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온의 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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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집 한 채 : 김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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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있다면,

어디 두천쯤에나 가서 

강원남도 울진국 북면의 

버려진 너와집이나 얻어 들겠네, 거기서 

한 마장 다시 화전에 그슬린 말재를 넘어 

눈 아래 골짜기에 들었다가 길을 잃겠네 

저 비탈바다 온통 단풍 불 붙을 때 

너와집 썩은 나무껍질에도 배어든 연기가 매워서 

집이 없는 사람 거기서도 눈물 잣겠네

 

쪽문을 열면 더욱 쓸쓸해진 개옻 그늘과 

문득 죽음과, 들풀처럼 버팅길 남은 가을과 

길이 있다면, 시간 비껴 

길 찾아가는 사람들 아무도 기억 못하는 두천 

그런 산길에 접어들어 

함께 불 붙는 몸으로 저 골짜기 가득 

구름 연기 첩첩 채워놓고서

 

사무친 세간의 슬픔, 저버리지 못한 

세월마저 허물어버린 뒤 

주저앉을 듯 겨우겨우 서 있는 저기 너와집, 

토방 밖에는 황토흙빛 강아지 한 마리 키우겠네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 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가 되어 

아주 잊었던 연모 머리 위의 별처럼 띄워놓고

 

그 물색으로 마음은 비포장도로처럼 덜컹거리겠네 

강원남도 울진군 북 

매봉산 넘어 원당 지나서 두천 

따라오는 등뒤의 오솔길도 아주 지우겠네 

마침내 돌아서지 않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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