 해이다.

측천무후가 아무리 걸물이었다 해도 나라를 뒤집어 놓았으니 혼란은 피할 수 없었을 것이고, 조정은 분열되어 서로 죽고, 죽이느라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그동안 당에 눌려왔던 다른 나라나 종족들에게 호기로 작용했을 것이고, 난세의 영웅을 꿈꾸는 많은 야심가들을 자극했을 것이다.

이 살 얼음판 같은 시국에, 불안의 땅 영주에서, 도독 조문홰가 피지배 종족들의 수장들을 엿먹이는 실수를 저지른다.

뭔 실순지는 모르겠지만, 지 멋대로 세금을 걷거나 부역을 부과하거나 했을 것이다. 아니면 언 놈을 죽였거나...

울고 싶은데 뺨 때린 격이었으므, 거란의 야심가 이진충은 반란을 일으켰고, 영주성을 점령하고 조문홰를 척살하는 기염을 토하였다.

우리의 고구려 유민은 이진충에게 적극 협력하였고, 이진충이는 주변으로 세력을 넓혀 나갔으나,

측천무후라고 마냥 손 놓고 있지만은 않아서, 40만 대군을 동원하여 진압에 나섰고, 돌궐에게 거란의 배후를 치게 하였다.

이 전투에서 이진충이는 전사하였고, 이 꼴을 봤는지 안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고구려 유민은 거란족과 운명을 같이 하지 않고, 요수를 건너 동쪽으로 전화를 피하였다.

 

요수건너 태백산 동쪽에 성을 쌓고 자리를 잡았으나, 측천무후의 손길을 피할 수는 없어서.

측천무후는 일단 두 지도자에게 벼슬을 내리고 회유하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모두 거부 하였고...

열 받은 측천무후는 항복한 거란인 이해고에게 대군을 주고 진압을 명령하였다.

이해고와의 싸움에는 평민 대장 걸사비우가 더 적극적이었던 것 같은데..

대패하였고 걸사비우도 전사하였다.

걸걸중상은 그전에 병사했다고 하는데..전사라고도 하고.

아무튼 싸움에 지고 두 지도자를 모두 잃은 유민들은 멘붕이었을 것이다.

도망밖에는 길이 없었고..

이 판국에 양반이고 종이고, 말갈이고 나발이고는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유민들은 대조영을 중심으로 다시 뭉쳤고 열심히 도망쳤는데...

천문령에서 따라잡혔다.

대조영은 이판사판으로 이해고에게 달려들었고, 궁지에 몰린 쥐가 가끔 고양이를 물기도 하는 격으로 덜컥 이겨버렸다.

그래도 이겼다고 자만하지 않고 동쪽으로, 동쪽으로 달렸는데....

돌궐이 측천무후에게 대드는 사태가 벌어지고, 거란이 돌궐에 붙는 상황이 되면서, 

유민들은 겨우 측천무후의 손길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제서야 안심한 대조영은 자리를 잡았는데, 그 자리가 동모산, 옛 고구려 계루부가 있던 자리였다.


발해의 개국은 거란이 가져다 준 선물이었다.

[이 게시물은 마루밑다락방님에 의해 2015-01-13 13:29:16 아온에서 복사 됨] http://hisking.com/bbs/board.php?bo_table=kyeong110&wr_id=2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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