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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 - 9 개 / 게시물 - 45 개 1 / 5 페이지 열람 중
'역사일반' 게시판 내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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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47 자동소총(칼라시니코프 소총)
1950년대 구소련의 칼라시니코프라는 젊은 군인이 만든 총으로 소련군의 개인화기로 채택되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였다.이 총은 다소 거칠고 조잡하지만 총 내부에 다량의 모래나 먼지가 들어가도 쉽게 제거하고 사용할 수있을 정도로 안정성이 뛰어난 총이다.분해 결합이 간단하고 고장이 거의 없어 전세계 분쟁지역에서 어린아이들 조차 쉽게 사용할 수 있었다.전 세계에 5천 5백만정이라는 엄청난 숫자가 보급되었으며 테러와 지역분쟁에 가장 많이 쓰인 무기였다.값싸고 다루기쉽고 고장 안나는...가히 역사를 바꾼 물건이라하겠다.[이 게시물은 마루밑다락…
아온 2013-05-20 09:58:04
'세계사' 게시판 내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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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사르 쉴레이만 파샤(Sarı Süleyman Paşa)
사르 쉴레이만 파샤(세르보크로아트어:Sari Sulejman-pasa; ?~1687.10.14)는 1685년 11월 18일부터 1687년 9월 18일까지 오스만제국의 재상을 지냈다. 그는 모하치 전투(1687)에서 오스만제국군을 패배시켜서사형당했다. 참고로터키어이자 그의 별칭이기도 한'Sarı(사르)'는'금발의'라는 뜻이다.유년시절그는 보스니아 에야레트의 타쉴르카(현 세르비아 프리예폴례)에서 태어났다. 오스만제국의 대재상 아흐메드 쾨프륄뤼(Ahmed Koprulu)파샤 밑에 있었고 이후술탄의 거마(車馬)관리인이 되었다.오스만 제국의…
피아스트 2015-08-18 16:42:20 -
[공유]쉬코드라 파샬루크(Pashalik of Shkodra)
개요현 슈치퍼리아와 츠르나 고라의 일부로 쉬코드라 도시 주변부에 위치했고, 슈치퍼리아계 부샤티 가문이 이전의 산자크(sanjak,군)였던 쉬코드라를 쉬블림포르트에 대해 반독립적인 파샬리크(속주), 즉 파샤가 관할하는 지역으로 변형하였다. 전성기에 해당되는 카라 마흐무드 파샤 시기의 쉬코드라 파샬리크는 알바니아와코소보의 대부분과 서(西)마케도니아, 평지 츠르나고라까지 관할 하에 두고 있었다.쉬코드라 파샬루크의 문장, 확실히 문장만 봐도 반독립적이라는 것이 몰씬 느껴진다.배경16세기 이후부터 꾸준히 진행되어 온 오스만제국의 중앙 권력의…
피아스트 2015-07-27 17:19:25
'인문학' 게시판 내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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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 (Augustine) 2
시골에서 수도원을 운영하며 나름대로보람찬 삶을 살고 있던 그는 수행자들을 더 모집하기 위해 히포시를 방문하게 되었는데,그동안 쌓인 명성이 상당했던지 졸지에 히포시의 사제로 발탁되었다.
