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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 제 14 대 헌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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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욱

 

어려서부터 영특했다던 그는 안타깝게도 소아 당뇨병 환자였다.

소아 당뇨병...

말 그대로 어린 나이에 발병하는 당뇨병인데,

당뇨병은 일종의 호르몬인 인슐린의 생산 또는 작용에 문제가 생겨 혈당이 조절되지 못하는 질환으로,

생산이 문제인 제 1형과 인슐린에 대한 세포의 반응에 문제가 생기는 제 2형으로 나뉜다.

1형은 인슐린의 생산이 안 되는 것이므로

인슐린만 적절히 투입해주면 사는데 지장이 없어 인슐린 의존성 당뇨병이라고도 하는데,

소아 당뇨병의 대부분은 인슐린 의존성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헌종은 제 1형 당뇨병 환자였을 가능이 높은데....

유일한 치료제인 인슐린이 나타나기까지는 아직도 천년에 가까운 세월이 필요한 시대에 태어났다는 것이 비극이었다.

병의 기전조차 알 도리가 없는 당시 의학 수준으로는 제 아무리 명의라 하더라도,

풀뿌리나 달여 먹이고, 가끔 침으로 온몸을 벌집으로 만드는,

치료인지 고문인지 모르는 짓을 아픈 애에게 자행하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가끔 수은을 멕여 중금속 중독을 추가하기도 하였을 것이다.

뭔 짓을 했던.... 당뇨 합병증은 빈천을 구별하지 않으므로 헌종은 병약한 유,소년기를 보낼 수밖에 없었는데,

11살이 되던 1094년 나라를 무사태평하게 이끌어 오던 아버지가 사망하였다.

 

이리하여 제 한 몸 추스르기도 힘겨운 어린 소년은 동북아 균형자, 고려의 지존위에 오르게 되었는데,

누가 보아도 왕 노릇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므로 어머니 사숙태후가 섭정을 하게 되었다.

인주(경원) 이씨 사숙태후는 섭정의 직위를 이용하여 자신의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고 국정을 장악하고자 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당시 인주 이씨의 좌장 이 자의와 마찰을 빚었는지,

아니면 이 자의가 헌종의 숙부인 계림공 왕 희를 견제하기 위해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이 자의는 병약한 헌종을 대신하여 자신이 누이동생인 선종의 3비 원신궁주의 소생 한산후 왕윤을 왕으로 세우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는 오로지 외척인 인주 이씨가문의 안전과 세력의 공고화만을 위한 계획으로,

이전부터 야심 충만했던 계림공의 입장에서 보면, 왕이 될 기회가 물 건너가게 됨을 의미함과 동시에게,

지고무상한 옥좌의 주인이 외척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되는 주객이 전도된 고려의 기막힌 현실을 나타내는 것이었으므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두 세력 간의 충돌은 필연이 되었는데,

왕실과 외척세력을 대표하는 두 거인의 싸움은 조정을 난장판으로 만들었고,

이 난장판에서 정치 초년생인 섭정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결국 그저 병약한 아들을 둔 불쌍한 과부에 불과한 신세가 되고 만 사숙태후는

이 자의가 자객의 손에 살해되자 두 손을 들고 섭정자리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무사태평한 세월을 보냈던 선종은 설마 이러한 상황이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나,

무심한 역사의 수레바퀴는 자기의 관성대로 굴러 계림공의 손을 들어주었고,

고려의 조야는 모두 승자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제 고립무원이 된 12살짜리 소아 당뇨 환자 헌종에게 남아있는 선택지는 양위가 유일하였고...

그는 1095년 왕위에서 물러나 일 년 남짓의 재위를 마치고

2년여를 더 살다 14살을 일기로 병사하였다.

 

왕이 될 수도, 되어서도 안 되는 아이였는데....

어른들 욕심에 이리저리 휘둘리며 마음고생만 하다가 명을 단축한듯하여 안쓰럽다.

그 동안 부자상속보다는 형제상속이 더 잦았던 고려에서

나름 명군 소리를 듣던 선종이 왜 이러한 무리수를 두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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