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온의 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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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오적:김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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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네가 무엇이냐

거지요

거지면 더더욱 좋다. 거지, 문둥이, 시라이, 양아치, 비렁뱅이 다합쳐서

우범오적(五賊)이란 너를 두고 이름이다. 가자 이놈 큰집으로 바삐가자

애고 애고 난 아니요, 오적(五賊)만은 아니어라우. 나는 본시 갯땅쇠로 농사로는

배고파서 돈벌라고 서울왔소. 내게 죄가 있다면은

어젯밤에 배고파서 국화빵 한 개 훔쳐먹은 그 죄밖엔 없습네다.

이리바짝 저리죄고 위로 틀고 아래로 따닥

찜질 매질 물질 불질 무두질에 당근질에 비행기태워 공중잡이

고춧가루 비눗물에 식초까지 퍼부어도 싹아지없이 쏙쏙 기어나오는건

아니랑께롱

한마디뿐이겄다

포도대장 할 수 없이 꾀수놈을 사알살 꼬실른다 저것봐라

오적(五賊)은 무엇이며 어디있나 말 만하면 네 목숨은 살려주마

꾀수놈 이말듣고 옳다꾸나 대답한다.

오적(五賊)이라 하는 것은

재벌과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란 다섯 짐승, 시방 동빙고동에서

도둑시합 열고 있오.

으흠, 거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이다. 정녕 그게 짐승이냐?

그라문이라우, 짐승도 아조 흉악한 짐승이지라우.

옳다됐다 내새끼야 그말을 진작하지

포도대장 하도좋아 제무릎을 탁치는데

어떻게 우악스럽게 처 버렸던지 무릎뼈가 파싹 깨져 버렸겄다, 그러허나

아무리 죽을 지경이라도 사(死)는 사(私)요, 공(功)은 공(公)이라

네놈 꾀수 앞장서라, 당장에 잡아다가 능지처참한 연후에 나도 출세해야겄다.

꾀수놈 앞세우고 포도대장 출도한다

범눈깔 부릅뜨고 백주대로상에 헷드라이트 왕눈깔을 미친듯이 부릅뜨고

부릉 부릉 부르릉 찍찍

소리소리 내지르며 질풍같이 내닫는다

비켜라 비켜라

안비키면 오적(五賊)이다

간다 간다 내가 간다

부릉 부릉 부르릉 찍찍 우당우당 우당탕 쿵쾅

오적(五賊)잡으러 내가 간다
남산을 훌렁넘어 한강물 바라보니 동빙고동 예로구나

우레같은 저 함성 범같은 늠름기상 이완대장(李浣大將) 재래(再來)로다

시합장에 뛰어들어 포도대장 대갈일성,

이놈들 오적(五賊)은 듣거라

너희 한같 비천한 축생의 몸으로

방자하게 백성의 고혈빨아 주지육림 가소롭다

대역무도 국위손상, 백성원성 분분하매 어명으로 체포하니

오라를 받으렸다.


5


이리 호령하고 가만히 들러보니 눈하나 깜짝하는 놈 없이

제일에만 열중하는데

생김생김은 짐승이로되 호화찬란한 짐승이라

포도대장 깜짝놀라 사면을 살펴보는데

이것이 꿈이냐 생시냐 이게 어느 천국이냐

서슬푸른 용트림이 기둥처처 승천하고 맑고 푸른 수영장엔 벌거벗은

선녀(仙女) 가득

몇십리 수풀들이 정원 속에 그득그득, 백만원짜리 정원수(庭園樹)에 백만원짜리

외국(外國)개

천만원짜리 수석비석(瘦石肥石), 천만원짜리 석등석불(石燈石佛), 일억원짜리

붕어 잉어, 일억원짜리 참새 메추리

문(門)도 자동, 벽도 자동, 술도 자동, 밥도 자동, 계집질 화냥질 분탕질도

자동자동

여대생(女大生) 식모두고 경제학박사 회계두고 임학(林學)박사 원정(園丁)두고

경제학박사 집사두고

가정교사는 철학박사 비서는 정치학박사 미용사는 미학(美學)박사

박사박사박사박사

잔디 행여 죽을세라 잔디에다 스팀넣고, 붕어 행여 죽을세라 연못속에

에어컨넣고

새들 행여 죽을세라 새장속에 히터넣고, 개밥 행여 상할세라 개집속에

냉장고넣고

대리석 양옥(洋屋)위에 조선기와 살쩍얹어 기둥은 코린트식(式) 대들보는

이오니아식(式)

선자추녀 쇠로치고 굽도리 삿슈박고 내외분합 그라스룸 석조(石造)벽에 갈포발라

앞뒷퇴 널찍터서 복판에 메인홀 두고 알매달아 부연얹고

기와위에 이층올려 이층위에 옥상트고 살미살창 가로닫이 도자창(盜字窓)으로

지어놓고

안팎 중문 솟을대문 페르샤풍(風), 본따놓고 목욕탕은 토이기풍(風), 돼지우리

왜풍(倭風)당당

집밑에다 연못파고 연못속에 석가산(石假山), 대대층층 모아놓고

열어재킨 문틈으로 집안을 언 듯보니

자개 케비넷, 무광택 강철함롱, 봉그린 용장, 용그린 봉장, 삼천삼백삼십삼층장

카네숀 그린 화초장, 운동장만한 옥쟁반, 삘딩같이 높이 솟은 금은 청동 놋촉대,

전자시계, 전자밥그릇, 전자주전자, 전자젓가락, 전자꽃병, 전자거울, 전자책,

전자가방, 쇠유리병, 흙나무그릇, 이조청자, 고려백자, 거꾸로 걸린 삐까소,

옆으로 붙인 샤갈,

석파란(石坡蘭)은 금칠액틀에 번들번들 끼워놓고, 산수화조호접인물 (山水花鳥蝴蝶人物)

내리닫이 족자는 사백점 걸어두고, 산수화조호접인물 (山水花 鳥蝴蝶人物)

팔천팔백팔십팔점이 한꺼번에 와글와글,

백동토기, 당화기, 왜화기, 미국화기, 불란서화기, 애태리화기, 호피담뇨 씨운테레비, 화류문갑 속의 쏘니녹음기, 대모책상 위의 밋첼카메라, 산호책장 곁의 알씨에이 영사기, 호박필통에 꽂힌 파카만년필, 촛불켠 샨들리에, 피마주기름 스탠드라이트, 간접직접 직사곡사 천장바닥 벽조명이 휘황칸칸 호화율율.

