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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은 동전 세기와는 다른 셈법을 가진다(2) : <제리 맥과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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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새 회사가 차려졌다. 그렇다면 관리할 선수는? 역시 풋볼 선수 로드 티드웰(쿠바 주딩 주니어 분) 단 한 명이다. 72명의 선수를 관리하던 제리에게 단 한 명의 선수만이 남은 것이다.

제리는 나름대로 한 명의 고객을 위해 노력하지만, 로드는 아직 2류 선수에 불과하다. 로드와 그의 아내 마시가 제리의 사무실로 찾아온 때, 제리는 로드에게 3년간 170만 달러를 지급하겠다는 아리조나 카디널스 측의 팩스를 받는다. 부상을 감안해 주는 조건도 없다.

로드와 마시가 격분한다. 제리는 난처하다. 그러자 이번엔 경리 사원 도로시가 격분하며 제리를 변호한다. 그녀는 제리가 완전히 파산 상태인 것을 잘 알고 있다. 사정을 알게 된 로드와 마시는 도로시의 충성심에 감동한다. 노련한 에이전트인 제리조차도 로드에게 계약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하지만 로드는 제리를 믿고 제리와 함께 한다. 카디널스 측의 조건을 호탕하게 받아들인다.

그러고 보면 제리에게 남은 단 하나의 직원 도로시, 단 하나의 고객 로드, 이 둘은 천군만마나 다름없다. 진정한 지지자는 단 한 명도 결코 적지 않은 것이다.

 

앞으로 제리는 스스로 산 고생을 감내해야 하겠지만, 그는 진정한 매니지먼트를 알게 되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사교 만점의 에이전트였던 제리지만, 단 한 명의 직원과 함께 단 한 명의 선수만을 관리해도 외롭지 않다. 이제 새로운 만남의 세계에 발을 내딛기 시작한 그에게는 사람의 수를 세는 셈법이 달라진 것이다.

 

동분서주하는 제리. 그의 곁에서 그를 지원해 주는 도로시. 둘은 점차 사랑에 빠진다. 도로시의 의리에 제리는 감동하고, 아들을 아빠처럼 예뻐해 주는 제리의 다정함에 도로시도 감동한다. 둘은 마침내 결혼한다.

하지만 제리는 온통 로드에게만 매달리는 빵점짜리 남편이다. 도로시도 제리를 이해하려 하지만, 결혼 생활은 엉망이다. 마침내 도로시는 잠시 동안의 별거를 제리에게 제안한다. 제리와 도로시 둘 모두를 위해. 도로시는 한편으로는 행복한 부부생활을 원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제리가 재기하는 데 자신이 방해자가 되고 싶지 않다. 도로시도 제리도 괴롭다.

별거에 들어간 제리는 로드를 위해, 그리고 새로운 자신의 인생을 위해, 마침내 도로시와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그런 제리를 마음속으로 응원하는 도로시는 재회의 날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의리의 풋볼 선수 로드는 점차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고 마침내 자신의 팀이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경기에서 빛나는 활약으로 일약 스타가 된다. 제리의 헌신적인 노력과 우정, 그리고 변함없는 사랑과 믿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경기를 마친 후 기자들로부터 카메라 세례를 받는 로드는 펑펑 터지는 플래쉬에 우쭐하지 않고, 제일 먼저 제리를 찾는다.

왜소한 몸집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스피드와 체력, 그리고 집중력을 소유한 로드에게 끊임없이 충고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제리가 아닌가? 돈만 밝히던 자신에게 열정을 가르쳐 준 제리가 아닌가? 단순한 에이전트가 아니라 동료이자 친구인 제리가 아닌가?

둘은 눈물을 흘리며 감격의 포옹을 한다. 제리와 로드. 이 두 고독한 사내들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그럼으로써 제리의 리포트는 현실이 된다. 제리의 휴대폰이 울린다. 제리는 본능적으로 도로시라 생각했지만, 로드의 아내 마시의 음성이 들린다. 로드의 휴대폰이 먹통이라 제리에게 전화한 것이다.

