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일반

강릉 건금마을 용물달기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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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마루밑다락방]
 
필자가 사는 지역에서 용물달기 행사를 하길래, 생전 처음보는 행사라 유심히 보고 있다가 집으로 돌아와서 사진 찍은것과 함께 알아보다 보니 건금마을 용물달기 행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절기나 크고 작은 명절들이 많다. 그중에서 필자가 본 건금마을 용물달기 행사는 대표적인 지역 행사이다.
그럼 필자와 함께 건금마을 용물달기 행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옥녀가 거문고를 타는 형군이라하여 금산(琴山)이라 하였다가 후에 강릉김씨들이 많이 산다고 하여 '금(琴)'자 대신에 음이 같은 '금(金)'자를 써서 금산리라 한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 이 마을 앞에서 넓은 들과 남대천이 있다. 뒤로는 솔봉이 있는데 산줄기가 세 갈래로 뻗어내려 솔밭처럼 생겨 붙은 이름이다. 
강릉시 외곽에 위치한 금산리는 현재 267가구에 558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곳에서 2월 23일 음력 정월대보름을 맞아 '건금마을 용물달기'놀이가 펼쳐졌다. 

참고로 용물달기는 용수 기원제 형식으로, 예로부터 절월 대보름 전날 저녁 짚으로 수신인 용 모양을 사람 크기로 만들어 마을 동서남북 네 곳 우물에 용을 잠시 담갔다가 자정무렵 꺼낸 다음 임경당 우물로 옮겨 제사를 지냈다. (재)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주관으로 '작은공동체 전통예술잔치' 지원 축제로 행해진 올해 용물달기 놀이는 마을 주민은 물론 지역 주민 및 외부 관광객들이 다함꼐 참여할수 있도록 오후 3시 가량부터 진행되어 일몰 이후 휘영청 달이 뜬 가운데 달집태우기 행사로 끝났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어른 아이 할 것이 없이 이 놀이를 마을 대동제로 흥겹게 즐기는 모습이였다. 처음 이 놀이를 찾은 외부 관광객들 역시도 그 참여인원의 규모와 마을 분위기, 푸짐하게 음식을 만들어 나누는 축제를 즐기며 그야 말로 인심(人心)을 체감할수 있다.

건금마을 용물달기 행사는 강릉김씨 집안에서 행해지기 시작하여 현재는 건금마을용물달기보존회 주관으로 마을 주민 전체가 동참해 행해지는 정월대보름 축제가 되었다. 용물달기가 행해지는 임경당은 조선시대 중종때 강릉의 12향헌 중 한 사람인 김열의 고택으로, 강원도 유형 문화재 제 46호로 지정되어 있다. 
강릉김씨 집안에서 행해진 정월대보름 행사지만 이곳 우물을 공동으로 사용한 마을 주민들도 동참하며 오늘날까지 지속되어가고 있다. 용물달기는 "용이 물을 달고 온다"는 뜻으로 우물이 마르지 않기를 바라는 주술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500여년 역사를 가진 건금마을 용물달기 재연이 시작된 때는 오후 3시경이다. 마을회관에서 풍물패를 앞세운 가운데 마을을 돌며 지신밟기를 하는데, 이때 짚으로 만든 용을 수백 명이 양 옆으로 붙잡고 가는 행렬과 풍물패 뒤를 이어 마을 주민들이 저마다 물동이를 하나씩

