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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끄직여보는 소련시기 역사학계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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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11월 러시아혁명 후에 일어난 일련의 사태들을 겪은 뒤에 설립된 국가가 소비에트 연방(소련)이다. 소련 초기(1919-1929)에는 사회주의 혁명의 분위기가 지배했던 사회라 모든 학문에서도 이러한 분위기들이 반영되었고 특히 역사학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혁명 초기 소련 역사학계에서 사회주의 이념에 따라 역사를 재해석하는 데에 주력했으며 정부의 통제와 감시에서 어느정도의 자유를 보장받았다. 이당시 소련 역사학계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여 자연스레 소련의 역사교과서에서는 과거 제정러시아 시기의 역사교과서에 나타난 '애국/민족주의'를 배격하였으며, 러시아의 근대화를 이끈 표트르 1세나 러시아인들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알렉산드로 네프스키 등을 봉건/제국주의자라는 이유로 부정시했다.

 그러나 이러한 소련 초기 역사학계의 분위기는 1929년 스탈린이 집권하면서 바뀌기 시작하였다. 스탈린은 집권 후에 혁명 초기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던 역사학계를 비판하기 시작하였고, 정부의 공격을 받기 시작한 역사학계는 향후 닥쳐올 대숙청을 피할수 없었다. 1930년 대숙청 기간동안 소련 초기의 저명한 역사학과 교수들은 숙청당했으며, 소련 역사학계는 1930년대를 기점으로 정부의 통제를 받기 시작하였다. 정부 통제 하에서 역사학계는 예전 제정러시아의 역사관을 대부분 수용, 변형하여 '민족 볼셰비즘'의 형태로 나타났다. 전쟁의 기운이 감돌던 1930년대의 위기상황에 역사학계는 정부의 입김으로 인해 소련 내에 자리잡은 각 민족은 슬라브족 중심으로 단결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하였다. 이 시기 이후에 간행된 소련의 역사 교과서는 혁명 초기에 간행됬던 역사교과서와 다르게, 러시아사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표트르나 네프스키는 러시아인들의 영웅으로 다시 부활하였다. 이처럼 혁명 초기에 '순수했던' 소련의 역사학계는 정부의 입김으로 점점 변질되어갔다. 이러한 소련 역사학계의 상황은 스탈린 사후에 찾아온 해빙기(1950년대 중후반)를 제외하고 소련 해체 이전까지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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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북아역사재단 총서- 러시아의 민족정책과 역사학

*그저 끄직여본 글이기에 많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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