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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 왕 식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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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의 사촌 동생이라 한다.

6촌이라는 설도 있으나뭐가 되었건태조가 이복형제도 없는 외아들이었으므로 친동생과 다름없는 가까운 친척이었다.

  일가가 궁예에 투항할  행동을 같이  것으로 보이며 태조의 쿠데타에도 일익을 담당한 듯하다.

태조가 평양을 수복한   관리를 맡았으며이후 청천강까지 영토를 넓혀 신임을 얻었다.

북방은 태조의 기반이자 배후로서 극히 중요한 지역이었으므로 관리를 총괄하는  식렴의 정치적 위상 또한  대단했을 것이다.

통일 전쟁에도 깊숙이 관여하였으며 금필 등의 공신 또는 호족 세력을 견제하는 역할도  듯하다.

 

기반이 미약하여 호족들을 통제하기 불가능했던 혜종은 또 다른 호족  규와 제휴하여 왕권을 유지하고자 하였고, 왕 규는 가장 큰 위협인 정종 형제를 제거하고자 하였는데

이는 사연이야 어떻든 겉보기에는 정권을 잡은 외척이 왕실을 핍박하는 전형적인 세도정치의 모습이었으므로,

왕실의 어른인  식렴이 보기에 영 마땅치 않았을 것이고정종 형제의 반격으로 쟁투가 교착상태에 빠지자, 혜종보다는 정종이 왕실을 위해 낫다는 판단을 한 듯하다.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던  식렴의 개입은 정쟁의 교착 상태를 일거에 깨뜨렸고,

혜종의 갑작스러운 병사와 왕규의 어설픈 반란 시도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역사의 기록을 만들었을 것이다.

 

정치의 전면에 나선 왕 식렴은 정종을 왕위에 올린  나라의 근본적인 개혁을 위해자신의 근거지인 서경으로 수도를 옮기고자 하였는데,

천도는 난맥상인 고려의 지배체제를 일거에 바꿀  있는 강력한 수단이기는 했으나, 그만큼 위험 부담이  사업이기도 하였다

예상대로  많은 난관들이 발목을 잡았는데결정적인 장애물은 민심의 이반과 호족들의 비협조 내지 반발이었고결국 정종의 이상한 발병과  식렴의 뜻하지 않은 죽음으로 추진 동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정종의 발병 원인이 천둥소리라는 황당한 이유인 것으로 보아,  식렴도 곱게 죽은 것은 아닌 듯한데,

평양의 공사 현장에서 아들이 죽는 바람에 상심하여 죽었다는 설도 있으나그보다는 독살이나 암살 같은보다 은밀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혜종기가  규의 시대라면 정종기는  식렴의 시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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