 

자신의 리포트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힘겨운 싸움에 지칠 대로 지친 제리에게 로드의 성공은 너무도 중요했다. 자신을 믿어 준 단 한 명의 고객인 로드가 영웅이 된 오늘은 그렇기 때문에 너무도 중요한 날이다. 선수들과 기자들은 제리 맥과이어라고 하는 신념의 인간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의 미래가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 축복의 날, 제리는 뭔가 부족하다. 로드와 그의 부인 마시, 이 긍정적이고 의리 있는 커플의 사랑의 통화를 바라보는 로드는 한없이 허전하다. 제리가 왜 허전한지는 제리 자신도 관객도 다 안다. 그의 곁에 지금 도로시가 없기 때문이다.

제리는 질주한다. 그의 친구 로드가 그라운드에서 그랬던 것처럼. 택시를 집어타고 도로시에게로 간다. 그녀와 자신이 함께 있어야 할 집으로 간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도로시는 뒷걸음질 친다. 물론 놀라서다. 그리고 와야 할 사람이 온 것이 기뻐서이다. 제리가 말한다.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HimOebWLccA

오늘 밤 우리의 작은 회사가 드디어 엄청난 열매를 거뒀어. 그런데 그게 다는 아니었어. 허전하게 채워지지 않는 게 있었어. 당신이 없어서 그래.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고, 함께 웃을 수도 없었어. 난 당신이 너무 보고 싶었어. 세상이란 정말 눈물 나게 비정해. 하지만 사는 게 아무리 힘들어도 당신을 사랑할 거야. 당신이 나를 채워 줘. 그래야 난……

그만해요 제리. 당신이 들어오던 그 순간부터 이미 말이 필요 없었어요.”

도로시가 제리의 말을 막는다. 당연하지 않은가? 이미 자신이 남편을 채워 주지 못하고 있음을 자책하고 있는 아내에게 일장연설이 웬 말인가?

 

또 하나 당연한 것이 있다. 일약 스타가 된 로드는 다른 대접을 받아야 한다. 제리는 일약 스타가 된 로드에게 엄청난 액수의 계약을 안겨 준다. TV 토크쇼에서 이 계약 내용을 처음 듣게 된 로드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눈물을 쏟는다.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을 잊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사람을 마지막에 언급한다. 에이전트 제리 맥과이어가 자신의 영웅임을 시청자들에게 웅변한다.

 

로드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영웅인 제리 맥과이어는 뭐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단지 남들이 사려고 하지 않는 고생을 기꺼이 샀던 사람일 뿐이다.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정말로 대단한 사람일지도 모르지만.

 

 

제리 맥과이어처럼 소신을 갖고 일하고자 하면, 박수치면서 등 돌리는 영화 속 장면처럼, 사람들은 모두 그를 냉정하게 외면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소신을 가진 자의 곁에 1명은 남는다. 1명도 남지 않는 형편없는 집단에서라면 애초에 소신을 가진 자가 나올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1명이 힘겨운 싸움에 동참할 때, 소신을 가진 자는 그저 1명의 지지자를 얻는 것이 아니다. 오직 1명만이 남은 힘겨운 싸움이라면, 그 싸움을 각오한 그 1명은 지지자로서 충분한 수의 인원이다.

그의 소신에 동참하고, 그가 흔들릴 때마다 그를 지탱해 주어야 하며, 마침내 그가 소신이 꺾이는 순간이 올지라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을 지지자란 그야말로 위대한 존재다. 당연히 지지자는 단 1명으로 족하다. 위대한 사람을 2명이나 바란다면 소신이 아니라 과욕일 것이다.

이렇듯 우리가 만나는 소중한 사람들의 수는 동전을 세듯 셀 수 없다. 소중한 만남은 동전 세기와는 다른 셈법을 가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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