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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은 승부를 가리는 일이 아니다(2) : <웰컴 투 동막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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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총을 겨누며 대치하던 국군과 인민군이 이튿날 아침 비를 맞고 있다. 여일은 서택기가 들고 있던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는다. 가락지로 착각한 것이다. 오후가 되면서 더 이상 졸음을 견디지 못한 서택기가 수류탄을 떨어뜨리고, 표현철은 자신의 몸으로 수류탄을 덮어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의 목숨을 구하려 하지만 수류탄은 불발이다.

자기 한 몸 바쳐 수많은 사람들을 구하려 했던 의리의 인간 표현철은 수류탄이 불발한 것에 안도하고,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곳간으로 수류탄을 던져 버린다. 하지만 그 순간 수류탄은 폭발하고 곳간의 옥수수들은 팝콘이 되어 눈처럼 동막골에 내린다. 순간 동막골의 모든 사람들은 알 수 없는 평화로움을 느낀다.

 

자신들 때문에 겨울 곡식을 몽땅 날린 동막골 부락민들을 위해 이제 국군 측 2명과 인민군 측 3명은 손수 감자를 캐러 간다. 그들은 점차 이념에 입각한 그 어떠한 행동도 이곳 동막골 부락민들과의 의사소통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동막골 부락민들과의 만남을 통해 이념으로 오염되기 전 인간 본유의 심성으로 귀의하는 것이다.

어느 날 멧돼지의 공격은 그들이 한마음이 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멧돼지를 잡으며 서로 힘을 합하고, 마침내 동막골 부락민들을 구한 날 밤의 멧돼지 바비큐 파티는 영화 <웰컴투동막골>의 최고의 명장면이다.

이튿날 감자 캐러 가는 그들은 동막골 부락민들의 옷차림으로 갈아입는다. 그들은 군복을 벗으며, 그저 양심과 화합만으로 무장한 인간이 되었다. 군복을 벗어 던짐으로써 적과 싸우는 인간이 아니라 적을 만들지 않는 인간으로 돌아간 것이다.

어떤 이념이든, 그것은 반대 이념과의 대립적 관계 속에서만 성립한다. 따라서 이념은 기본적으로 공격적이요, 정복적이며, 전쟁과 같은 폭력으로써 그 속성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념적 색채란 인간 심성의 매우 작은 영역만을 물들일 뿐이다. 따라서 보편적 심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완전한 속성인 우익과 좌익을 인간을 구분하는 절대적 기준으로 삼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더욱 더 위험한 발상은 지역을 위도와 경도 같은 인위적인 선으로 수치화해 분할하고, 분할된 지역에 이념의 색채를 부여하는 일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특정 지역에 이념적 성격을 부여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A 지역에 우익의 깃발을 꽂는다고 A 지역의 토양이 우익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B 지역에 좌익의 깃발을 꽂는다고 B 지역의 풍속이 좌익이 되는 것도 아니다.

 

동막골은 대단한 유토피아가 아니다. 모순에 찬 서양의 근대가 만들어 낸 이념이 미처 닿지 않은 우리 외할머니댁과 별반 차이가 없다. 이념 이전의 인간 심성이 지배하는 우리들의 평범한 이웃 마을일 뿐이다. 사유(私有)와 공유(公有)의 차이가 없지는 않지만 그러한 차이가 대립이나 반목과 전혀 무관한 어릴 적 마음의 고향일 뿐이다.

하지만 연합군 사령부는 동막골을 인민군 기지로 오해하고, 동막골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군사적 교두보로 삼으려 한다. 동막골은, 동막골 부락민들이 어떻게 사는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지도 위에 존재하는 작전상의 가치에 의해서 평가될 뿐이다.

