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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 : 막스밀리안 황제의 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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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가 그린 <막스밀리안 황제의 처형>을 반전화(反戰畵)로 볼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림에 담긴 역사를 보면 도리어 프랑스 제국주의의 그림자가 남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멕시코혁명에 대해서는 뒤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멕시코가 1861년 스페인에서 해방되자 외채 지불 문제를 핑계삼아 제국주의 여러 나라가 무력 간섭을 시작했다. 특히 프랑스는 미국의 남북전쟁을 틈타 합스부르크 가의 막스밀리안을 멕시코의 괴뢰 황제로 세웠다. 이에 대해 멕시코 민족주의자들이 반발하고, 미국이 먼로주의를 내세워 프랑스군의 철수를 요구하자 막시밀리안 황제는 고립되고 체포되어 급기야 처형당했다.

 

  마네의 이 그림은 처형 직후에 그려졌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상상으로 그렸기때문에 처형하는 군인들은 프랑스 군복을 입고 있다. 이는 어쩌면 그를 죽인 것은 프랑스라는 역사적 진실을 말하는 건 아닐까? 여하튼 이 그림은 나폴레옹의 위신을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발표되지 못했고, 그후 마네는 판화로 제작하여 발표하고자 했으나 역시 방해를 받았다. 그 작품이 대중에 공개된 것은 그림이 완성되고 32년 뒤, 뉴욕 전시회에서였다.

 

  - 박홍규, <총칼을 거두고 평화를 그려라>중에서

 

  마네의 "카드놀이"기법은 벨라스케스에게서 빌려온 것이다. 이것은 캔버스의 표면과 그림의 배경을 분리하지 않는 기법이다. 결국 마네는 작품을 순수 색면을 복원하면서, 회화는 무엇보다 먼저 회화여야 한다는 자신의 이상에 도달했다. 이 기법은 <피리부는 소년>에서 완성했다. 그는 서둘러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에서 이 기법을 적용했다. 이 작품 역시 당대의 사건에서 주제를 취한 야심작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폴레옹 3세는 분명한 이유를 들어 작품의 전시를 금했다. 이 작품에서 마네는 영감의 원천이 되어준 작품들과 유희를 벌였다.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의 구도를 빌려오고, 고야의 <전쟁의 참화>에서 벽 너머로 처형 장면을 훔쳐보던 사람들의 얼굴을 가져와 덧붙였다. 그러나 마네가 그린 병사들은 표적에 명중시키려는 의지가 없어 보인다. 병사들은 화면과 평행을 이루며 총을 겨누고 있어, 전혀 희생자들을 위협하지 않는다. 마네는 이 효과가 무척 마음에 들었고, 이 기법을 전쟁을 그린 1870년 <내전(방어벽)>에서 되풀이했다.

 

  - 질 네레, <에두아르 마네>중에서

[출처] <막스밀리안 황제의 처형>/에두아르 마네|작성자 굿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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