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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철학자들 10] : 푸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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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푸코(1926-1984)

 

   진리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진리를 인간이 알 수 있고 알아야 한다는 사실, 사회적 규범이나 도덕에 반항하면 벌을 받는다는 사실 등은 모두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푸코에게는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다. 푸코에 따르면, 진리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담론에 의해 규정되는 하나의 지식일 뿐이라고 한다. 푸코는 이 담론의 부당성을 고발한 철학자다.

 

   푸코의 관심은 지식의 내용에 있지 않고 지식을 둘러싼 관계들, 즉 지식이 어떻게 구성되는가에 있다. 다시 말해서 지식이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혹은 누가 이러저러한 지식을 규정하는가가 문제라는 얘기다. 따라서 그는 우선 지식이 발전한다는 관념을 믿지 않는다. 지식은 각 역사적 시대에 따라 그에 맞게 구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식의 구성 요소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말과 사물, 두 가지다. 이 때 역시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 두 가지 중 더 중요한 요소는 단연 사물이 될 것이다. 그러나 푸코는 그와 반대로 말이 훨씬 중요하다고 한다. 그에 의하면 사물은 변함없는데, 사물을 설명하는 지식은 무상하게 변하는 것이다. 결국 이렇듯 사물과 관계없이 그 사물을 설명하는 지식을 푸코는 억압적 담론이라고 본다.

 

   푸코는 ‘광기(狂氣)’를 예로 들어, 이성으로 무장한 막강한 권력이 인간성을 어떻게 짓밟아 왔는지를 치밀하게 분석해 낸다. 17세기 서양에서는 광기를 윤리적으로 결함이 있는 것으로 취급하였고, 광인은 사회에서 병원으로 격리 수용되었다. 그리고 정신분석학이 생겨난 19세기부터는 광기를 정신질환으로 취급하여 치료를 위해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게 된다. 푸코는 이를 담론에 의한 권력 행사로 본다.

 

   지식이 사물로 구성된다면 별 문제가 없지만, 담론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생겨나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침묵’의 문제다. 푸코에 따르면 광기는 17세기라는 특정한 역사적 시대에 역사 바깥으로 빠져나간다. 그 이유는 17세기에 바로 ‘정상’이라는 기준을 설정한 담론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부터 광기는 비정상으로 규정되면서 역사에서 누락된 것이다.

 

   정상이 있는 한 비정상은 배제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제는 비정상의 역사가 정상의 역사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푸코는 침묵의 역사가 되어 버린 비정상의 역사를 복원하려 한다. 즉 동일자들만의 정상적이라고 착각하는 역사에 타자들의 비정상적인 역사라 왜곡돼 있는 역사로 맞짱을 뜨려 하는 것이다.

 

   광기는 결코 그 자체로서 정의될 수 없다. 다만 이성의 반대 개념으로서 정의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동일성은 비동일성(타자성)을 상정하지 않으면 규정할 수 없다. 동일자의 역사 속에서는 타자의 역사를 서술할 수 없다. 그러나 타자의 역사는 엄연히 존재해 왔다. 푸코가 타자의 역사를 재구성하려는 이유는 온정주의적 관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바로 그것이 역사의 나머지 반쪽이기 때문이다.

 

   타자를 배제하는 동일자들의 냉혹성, 그리고 그 냉혹성이 합법, 이성, 논리, 합리 등 대단히 젠틀한 방식으로 가해진다는 사실에 우리는 경악해야 한다. 타자에 대한 동일자의 억압은 각종 근대적 미덕에 입각해 이루어지므로, 우리는 그 억압 구조를 포착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는 폭력적인 억압보다 더 잔혹하다. 이러한 잔혹함을 보여주는 영화가 바로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가 아닐까 한다.

 

   범죄자인 맥 머피(잭 니콜슨 분)는 교도소에서 오리건 주의 한 주립 정신 병원으로 후송된다. 정신 병원이 감옥보다는 자유로울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맥 머피는 정신 병원에 수감되어 있는 하딩, 마티니, 체스윅, 빌리, 데버, 시멜로, 브롬든 추장(인디언), 프레데릭슨 등과 생활하게 되면서, 그들이 보이지 않는 병원 내의 압력에 의해 짓눌려 사는 죽은 인간들임을 간파한다.

 

   * 그리고 그러한 압력의 주범이 수간호사인 레취드(루이스 플레처 분)임을 알게 된다. 여자인 레취드가 권력의 상징이라는 점은 무엇을 시사하는가? 이제 권력은 카리스마 넘치는 남성성에서 보다 교묘하고 우아한 형태로 변형되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 하겠다. 레취드 역을 맡은 루이스 플레처는 그러한 권력의 대리자로서의 냉정한 역할을 완벽한 연기로 소화해 내, 맥 머피 역을 맡은 잭 니콜슨과 함께 각각 아카데미 남녀 주연상을 수상한다. 아래 레취드의 표정을 보라. 소름끼치지 않는가?

 

http://www.youtube.com/watch?v=XOWjdz6Sl7o&feature=player_embed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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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아온님의 댓글

`무엇이 진실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진실라 하는가....
포스트모더니즘은 미로를 헤매는 인간들에게 무덤을 선사하였지...
진리는 더 이상 탐구대상이 될 수 없는 그 어떤 것이 되었고....
실재하는 객관적 진리는 없다라는 극단적 주장까지 나오게 되었지.
일종의 몽매주의라고 할 수 있겠고..
실존주의적 절망 상태를 푸코는 제대로 기술한 사람이라 할 수 있겠지만 글쎄...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기대며 살아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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