이고 지고 가는 모습이 장관이다. 또한 용이 불을 내뿜는 모습을 형상화한 모습이 인상적인데, 용이 내뿜는 연기는 잡귀와 액을 쫓고 마을을 정화하는 의식의 하나로서 세심하게 만들어진다. 용을 만드는 방법은 다양한데, 건금마을에 사는 어임수, 김흥남, 최근우의 고증에 따르면 짚으로 먼저 줄 꼬기를 한 뒤 줄 드리우기, 줄 엮기, 줄 말기 등의 순으로 용을 네댓 개 만든다. 사람이 어깨에 메고 달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지나치게 크게 만들어 수십 명이 들어 나르거나 암수로 나누어 만드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짚으로 용을 만드는 동안 마을 사람들은 약밥을 시루에 찌고 백설기를 하여 제물을 장만한다.
제례는 임경당 우물 안에 넣어두었던 짚용을 꺼내놓고 우물 앞에서 거행하는데, 유교식 축문을 간단하게 읽는다. 신주는 ‘영정용왕지신(靈井龍王之神)’이며 축문 내용은 용왕신에게 물이 잘 용출되기를 바라는 뜻으로 제물을 차려 빈다는 것이다. 임경당 뒤, 우물을 들여다보니 꽤 깊이가 된다. 제례가 진행되는 동안 마을 주민과 참관객들은 뒤꼍 담장 안쪽을 에워싸고 건금마을만의 정월대보름 의식을 관람했다. 전통 제례를 경험할 일이 거의 없는 아이들 역시 신기하게 이 제례를 참관했다.
제사가 끝나면 사람들이 물 뜰 그릇을 하나씩 들고 용을 새끼줄에 매달아 들고서 “용물달자! 용물달자!” 외치며 동서남북 사방의 샘터로 가 용에게 물을 적시고 끌고 오는데, 다른 사람들은 샘터 물을 용 뒤에 조금씩 뿌리다가 임경당 우물까지 와서 물을 붓는다. 물을 뜨러 나설 때는 나무막대기로 물그릇을 두드려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들판을 향해 새 쫓기를 하며 마을의 나쁜 액을 쫓는다. 주민들이 용을 앞세우고 사방 샘터에서 “용아 용아 물달아라”를 외치며 물을 떠다 다시 임경당에 붓는다. 이곳은 가뭄이 시작되기 전 물줄기가 풍부한 샘에서 물을 길어 우물에 부으면 그 또한 물이 풍부해진다는 믿음에 바탕한 세시풍습이다. 이후 마당 앞에서 대나무를 들고 한바탕 흥겹게 춤을 추는데 이 또한 건금마을 용물달기의 독특한 의식으로 마을 공동체의 소속감을 고취시킨다. 모든 행사가 끝나면 우물 옆에 용을 말아 정히 모시고 음복을 한 뒤 약밥 시루를 들고나와 참여한 사람들이 나누어 먹는다.


건금마을 부녀회에서 정성을 들여 넉넉히 준비한 약밥과 소고기무국과 갖은 나물, 갓 절인 김치와 깍두기를 곁들여 떡과 부침, 동동주와 묵 무침 등으로 대보름 음식을 나누어 먹는 가운데, 임경당 마당 한쪽에서는 떡메로 찰떡 만들기 체험을 하는 사람들과 그 곁에서 난로에 구운 고구마와 식혜를 즐기며 그야말로 잔칫집을 구경하는 사람들은 신명 넘치는 잔치 분위기에 한껏 상기된 표정으로 달집태우기 행사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저녁 7시경 해가 넘어가자 달집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린다. 이미 대형 달집은 사람들이 달아둔 소원지로 한 가득이다. 풍물패와 함께 마을 주민들이 달집을 둘러싸고 한 해의 무사안녕과 풍년을 빈다. 달집이 선 빈 들이 사람들의 소원으로 꽉 들어찬다. 달집에 불을 놓자 그 꼭대기까지 단번에 불이 솟는다.


임경당 조선시대 상류주택의 별당 건축물인 임경당은 김광헌의 장자 김열 선생의 아호에서 유래했다. 김열 선생은 이율곡과 동시대 사람이다. 임경당 평면은 정면 3간 측면 2간으로, 전면에 퇴청이 있고 대청 2간과 방 1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청은 여름을 위한 공간으로 전면에 있는 굽널 네 짝 세상 분합문은 ‘들어열개’에 의해 전면이 개방되어 시원한 바람을 맞이하게 하였다. 대청 바닥은 넓은 널을 짧게 잘라 끼워놓은 우물마루이며 천장은 우물 천장으로 되어 있다. 온돌방은 대청과 방 사이에 사분합문을 두어 큰 공간을 만들 수 있게 되어 있고, 실내 환기 및 통풍을 위해 전면 벽체에는 개폐 가능한 환기창을 두고 있다. 퇴청에는 난간이 있고 퇴랑은 원호로 아름답게 만들었다. 팔작지붕 형식의 1고주 5량 구조로 된 익공계 양식의 건축물이다. 현재의 건물은 1825년 증수한 것으로 몇 차례의 보수 공사가 있었다. 전면 기둥은 둥근 기둥이며 외부로 향하는 창호는 겹 창호로 짜여져있다. 별당 측면에 ‘ㅁ’자 배치의 본 채가 있고 제월루와 사당이 있다. 조선시대 별당 건축의 전형적인 건축물로 단정한 모습을 하고 있다. 


2014년 10월 4일 편집

2015년 09월 21일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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