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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역사상 가장 방탕한 황제 "정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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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 23 (1487)에 마흔 고개를 갓 넘은 명나라 헌종이 죽고 그의 아들 주우당이 즉위했는데, 주우당 그가 바로 효종이다. 그러나 효종은 안타깝게도 병에 걸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그의 큰 아들이자 명나라 역사상 방탕하기로 유명한 주후조가 왕에 오른다.


물론 모든 사람들은 말이다. 처음부터 난봉하거나 방탕하지는 않는다. 주후조 역시도 어렸을때만 하여도 학문을 즐기고 불교와 산스크리트에 능통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황제가 된 이후로는 이렇게 생각하였다고 한다. "자기가 천자가 되었으니 아무도 자기를 건드리지 못하리라 여기고 더욱더 대담히 쏘아다니며 난봉을 피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은 아니였다. 환관을 사랑하며, 라마교에 광신하였으며, 유희를 좋아하며 국비를 낭비하였다. 국비를 낭비해 이로 인해 반란도 일어났다고 한다.... 고삐 풀린 망아지 같으니라고...


그리고 주후조는 '여덟 호랑이'라고 정덕제에게 특별히 총애와 신임을 받은 여덟 사람이 있는데 그들은 바로 유근, 곡대용, 장영이였다. 이 들은 하잘 것 없는데 어찌나 우쭐대며 거드름을 피우는지 그 누구도 그들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다고 한다..... 아... 그래서 여덟 호랑이라고 불렀나 보다...


그런데 주후조에게는 재미있는 사실 몇가지가 있다. 바로 궁안에서 장사도 벌었는데 궁중에 움막을 짓고 점방이며 술집이며 기생집 같은 것을 꾸며놓았다.... 미친놈아 그만해... 그리고 궁밖에 모습을 그대로 따라해 난전을 벌여 장사를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주후조는 여기서 만족스럽지 못했는지 대대적으로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이때 태소전, 천아방, 선두 등이 지어졌다.


또, 전쟁을 나가기 위해 대장군에 임명을 했다고 하는데 바로 주후조 스스로 자신에게 대장군이라는 직위를 내려 전쟁에 나갔다고 한다. 그런데 말이다. 전쟁은 잘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 끝은 아니다. 갑자기 정덕 14년 (1519)에 갑자기 칙령을 내리더니 자신이 대장군으로 임명한 직위 진국공, 위무대장군으로 이렇게 말하였다.

"총독, 군무, 위무대장군, 총병관, 태자 진국공 주수에게 명령하여 남북직예 산동 태안주 등지에 ㄴ려가 공사를 보도록 하라."

주수가 누군가 하면은 바로 주후조라는 말이다..... 아... 코스프레 하니?


그리고 주후조는 벼슬이름도 바꾸었는데 자신의 천자라는 명칭이 마음에 안들어 스스로 이름을 고치고 숱한 벼슬이름을 붙였다.


이 일로 인하여 대신들이 천자에게 상주문을 올려 그러지 말라 권유를 하였다만 주후조는 이에 노발대발하여 107명이나 되는 대신들을 감옥에 집어 넣으라고 명령하였다. 다 죽이기에는 어려웠는지 오문 밖에 끌어다 닷개 동안 꿇어 앉는 형벌을 내렸다고 한다. 


이렇게 정신 이상 환자, 미친 놈, 또라이 같은 짓을 하다가 주후조 역시도 사람이다 보니 나중에는 죽었는데... 죽었을때도 무언가 특별하게 죽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래와 같은 전설이 비슷하게 남아 있다.


첫번째는 물에 빠졌다는 설과, 두번째는 남쪽 교외에 가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다가 피를 토하고 쓰러졌는데 궁정에 돌아와 얼마 안되 숨지고 말았다는 설이 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첫번째 설이 더 믿음직 스럽지만 사람마다 각자가 생각하는 것이 다르니 확신을 서지 않는다.


주후조는 자신에게는 아들 하나밖에 남기지 못했는데... (음? 결혼은 했슈?) 그 이후 아우 주후총이 황제의 보좌를 이어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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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마루밑다락방님의 댓글의 댓글

얍삽하게도 생겼지만, 나 또라이 기질이 있어요 라고 얼굴에 적혀있지 않나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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