여편제들 치장보니 청옥머리핀, 백옥구두장식,

황금부로취, 백금이빨, 밀화귓구멍가게, 호박밑구멍마게, 산호똥구멍마게,

루비배꼽마게, 금파단추, 진주귀걸이, 야광주코걸이, 자수정목걸이, 싸파이어팔지 에어랄드팔지, 다이야몬드허리띠, 터키석안경대,

유독 반지만은 금칠한 삼원짜리 납반지가 번쩍번쩍 칠흑암야에 횃불처럼

도도무쌍(無雙)이라!

왼갖 음식 살펴보니 침 꼴깍 넘어가는 소리 천지가 진동한다

소털구이, 돼지콧구멍볶음, 염소수염튀김, 노루뿔삶음, 닭네발산적, 꿩지느라미말림,

도미날개지짐, 조기바톱젓, 민어 농어 방어 광어 은어 귀만 짤라 회무침,

낙지해삼비늘조림, 쇠고기 돈까스, 돼지고기 비후까스, 피안뺀 복지리,

생율, 숙율, 능금, 배 씨만 발라 말리원서 금딱지로 싸놓은 것, 바나나식혜,

파인애플화채, 무화과 꽃닢설탕 버무림,

롱가리트유과, 메사돈약과, 사카린잡과, 개구리알구란탕, 청포우무, 한천묵,

괭장망장과화주, 산또리, 계당주, 샴펭, 송엽주, 드라이찐, 자하주, 압산,

오가피주, 죠니워카, 구기주, 화이트호스, 신선주, 짐빔, 선약주, 나폴레옹 꼬냑, 약주, 탁주, 소주, 정종, 화주, 째주, 보드카, 람주(酒)라!

아가리가 딱 벌어져 닫을 염도 않고 포도대장 침을 질질질질질질 흘려싸면서

가로되

놀랠 놀짜로다

저게모두 도둑질로 모아들인 재산인가

이럴 줄을 알았더면 나도 일찍암치 도둑이나 되었을 걸

원수로다 원수로다 양심(良心)이란 두글자가 철천지 원수로다


6


이리 속으로 자탄망조하는 터에

한놈이 쓰윽 다가와 써억 술잔을 권한다

보도 듣도 못한 술인지라

허겁지겁 한잔두잔 헐레벌떡 석잔넉잔

이윽고 대취하여 포도대장 일어서서 일장연설 해보는데

안주를 어떻게나 많이 쳐먹었는지 이빨이 확 닳아없어져 버린 아가리로
이빨을 딱딱 소리내 부딪쳐가면서 씹어뱉는 그 목소리 엄숙하고 그 조리 정연하기

성인군자의 말씀이라

만장하옵시고 존경하옵는 도둑님들!

도둑은 도둑의 죄가 아니요, 도둑을 만든 이 사회의 죄입네다

여러도둑님들께옵선 도둑이 아니라 이 사회에 충실한 일꾼이니

부디 소신껏 그길에 매진, 용진, 전진, 약진하시길 간절히 바라옵고 또 바라옵니다.

이 말끝에 박장대소 천지가 요란할 때

포도대장 뛰어나가 꾀수놈 낚궈채어 오라묶어 세운뒤에

요놈, 네놈을 무고죄로 입건한다.

때는 가을이라

서산낙일에 객수(客愁)가 추연하네

외기러기 짝을찾고 쪼각달 희게비껴

강물은 붉게 타서 피흐르는데

어쩔꺼나 두견이는 설리설리 울어쌌는데 어쩔꺼나

콩알같은 꾀수묶어 비틀비틀 포도대장 개트림에 돌아가네

어쩔꺼나 어쩔꺼나 우리꾀수 어쩔꺼나

전라도서 굶고살다 서울와 돈번다더니

동대문 남대문 봉천동 모래내에 온갖구박 다 당하고

기어이 가는구나 가막소로 가는구나

어쩔꺼나 억울하고 원통하고 분한사정 누가있어 바로잡나

잘까거라 꾀수야

부디부디 잘가거라.


7


꾀수는 그길로 가막소로 들어가고

오적(五賊)은 뒤에 포도대장 불러다가

그 용기를 어여삐 녀겨 저희집 솟을대문,

바로 그곁에 있는 개집속에 살며 도둑을 지키라하매,

포도대장 이말듣고 얼시구 좋아라

지화자좋네 온갖 병기(兵器)를 다가져다 삼엄하게 늘어놓고 개집속에서 내내

잘살다가

어느 맑게 개인날 아침, 커다랗게 기지개를 켜다 갑자기

벼락을 맞아 급살하니

이때 또한 오적(五賊)도 육공(六孔)으로 피를 토하며

꺼꾸러졌다는 이야기. 허허허

이런 행적이 백대에 민멸치 아니하고 인구(人口)에 회자하여

날같은 거지시인의 싯귀에까지 올라 길이 길이 전해오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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