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慶尙道) 유생 이만손(李晩孫) 등 만 명이 올린 연명 상소의 대략에,“방금 수신사(修信使) 김홍집(金弘集)이 가지고 온 황준헌(黃遵憲)의 《사의조선책략(私擬朝鮮策略)》이라는 1권의 책이 유포된 것을 보니, 저도 모르게 머리털이 곤두서고 가슴이 떨렸으며 이어서 통곡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단(異端)으로 사람들을 미혹시킨 자에 대한 처벌은 왕법(王法)에 나타나 있고 그 무리에 가담한 자를 먼저 다스려야 한다는 가르침은 《춘추(春秋)》에 실려 있으니, 이것을 따르면 다스려지고 이와 반대로 하면 혼란해진다는 사실은 영원히 어길 …
1380년은 우왕이 17살 나던 해이다. 이인임의 비호로 10살의 어린 나이에 왕좌라는바늘 방석에 앉아 바들바들 떨기만 하던 우왕이 질풍노도의 시기를 맞이했는데... 불쌍한 어린아이를 끊임없이 괴롭히던 왜구들은 우왕이 사춘기라고 봐주지 않았다. 1월에는 잠잠했던 왜구들이 2월에는 경남 영선현, 전라도 보성과 순천을 공격했고 3월에는 순천의 사찰 송광사, 광주와 화순 등을 공격했는데 정지, 이원계, 오언 등이 막았다. 5월에는 왜구의 전함 백여척이 결성과 홍주로 쳐들어왔다 6월 7월에는 각각 정읍현 명량향등으로 쳐들어왔…
1257년 최항이 죽고 최의가 집권하였다... 최의도 지 애비처럼 어머니가 천출이었다. 에미 닮아 잘 생겼던 모양이나 하는 짓은 지 애비만도 못했다. 초기에 잠깐 선정을 베풀었으나 이후 약한 권력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발버둥치다 여러 실정을 범하였고 이후 무신세력의 내분으로 김준이에게 척살되었다. 뚱뚱해서 도망을 못갔다고 하는데 가지가지 하는 놈이었다. 이놈이 죽고 최우, 최항까지 부관참시되어 최가는 완전히 끝났다. 이 자가 한 멍청한 짓중의 하나가 집권초기몽골로 보내는 세폐를 중단한 것이었다. 그래서 자랄타이인지 지랄타이인지가 또…
*최 의 최 항도 지 애비를 닮아 본처에게서는 아들을 보지 못했고, 중질할 때 남의집 여종과 사통하여 아들을 보았다.얘가 최 의인데, 사내자식이 이쁘고 부끄러움이 많았다고 한다.최 항은 지가 천출이라서 그랬는지, 최 의를 일찌감치 아들로 인정하고 글도 가르치고 예도 가르쳤다고 한다.최 의는 김 준, 최양백 등의 지지로 대권을 승계하였는데, 지 애비가 죽던 날, 버림 받았던 애비의 첩과 간통하는 패륜을 저질렀다. 그 애비에 그 아들이었다. 1255년 교정별감이 된 최 의는 자신을 험담하는 자들을 모조리 죽여 일단 신변의 안전을 …
1170년 가을, 악동들을 데리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놀다가 마지막 놀이터를 보현원으로 잡은 의종은 그동안 시짓기 놀이에서 소외되어 먹지도 쉬지도 못하고 끌려만 다니느라 열을 잔뜩 받은 무신들이 신경쓰였는지, 출발하기 직전 갑자기 일종의 무술 경연 대회인 수박희를 열어 무인들을 위로하고 새로운 인재도 발굴하고자 하였다. 일종의 보상이었으므로 모두가 즐거워 했...는지는 알 수없으나, 오랜만의 무신들만을 위한 잔치라 계급장 떼고 모두 참가하였는지, 대장군 이 소응도 출전하였는데, 이 반백이 넘은 장군 각하는 마음만 청춘이고 몸…
