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쉽게 씌여진 시 : 윤동주

2014-07-22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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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 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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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4
마루밑다락방님의 댓글
이런 공간에서 속살거리는 밤비를 보고 있으니
육첩방은 암담하고 우울한 내면을 드러내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죠.
= 출처 : 지식IN
마루밑다락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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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밑다락방님의 댓글
고향을 떠나
타지의 하숙방에서
한 청년이
비오는 날
방 구석 한 자리에 앉아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몇 줄 안되는 시를 쓰며
내 동무들
하나... 둘... 셋... 넷...
한 명 씩 떠올려
그들과 함께한 추억을 회상해 보네
나는
그들을
버리고 잊고 잊었네
잊은것도 모자라
그들에게 못할짓 많이 했네
그런 내가
무얼 바래서
끄적거리고 있는가?
낡은 지식이나 배우는 나
참 하찮고 볼품 없다
내 인생, 한번뿐인 인생
이렇게 허비 하는 모습
그런 모습에 반성하며
내 작은 손을 내밀어
나와 화해를 해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