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속리산에서 : 나희덕

2013-11-2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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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가파른 비탈만이
순결한 싸움터라고 여겨 온 나에게
속리산은 순하디 순한 길을 열어 보였다
산다는 일은
더 높이 오르는 게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는 듯
평평한 길은 가도 가도 제자리 같았다
아직 높이에 대한 선망을 가진 나에게
세속을 벗어나도
세속의 습관은 남아 있는 나에게
산은 어깨를 낮추며 이렇게 속삭였다
산을 오르고 있지만
내가 넘는 건 정작 산이 아니라
산 속에 갇힌 시간일 거라고
오히려 산 아래서 밥을 끓여 먹고 살던
그 하루 하루가
더 가파른 고비였을 거라고
속리산은
단숨에 오를 수도 있는 높이를
길게 길게 늘여서 내 앞에 펼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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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1
마루밑다락방님의 댓글
오직 세속에서 벗어나
또다른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고 싶다는 것 때문에
도를 닦았는가?
산다는 일
더 높이 더 새로운 세상
그런걸 원했는가?
아직 나한테는 그런 세상이 올려면
멀고도 험한길
가파른 비탈길처럼 멀고도 험한길이네
산 아래 있었던 것과
산 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지 않는가?
내가
어리석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