왕 현 어려서부터 놀기를 좋아하여 부모에게 걱정을 많이 끼치는 자식이었다 한다. 아들이 하나라면 모를까 다섯이나 되었으므로 엄마는 반항기 많은 맏아들 보다는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는 둘째에게 마음이 더 갔던 모양이나, 정정불안이라면 신물 나게 겪었던 아빠와 유교적 명분론을 강력히 주장하는 스승의 지원에 힘입어 , 1146년 왕 되기 딱 좋은 나이인 20세에 왕위에 오를 수 있었고,평생 무력감에 치를 떨었던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했...는 지는 알 수 없으나, 역대 고려왕의 화두이기도 한 왕실의 권위 확립과 왕권…
귀주대첩 이후 동북아에는 오랜만의 평화가 찾아왔다.고려에게 혼쭐이 난 거란은 송을 침략할 여력을 잃었고, 거란 공포증이 있는 송은 현실 안주를 택하였으므로, 고려, 거란, 송의 삼국정립 시대가 시작 된 셈이었는데,이러한 우리 민족 주도의 국제 정세 및 평화는 고구려 장수왕기 이후 실로 오랜만에 출현한 것으로서,결과적으로 고려뿐만 아니라 대륙,만주를 모두 아우르는 전쟁없는시대를열었다.이로써 천하의 모든 생령들은 제명을 누리며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게 되었고, 고려는 전성기로 들어가는 문을활짝 열어 젖히게 되었다.이러한 위대한 업적 …
우리나라 왕들의 등극 호발 연령인 방년 18세에 왕위에 오른 현종은 처음에는 당연히 허수아비였는데,허수아비건 뭐건 이모의 마수에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을 것이나,그 기간은 아쉽게도 짧았다.즉위 이듬해에 거란이 강조의 정변을 구실로 침입해온 것이다.30만의 대병을 긁어모아 기세등등하게 출병했던 독재자 강조는 어쭙잖은 제갈공명 흉내를 내다가 대패하였고, 개경은 속절없이 무너졌다.현종은 별수 없이 몽진 길에 올랐고,각지의 호족들에게 온갖 괄시와 천대를 받으며 나주까지 도망을 하였는데,시련이라면 이골이 난 그도 이가 갈렸을 …
대량원군 왕순그의어머니 헌정왕후는불행한사랑을한여인이었다.남편경종이사망한후 돌 볼 자식도 없이 궐을 나가 살던 젊은 그녀는 외로웠는지 아니면 심심했는지그만이웃에살던유부남인 숙부와사랑에 빠지고 말았는데,현대적 관점이라면 유부남이 아닌 숙부와의 사랑만으로도 갈데 없는 패륜이지만,당시의 관습으로는, 자랑스러울것까지는없겠지만,그다지큰 흉이되지도않는일이었으므로,여염이라면그냥저냥만나서살다가사실혼관계를인정받으면그만이었을 것이다.그러나 태후이자, 유교적국가질서확립을국정철학으로삼았던 현왕의여동생이라는그녀의 신분이발목을 잡았다.그놈의사랑이라는게도대체…
김 응렴 아버지 김 계명은 자살한 희강왕의 손자로서, 문성왕기의 실세였다.그는 문성왕을 협박하여 아들도 없는 다 늙은 헌안왕에게 왕위를 넘기도록 했다는 의심을 받기도 하는데... 아들을 왕위에 올리기 위한 사전 공작이었다는 의심이 강하게 들지만, 뭐가 되었든... 경문왕은 861년 15세 ( 또는 19세 )에 즉위하였고 상대등 김 안이 섭정하였다. 김 안... 김 안은 문성왕의 아들이었다. 4년 전에는 어리다 하여 왕위도 물려받지 못했는데 그 새 성장하여 상대등이 되었고 섭정을 했다는 이야기이다....음... 이해하기 어려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