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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 제 49 대 헌강왕, 제 50 대 정강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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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강왕 김 정

 

30대 초반에 사망한 경문왕의 큰아들로서, 875년 10대 초반의 나이로 즉위했다.

어린 나이이므로 숙부 김 위홍이 섭정하였고 왕은 독서하며 지냈다고 한다.

이듬해에 황룡사에 백고좌를 설치하여 강의 및 토론을 하게 하였고,

왕도 그 강의를 들었는데, 매우 총명하여 한 번 들으면 바로 알았다 한다.....천재 소년이었다.

3년에 신라 종결자 왕건이 송악에서 태어났다.

4년에 당의 책봉을 받았고 일본의 사신도 내왕하여 분위기 좋았는데...

당에서 황소의 난이 일어났다. 천하가 난세로 몸살을 앓기 시작한 것이다.

5년에 친정을 시작하여, 국학에 나가가 강의를 들었으며 지방을 순행하였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반란이 일어났으나, 진압하여 일길찬 신홍의 목을 베었는데,

이게 자극이 되었는지 연말에 군대를 사열하고,사냥을 실시하였다.

6년에는 좀 안정이 되었는지 월상루에 올라 시중 민중의 아첨을 들었다.

백성들이 기와로 지붕을 덮고, 숯으로 밥을 지을 정도로 태평성대라는 말이 이때 나온 말이나,

나라 전체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경주 주변의 귀족들이 그렇게 산다는 말일 것이다.

어쨌든 백성들도 기아에 허덕이지는 않았고... 오랜만에 평온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왕이 이 아첨 소리를 듣고 즐거워했다고 하는데....그리 대단한 천재는 아니었나 보다.

여세를 몰아 이듬해에는 잔치를 베풀었고, 일본으로 부터 선물을 듬뿍 받았다.

그 다음에는 별다른 일이 없었고

11년에 최치원이 귀국하였고, 당에 사신을 보내 황소의 난이 진압된 것을 축하하였다.

그리고 재위 12년 차인 886년 20대 초반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음...원성왕의 자손들은 너무 일찍 죽는다.

 

이 시기에 처용가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처용은 아라비아 상인 출신이라는 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시기 국제 교역이 활발하였음을 알 수 있는데,

매년 자연재해가 덮치니, 먹고살려면 무역이라도 해야 했을 것이다.

 

 

 

정강왕 김 황

 

헌강왕의 아우이다.

형님이 돌잡이 아들만 남기고 죽는 바람에 886년 20대 초반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다음 해에 황룡사에 백고좌를 마련하고 강의를 듣는 등 뭔가 시작해보려 한 것 같으나

골품 귀족들의 반항은 여지없어서 ,한주에서 이찬 김 요가 반란을 일으켰다.

경주에서 꽤 먼 지역이었으나, 군대를 파견하여 진압하였고 김 요의 목을 잘라버렸다.

....아직 신라는 살아있었다.

하지만 바로 병이 들어 여동생에게 왕위를 넘기고 887년 사망하였다.

재위는 딱 1년이었다.

 

음... 일찍 죽은 것도 문제지만 여동생에게 왕위를 넘긴 것은 더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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