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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성지(聖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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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귀하고 중요한

우리들의 성지(聖地).

 

성지에서 우리의 조상은

터전을 지키려 창과 방패를 들고

적에 맞서서 싸웠지.

 

또한 우리들의 성지(聖地)는

우리들이 처음 터잡고 세력을 일으킨 곳이야.

 

그만큼 중요한 우리의 성지에서

우리들은 과거의 강성했던 모습만을 기억한 채 참변을 일으켰고,

그 결과 성지는 피로 물들여졌다네.

 

피로 물들여진 성지를 보니

슬프지 아니한가?

 

과거의 모습으로 인해

허영심은 가지지 아니하고,

서로서로 화합하여

성지(聖地)를 가꾸어나가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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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에서 가르키는 성지(聖地)는 발칸반도에 위치한 코소보 지역을 가르킨다. 코소보 지역은 세르비아 최초의 국가가 일어난 곳이기도 하고 세르비아 민족의 성지이기도 하다. 코소보가 세르비아 민족의 성지가 된 이유는 코소보 전투에서 세르비아를 지배하려는 오스만 제국-이민족 에 맞서 싸웠기 때문이다. 코소보 전투에서 세르비아가 오스만 제국에 패배한 이후 코소보에 주로 거주하고 있었던 세르비아인들을 대신해 알바니아인들이 코소보 지역에 많이 이주하였다. 이로 인해 코소보 지역은 현재엔 알바니아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으며, 향후 분쟁의 원인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 구유고 연방(1945-1992)이 해체되고 14세기 강성했던 세르비아 제국의 부활을 외치는 대세르비아주의가 결국 참혹한 살상과 피를 불러왔다. 구유고 연방에 속해있었던 코소보도 이를 피해갈수 없었다. 밀로셰비치를 비롯한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은 코소보에 주로 거주하던 알바니아인들을 내쫒고 세르비아의 지배권을 강화하려 시도하였다. 이미 구유고 연방이 해체되기 이전에 코소보의 자치권은 박탈되었으며 코소보의 알바니아인들은 세르비아인들에 대한 반감이 커져가고 있었다. 결국 알바니아인들은 1997년 코소보 해방군을 결성하였으며 본격적인 분쟁의 시작은 1998년 세르비아 경찰이 코소보 해방군에 살해당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코소보에서 세르비아인들과 알바니아인들 간의 유혈충돌이 자주 일어났으며 코소보 사태는 국제적인 문제로 떠올랐다. 결국 코소보 사태는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UN의 개입으로 인해 종결되었다. 그러나 세르비아인들과 알바니아인들간의 민족갈등은 여전하다. 2008년, 코소보는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였고, 이후 코소보는 108개 국가들로부터 주권국으로 승인받았다. 하루빨리 코소보에 진정한 평화와 화평이 찾아오길 바란다.

[이 게시물은 마루밑다락방님에 의해 2015-08-02 11:05:32 역사와 문학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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