24시간 내에, 일단 스미스를 구출한 후 동막골을 무차별 폭격하라는 작전 명령이 떨어진다. 동막골에 낙하한 침투 부대원들은 부락민들과의 의사소통을 위해 노력할 의사가 전혀 없다. 이념으로부터 오염되지 않은 동막골 부락민들의 삶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표현철, 리수화, 스미스 등 6명은 동막골에 침투해 부락민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연합군 침투 부대원들을 사살한다. 하지만 여일이 이 과정에서 죽는다. 군복을 벗고 동막골 부락민의 옷으로 갈아입었던 6명은 분노한다. 이제 그들은 동막골의 수호자가 되어야 한다.

6명의 수호자들은, 아직 사살하지 않고 포박해 곳간에 감금해 둔 동막골 침투 부대원으로부터 연합군 작전 사령부의 동막골 폭파 작전에 대해 소상히 듣게 된다. 수호자들은 동막골이 아닌 다른 곳으로 폭격을 유도하는, 목숨을 건 작전을 계획한다.

 

영화 <웰컴투동막골>6명의 수호자들이 동막골을 지키기 위해 장렬하게 전사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고 있다(미군 스미스는 비록 죽지 않지만 그가 죽어야 할 부분은 죽는다). 하지만 죽은 것은 그들의 육신이 아니라 대립갈등이며, 지켜진 것은 동막골이 아니라 이념을 초월한 인간의 근본적 심성이다.

6명의 수호자들은 동막골 주민들과 헤어져 유도 작전을 수행하러 가면서 다시 군복으로 갈아입는다. 하지만 그들이 다시 이념의 인간으로 복귀한 것은 결코 아니다. 도리어 그들이 다시 입은 군복은 파괴자들의 수의(壽衣)를 상징한다. 표현철, 김상상, 리수화, 장영희, 서택기, 스미스, 6명의 수호자들은 목숨을 바쳐 동막골을 지켜낸다.

 

전쟁의 와중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지만, 분명 동막골은 그들이 목숨을 바쳐 지켜내야 할 가치가 있는 곳이었다. 그들의 잃어버린 꿈과 인간으로서의 자존을 일깨워 준 곳이었기에.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fv_U3CdG9iI

 

 

전쟁이란 둘 이상의 국가의 이념이 서로 충돌하고 위협받을 때 일어난다. 한국전쟁도 예외는 아니었다. 남과 북 양측은 자신의 이념의 우월성이 위태로운 지경에 빠지자 이념을 폭력화하고, 국민들을 광인(狂人)으로 전락시켰다.

하지만 폭력으로 이념의 우월성을 지키려는 시도는 역사상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진정한 강자는 폭력으로 무장한 사람이 아니라 폭력을 모르는 사람이요, ‘적과 싸우는 사람이 아니라 적을 만들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폭력적 이념으로 오염되기 전 인간 본유의 심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동막골 주민들은 평화로운 만남의 기술을 세련된 이념으로 포장하지는 않았지만, 도리어 순수한 삶 그 자체로 광기의 인간들에게서 폭력적 이념을 무장 해제시켰다. 동막골 주민들이야말로 진정한 강자요, 위대한 스승들이 아닌가!

만남은 승부를 가리는 일이 아니라는 진리를 삶으로 구현했던 위대한 사람들 덕분에, ‘지구라고 불리는 이 불행한 행성이 재로 변하지 않고, 지금껏 꽃 피고 나비가 날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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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아온님의 댓글

왜 싸워야 하고 왜 죄인이 되어야 하는지 모르는 무지한 자들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무지한 마을 사람들과 만나 벌어지는 해프닝들... 인간은 무지하게 태어나 교육을 통해 멍청해진다는 러셀의 말이 생각 나는구려..러셀 식으로 말하면 무지한 자들 속으로 멍청한 자들이 들어가서 똑똑해 지는 데...바깥세상의 여전히 멍청한 자들에 의해 살해되는 구도가 되는 셈이네...무지한 삶이 옳은 삶인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멍청한 자들에 의해 유린되는 무지한 자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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