아온 2016-02-22 17:4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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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 (Augustine) 1
아우구스티누스는 작은 아우구스투스라는 뜻이고아우구스투스는 카이사르의 후계자이자 로마의 초대 황제라고 인정 받는 바로 그 사람이므로 아우구스티누스는지극히로마적인 이름이었다.그러나 그는퇴락해 가는 로마의 정신이나 이상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어떤 면에서는 반로마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기독교에 헌신하였다.당시 시대의 조류가 그러했을 것이다.어찌되었건 이러한 선택 덕분에 그는이름에 부끄럽지 않을 만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아우구스티누스는 현재 북아프리카 알제리 지역인 타가스테라는 소도시에서 태어났는데,이 도시의 관리이며 이교도였던 아버지는 …
아온 2016-01-21 15: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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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브로시우스( Ambrose)
황제를 무릎 꿇린 자로 유명한 암브로시우스는히에로니무스와 동시대를 살았던 행정 관료 출신으로속주 총독까지 지낸 명사였는데신앙심마저 경건하였는지여러 사람들의 추천으로 밀라노 주교가 되었다 한다.원래부터 진지한 성품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주교가 된 그는 신학 연구에 몰두하는 한편 사목 활동을 열심히 하였으며,교회음악에도 관심을 기울여 여러개의 찬송가를 작사 작곡하기도 하였다 하는데,후대의 기독교에 가장 뚜렷한 영향을 끼친 것은 그의 저술이었다. 그는키케로의 스토아적인 도덕관을 반영하여 대부분 도덕적 훈계로 이루어진제목도 키케로의`관직에 …
아온 2016-01-14 17: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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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우스 : Arianism
팔레스타인에 살던 젊은 목수, 예수에 의해 창시된 기독교는 온갖 고난과 박해를 견디며 끈질기게 살아남아,마침내 로마 제국을 정복하는 기염을 토하였나,,제국의 국교로서 위엄을 떨치기도 전에 교리 논쟁의 불길에 휩싸이고 말았는데,이는 기독교의 논리가 유달리 허접하기 때문이 아니라 대부분의 종교들이 가지는 일반 특성일 것이다.예수는 처녀 생식으로 출산하였고 대천사가 친히 수태고지를 하였으며 살면서 온갖 이적을 보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 부활까지 하였으므로,기독교의 신도들은 예수를 하나님인 야훼와 동일시하여 성부 성자 성령은 하나라는 믿음을…
아온 2016-01-08 17:54:58
'나도 작가' 게시판 내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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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그 날 그들
그 날이었다. 중앙에서는 "해방"이라 하지만 그들에게는 여전한 압제였다. 그날 그들은 중앙의 명령으로 인해 만리타향으로 떠났네. 누울 곳은 열차의 밑바닥 그들은 멀리 고향 땅을 바라보고, 통곡하며 낯선 곳으로 갔다. ------------------- p.s: 본 자작시의 배경은 1944년 소련정부에 의한 크름타타르족의 강제이주입니다. 강재이주가 일어나게 된 씨앗은 1920년대 초반부터 시작됩니다. 1920년대 초반에서 1941년 중반까지 소련이 크림반도를 지배했는데, 이 시기에 크림타타르 인들은 큰 차별을 …
피아스트 2015-09-30 18:31:25 -
[May]죽음의 애가
저기 우리 앞에 죽음의 열차가 오고 있다. 자유라곤 없는 우리들은 나약함밖에 남지 않았고 스산한 어둠을 거닐며 죽음의 문턱으로 간다. 문뜩 사랑했던 임이 그리워지는 하루라네. ----------------------------------------- P.S)자작시를 쓰는 것도 오랜만이군요. 이 시는 1940년 소련이 폴란드의 엘리트들을 상대로 저지른 카틴 대학살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피아스트 2015-09-22 18:04:54 -
[MAY 교류글]제 6대 달라이라마의 사행시(四行詩)한 편
『 백학, 고운 새 그대의 두 날개를 내게 보내다오. 내 멀리 가지 않으리니 리탕에서 돌아오리라. 』1705년 호스트부의 라상 칸이제 6대 달라이라마가겔룩파의 계율을 어겼다는 이유로 '신들의 도시' 라싸에 쳐들어가 섭정(상계 갸초)을 죽이고 달라이라마를 포로로 잡아 압송하였다. 그런 와중에 지어진 시가 위의 시로, 제 6대 달라이라마에 의해 만들어졌다. 저 사행시는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으며, 특히 마지막행 '리탕에서 돌아오리라'가 더더욱 그러하다.마지막행의 뜻은 시간이 좀더 지나야 밝혀지는데, 6대 달라이라마의 화신이 티베트 동…
피아스트 2015-05-20 17:4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