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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 제 19 대 명종 : 변란의 시대 (5) : 경 대승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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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은 혁명에 의해 추대된 허수아비 왕이었으므로,

무신 정권 초창기, 모든 권력은 예전의 문벌 귀족들을 대치한 중방에 있었다.

비록 집권자가 바뀐다 할지라도 이는 중방 내부에서 발생한 권력 투쟁의 결과일 뿐, 왕의 역할은 바뀌지 않았으므로,

명종이야 나라가 산으로 가든 말든 그저 한 목숨 보존하며 왕 자리에 앉아 있을 수만 있으면 그만이었는데,

경 대승이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입장이 바뀌게 되었다.

 

지지세력도 별반 없는 26살 젊은이의 준동은,

산전수전 다 겪은 중방 고관들의 눈에는, 혈기에 미쳐 날뛰는 중뿔난 망아지 정도의 가소로운 수준 ... 은 아니었겠지만,

대단한 파괴력을 지닌 혁명이라고 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고,

경 대승 또한 자신의 한계를 잘 알았을 것이므로. 조정이나 중방을 장악하려는 노력 보다는 자신의 신변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여,

자택에 사병 집단인 도방을 설치하고 으르렁 거리게 되었으나,

우리에 묶인 것이 아니었으므로 자신에 대한 반발세력이 나타면 수시로 튀어나가 물어뜯었고,

쿠데타의 주역인 금군의 병사들도 아직 궁궐에서 근무 중이었으므로,

임금은 일종의 볼모가 되어 자신의 친위군인 금군의 눈치를 봐야하는 신세가 되었다.

지 멋대로 정사를 농단하던 무리들은 몰살하였고...

이는 새로이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주체가 없는 묘한 상황으로,

호랑이가 사라진 산을 휘젓고 싶은 늑대들이, 파수견이 사나워 숨죽이고 있는 것과 유사하였는데,

이러한 상황을 연출한 경 대승을 제거하려 해도,

그를 둘러싸고 있는 도방의 장사들이 일당백의 워낙 뛰어난 무인들이라 실행 족족 실패하였고 역습을 받기 일쑤였다.

이러한 살얼음판 같은 정국을 견디기 힘들었던 권신들은 결국 경대승을 집정으로 인정하는 일종의 정치적 타협을 하였으나,

그 사이 신변에 별반 달라진 게 없는 경 대승은 여전히 자택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경 대승은 세력이 미약한 집정이라는 한계 때문에 국정 전반을 장악하지는 못하고 사정기관의 역할을 주로 하였으므로,

일상적인 정무를 보던 문신들은 자율성이 강화되고 결제라인이 단순해져 업무효율이 높아졌으나,

문자가 딸려 복잡한 서류 업무는 꿈도 못 꾸고 가끔 서로 힘자랑이나 하며,

주로 부정 축재와 권한 남용에 종사하던 중방의 고관들은 도방의 등쌀에 개점 휴업상태가 되었다.

따라서 정치의 중심은 자연스레 중방에서 조정으로 넘어가게 되었는데,

이는 계엄이 해제되어 평시체제가 가동되기 시작했다는 의미도 가지는 것이어서,

명종에게는 왕권이 강화되고 임금의 권위가 회복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는 호기가 찾아 온 셈이었으나 ,

그의 상황은 그렇게 편안하지 않았다.

 

임금의 명보다는 제 수장의 명을 더 무겁게 여기는 조폭들의 시대를 살아가야 했던 명종은

자기를 지켜주는 것인지 감시하는 것인지 모를 금군들에 둘러 쌓여,

앞에서 굽실거리는 놈들의 주인을 생각하기에 바빴을 것이고,

자기의 허리를 꺾어 죽일 가능성이 있는 놈을 찾기 위해 노심초사했을 것이다.​

​형처럼 죽을 수 없었던 그는 허리의 안녕을 위하여 경 대승의 심기가 불편해지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하였고,

무슨 짓을 하든 토를 달지 않는 방법으로 경 대승의 위상을  더욱 높여주었으며 도방 체제의 안착을  도왔는데,

덕분에 ​젊은 나이에 자택에 고고하게 머물며 고려를 통치하는 경 대승은

백성들에게는 신비로운 존재로 비쳤겠지만, 권신들에게는 공포의 근원이 되었을 것이다.

도방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시스템으로 인해 실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모호한 상태가 된 명종은,

잦은 숙청과 자연적인 노쇠로 자신을 왕위에 올려준 혁명동지들이 하나 둘 자신의 곁을 떠나고,

경 대승의 유일한 대항마라 할 수 있는 이 의민마저 경주로 줄행랑을 치자,

찬바람 몰아치는 벌판에 홀로 남겨진 춘래불사춘의 심정이었을 것이나

경 대승에게 임금을 어찌하겠다는 마음이 없었고,​ 왕실의 인척이 될 생각도 없었으므로,

그냥 저냥 왕 노릇을 하는데는 지장이 없었는데,

그 무섭던 경 대승이 집권 4년 만에 어이없이 병사하자,

그 동안 그의 발걸음 소리에도 경기를 일으키던 명종은 난생 처음 임금처럼 호령하며 도방의 인원들을 모조리 물고를 내버렸다.

감히 왕을 공포에 떨게 했던 괘씸한 자들에게 추상같은 군주의 위엄을 보인 것인데,

그러고 나서 보니 호시탐탐 권력을 노리는 무식하게 힘만 쎈 권신들을 제어할 만한 세력이 주위에 없었다.​

없던 친위세력이 하늘에서 떨어질 리도 없고, 사방에서 늑대소리는 들리고...

새로운 두려움에 휩싸인 명종은 별 수 없이 저 멀리 경주까지 도망가 나름 잘 살고 있던,

힘 있는 혁명 동지 이의민을 불러들이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명종이 어리석었다기 보다는 그가 살아온 세월이 그만큼 엄혹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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