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고려사 분류

고려 : 제 19 대 명종 : 변란의 시대 (1)

컨텐츠 정보

  • 4,437 조회
  • 0 추천
  • 0 비추천
  • 목록

본문

왕 호

 

인종의 3째 아들로서 위로 형이 둘씩이나 있었으므로 옥좌와는 좀 거리가 있는 신분이었으나,

사람 팔자는 알 수가 없어서, 둘째 형 대량후가 큰 형에 의해 일찌감치 무력화 되었고,

1170년 무신 정변으로 놀기 좋아하던 큰 형이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나이 40에 느닷없이 왕좌에 앉혀졌다.

 

무신 정변은 어떤 고상한 이념이나 포기할 수 없는 가치 따위를 수호하기 위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

다분히 우발적으로 시작되어 기존 질서의 무차별적 파괴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혁명의 주체들은 호랑이 등에 올라탄 형국이 되었는데,

기르던 개에게 뒤꿈치를 물린 꼴이 된 의종은 정 중부를 암살하려 하는 등 혁명의 최대 걸림돌로 작용하였으므로,

그들은 의종을 폐위하고 신왕을 옹립하는 필연의 수순을 따르게 되었다.

따라서 명종은 권력을 내려놓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무신들에 의해 얼굴마담이자 방패막이로 고용된 왕에 불과하였는데,

그는 이러한 자신의 한계와 역할을 잘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단 한 번도 실권을 탐내지 않았고, 주인이 누구로 바뀌든 그에게 순응하였으므로,

대궐 밖에서는 피가 강이 되어 흐르는 참극이 되풀이 되었어도,

때늦은 사랑타령과 손자들의 재롱 속에 세월을 보낼 수 있었고,

고희를 넘겨 장수할 수 있었다.

 

무신정변의 세 주역 중 정 중부는 인종 때 군적에 올랐다는 것으로 보아 귀족과는 거리가 먼 신분이었던 듯한데,

풍채가 비범하여 금군에 발탁되었다 한다.

그는 풍채뿐만 아니라 사람을 끄는 매력도 있었는지 인종의 비호를 받아,

장교가 된 후에 그 유명한 수염사건의 여파로 당대 최고의 권력자인 김 부식과 원한을 맺었어도 무사할 수 있었다.

초기에 문신들과 첨예하게 대립했던 의종도 정 중부를 신임하여,

고과점수가 썩 높지 않은 그를 강화된 친위군의 수장으로 만들었고 상장군까지 시켜주었다.

이렇게 두 임금의 총애를 받으며 60대 중반까지 살았으므로, 자기 인생에 별 불만이 없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뿌리 깊은 무신 천대의 전통은 그를 정변의 지도자로 내몰았다,

혁명이 진행됨에 따라 왕과의 개인적인 친분 때문에 괴로워 했...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올라 탄 호랑이에게 물려 죽을 수 없었던 정 중부는 의종을 폐위시켜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

명종을 즉위시킨 후 문하평장까지 고속 승진한 그는 이 의방, 이 고와 함께 벽상공신으로 추대되어 공신각에 초상이 걸리는 광영을 맛보았으나,

실권은 이 고, 이 의방 등의 젊은 과격파에게 있었으므로 또 하나의 얼굴마담에 불과한 처지였다.

 

막부 정치가 본격화한 명종 초기, 정권의 주도권을 쥔 사람은 이 고였는데,

그는 무신 정변을 실질적으로 기획, 실행한 인물로서, 정 중부를 끌어들인 것도 그였으며 보현원에서 문신들을 가장 많이 살육한 사람도 그였다.

이러한 추진력 덕분인지 그는 무신정변의 3공신 중에서 추종자을 가장 많이 거느렸다 하는데,

능력보다 간이 더 컸는지 아예 왕조를 바꾸고자 하였다.

왕은 자기가 되겠다...고 대놓고 주장하지야 않았겠으나  세를 모으다 보면 그 의도가 새어나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적과 동지를 떠나 그에 대한 반감이 심하였을 것이다.

특히 구 체제에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대장군 한 신 등 노장군들은 더 크게 분노하였는지,

궐기하여 이 근본도 모르는 놈들을 단매에 때려 죽이려 하였으나,

노익장을 과시해 보기도 전에 발각되어 이 의방에게 제거되고 말았다,

중방에 앉아 미주알 고주알 잔소리를 늘어놓던 노인네들은 이렇게 제거되었으나,

이 고가 꿈을 이루려면  최대의 협력자이자 경쟁자인 이 의방이라는 산을 넘어야 했는데,

이 의방의 능력 또한 이 고 못지 않았으므로 정면대결 보다는 암살로 해결하려 한 듯하다.

그러나 믿었던 동지 채 원은 이 의방과 더 친했던지 정보를 누설하였고,

이 고는 궁문을 나서다 쇠몽둥이 맞아 죽고 말았다.

 

이 의방은 본관이 전주로 이 성계의 6대조 백부가 된다고 하는데,

아버지가 대장군이고 어머니가 정승 집 딸이었으므로 천한 신분은 아니었으나,

고려의 뿌리 깊은 무신차별은 그를 분노하게 하였고 혁명가로 이끌었다.

한 뇌가 지랄을 떨 때 그의 직책은 이 고처럼 견룡행수로서 하급 지휘관에 불과하였으나,

친위군인 견룡군 병사들을 실질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위치에 있었으므로 정변의 주역이 될 수 있었다.

정변의 발의자 중 한 사람이었던 그는 이 고, 채 원등과 함께 칼을 들고 혁명의 실무를 수행하면서,

문신이라고 이름이 붙은 것들은 서리까지도 죽여야 한다는 등의 과격한 주장들을 쏟아 내었다 하는데,

그 공인지 명종이 즉위한 후 벽상공신이 되었고 고속 승진하여 정권의 정점에 근접하였으나,

같은 공로로 공신이 된 이 고에 비해 약간의 손색이 있었는데,

또 다른 혁명 동지 채 원의 도움으로 이고를 제거하고 집권할 수 있었다.

 

이 의방, 이고 등과 함께 무신정변을 주도했던 채원은, 의종이 정 중부를 암살하려 하자 의종을 시해하려 했던 인물로서,

면밀한 사고 보다는 행동이 앞서는 인간형이었던지 벽상 공신이 되지는 못하였다.

그는 혁명동지들의 갈등의 중간에 끼어 고뇌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이 의방의 편을 들어 그의 집권에 결정적인 공을 세웠는데,

사후 보상이 만족스럽지 못했는지, 다시 이 의방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제거되었다.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최근글




새댓글


페이스북에서 만나는 마루밑다락방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