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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유튜브 동영상:세르비아-불가리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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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이 일어나게 된 원인은 1878년 베를린조약 때문이다. 유럽의 화약고 발칸의 국경을 그들 스스로가 맺게 하는 것이 아닌, 열강이 발칸의 국경선을 확정했으니, 발칸 제국(諸國)의 불만은 필연적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가장 심했던 데가 불가리아로, 산 스테파노 조약으로 인해 얻은 마케도니아, 동루멜리아 일대를 손에 넣었으나 베를린조약으로 인해 오스만제국에 할양해야 했다. 이러한 국경선의 변동은 향후 일어날 전쟁을 잉태하고 있었다.

 

 1885년 9월 오스만제국의 자치령 동루멜리아에서 대다수를 점하는 불가리아인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9월 16일 동루멜리아는 불가리아에 합병되었다. 오-헝 제국의 사주를 받은 세르비아의 국왕, 밀란 1세는 이런 불가리아의 팽창을 못마땅하게 여겼고, 지나친 친오정책으로 인해 정치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서 있자 이를 만회할 목적으로 11월 14일 불가리아 내로 침략하였다. 세르비아군 6만 명은 비딘 방면과 소피아 방면으로 진격하였다. 하지만 각지에서 빠른 기동력을 살려 북쪽의 전장으로 올라온 불가리아군의 완강한 방어와 유격전이 세르비아의 발목을 잡았으며, 11월 17일부터 19일까지 일어난 슬리브니차 전투는 전쟁의 분수령이 되었다. 세 차례에 걸친 세르비아군의 공세는 실패로 끝났으며, 많은 손실을 입은 세르비아군은 본국으로 퇴각하기 시작하였다. 반면 불가리아군은 세르비아 방면으로 진격하여 11월 28일 세르비아의 국경도시, 피로트를 점령하였으며 세르비아군은 피로트에서 좀 더 위쪽에 있는 니시로 퇴각하였다. 이때 오-헝제국이 불가리아에게 세르비아 영내로 깊숙히 진격할 시 개입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전쟁은 소강상태로 있다가 다음해 3월 3일 부쿠레슈티 조약으로 인해 종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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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질적인 전쟁 기간(11.14-11.28)동안 비딘 방면의 세르비아군은 불가리아군에 고전을 면치 못하였다.

2. 참고로 전쟁 당시 불가리아는 제정러시아의 간섭 하에 있었다. 당시 불가리아공(公) 바텐부르크의 알렉산다르는 이를 견제하려 했으나 되려 러시아의 사주를 받은 친러파에 의해 1886년 공위(公位)에서 쫒겨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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