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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 제 25 대 평원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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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원왕

평강 공주의 아빠로 바보 사위를 맞이한,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만고의 진리를 일찌감치 실증한 양반으로,

딸자식의 땡깡에 속수무책인 평범한 아버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나,

쇠퇴기의 고구려를 다시 강자로 만든 중흥 군주이다.

 

휘는 양성,

어린 나이에,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된 고구려의 왕노릇하느라 노심 초사했던 양원왕의 맏아들이다.

559년 왕위에 올라,

굶주린 백성들을 구휼하기 위해, 먹는 음식을 줄이고, 농상을 장려했으며,

선대부터 축조하던 장안성 공사를 일시 중단하기도 하는 등 어진 정사를 펼쳤다.

아버지 시절, 귀족들 싸움에 넌더리가 났는지 평민 출신의 사위를 맞이하였는데,

비록 딸자식에게 양보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이 양반에게 온달은 신의 한 수 였다.

온달은 바보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게

수나라의 전신인 북주와 현재의 내몽골 지역인 배산의 들판에서 싸워 승리하는 등,

야전에 능한 훌륭한 장수였으며, 확장하는 나제 동맹을 막아주는 버팀목이었다.

이 든든한 사위가 친위 세력이 되어 주었기에,

왕은 어진 정사를 펼쳐 민심을 수습할 수 있었고, 국력을 회복시킬 수 있었다.

 

대륙의 정세가 변화하여 북주가 수로 바뀌었고 남조가 멸망하여 통일왕조가 되었으며,

복속했던 거란의 일부가 수로 투항하는 등 고구려에 대한 위협이 증대하자,

남쪽에 대한 공세를 중단하고 장안성을 완성하여 천도하였다.

이 장안성은 이어진 수, 당의 침입을 막는 최후의 보루가 되었으며,

수습된 민심과 회복된 고구려의 국력은,

이어지는 통일된 대륙의 계속되는 침략에 저항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평원왕이 고구려를 중흥시키지 않았다면

이어진 수,당의 침입에 대한 고구려의 강력한 저항은 생각도 할 수도 없었을 것이고

우리 역사에서 고구려는 사라졌을 것이다.

당대의 명군, 평원왕은 32년간 재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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