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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 제 27 대 선덕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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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덕만
진평왕의 장녀 또는 차녀로서 한국사 최초의 여왕이며,
김유신 , 김춘추 등 신라 최고의 영웅들을 휘하에 두고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은 여걸...로 알려져 있다.

이 여인은 632년 진평왕이 아들이 없이 죽자 화백회의에서 왕으로 추대하였다고 하는데...
보수적인 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웠을 귀족들이 여왕의 탄생을 순순히 인정하였을까?
당시 신라가 아무리 후진 사회였다 해도, 그래도 국가인데, 성골이라는 사이비 종교 이론이 먹힐 정도로 만만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아마도 진평왕 말년에 있었던 칠숙의 반란 시, 진평왕의 헛소리에 반대하던 귀족들이 일망타진 되었고,
그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김 용춘, 춘추 부자와 김유신 같은 공주 측근들의 서슬에, 

이 말도 안되는 명분을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인 것일 것이다.
뭐가 되었건, 과도기적 혼란을 상징하듯, 여왕은 즉위 후 을제, 김용춘 등에게 대리 청정하게 하였다.
김용춘의 신분 내력 또한 복잡한데, 우선 진지왕의 맏아들이므로 여왕의 오촌 당숙이 되고,
천명공주의 남편이므로 제부 또는 형부도 되면서, 나중엔 여왕의 3남편들 중 하나라는 신분도 가지게 된다.
성골이건 뭐건 개판인 족보는 전혀 개선되지 않은 듯하다.

즉위 이듬해에 신궁에 스스로 제사 지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친정을 한듯한데,
자체 무력을 갖지 못한 여왕이었으므로, 일반적인 왕처럼 정사를 보았다기 보다는,
비상체제를 평시체제로 바꾸었다 정도일 것이다.
신라의 사정이야 어떻든 백제는 또다시 침입을 하였는데, 

여왕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을 것이나, 어찌어찌 막아낸 듯하다.

다음 해에 연호를 건평으로 바꾸었고 분황사를 완공시켰으며, 이후에도 수시로 절을 짓는 등 불교에 많은 투자를 하였다.

5년째엔 옥문곡에 숨어있는 백제 게릴라를 신기를 발휘해 찾아내었다는데,
국경 경비 및 방어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했으면 서라벌 근처까지 대규모 게릴라가 침투하는 것을 몰랐단 말인가?
7년에는 고구려의 칠중성 공격을 성공적으로 격퇴하였으나,
11년에는 백제 의자왕의 대공세로 성을 40여개나 빼앗겼고, 요충지 대야성을 잃었으며,
당항성까지 백제와 고구려의 연합공격을 받게 되어 나라가 거의 망할 지경이 되었다.
이에 김춘추를 예전의 상국 고구려에 보내어 동맹을 요청하였으나, 그동안 쌓인 게 많은 고구려는 도움은 고사하고 김춘추를 억류시켜버렸다.
이에 신라는 김유신을 보내 일전 불사를 외치며 무력시위를 하였고... 

당나라를 막기에도 벅찬 고구려는 김춘추를 풀어주었다.
고구려에 실망한 신라는 다시 당에 매달렸고....

12년에 당태종 이세민이의 고구려 공격을 돕기 위해, 3만이나 되는 군사를 동원하였으나,

고구려는 멀쩡하였고 그 사이 백제에게 성을 7개나 빼앗겼다.
이렇게 헛짓만 하며 국력을 고갈시키는 정부를 보는 귀족들의 시선이 고울 리만은 없었으므로, 

귀족세력의 대표 비담을 상대등으로 삼아 국정에 참여시키는 등 불만을 달래기 위해 애썼고.

13년에는 김유신을 대장군으로 삼아 다시 측근 세력에게 힘을 실어 주었는데,

김유신은 신라 최고의 영웅이자 핵심 측근답게,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백제를 공격하여 7성을 도로 빼앗았다.
....김유신이 없었으면 선덕여왕은 어떻게 왕 노릇을 했을까?
14년에는 당에서 돌아온 자장의 건의를 받아들여, 나라가 망할 지경인데도 국력을 기울여 황룡사 구층 목탑을 지었다.
이러한 정신 나간 짓과 무능에 열 받은 비담과 염종이 16년에 반란을 일으켰고...

그 와중에 왕이 죽었다.

뭇 영웅들의 헌신적인 보좌를 받으며 나라를 다스린 초유의 여인 군주.
현대의 페미니스트들을 열광시킬 수 있는 아이템임에는 틀림없으나
그녀의 능력은 실망스러웠다.
신라 역사상 최고 영웅들의 보좌를 받으면서도 나라를 멸망 직전으로 몰고 갔고
여인으로서의 한계와 더불어 현실 감각도 떨어져, 주변 강대국들의 무시와 멸시를 받았다.
현실에서 좌절을 겪을 때마다 불교로 도피하였고,
남편 셋에 많은 애인들까지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식을 보지 못해, 그 알량한 성골도 이어가지 못하였다.
약간의 신기를 초인적인 예지능력으로 미화하는 경향도 있으나....

평범한 무당도 그 정도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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