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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소호이스타 전투(სოხოისტის ბრძოლ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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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략

 소호이스타 전투(사카르트벨로어:სოხოისტის ბრძოლა, 튀르키예어:Sohoista sava?ı)는 1545년 북동부 터키에 위치한 소호이스타 들판에서 오스만제국과 사카르트벨로 간에 일어난 전투이다. 사카르트벨로 제국(諸國)이 오스만제국에 대항한 전투였지만 여러 요인들로 인해 오스만제국의 승리로 종결되었다. 전투는 오스만제국의 재상, 뤼스템 파샤에 의해 언급된 지빈의 교전과 같은 전투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배경

전투가 일어나기에 앞서서, 1543년 에르주름의 베일러베이, 무사 파샤musa Paşa에 의해 사카르트벨로 수비병이 주둔한 올티시 요새에 대한 포위공격이 일었지만 성공하지 못했으며, 이후 발발한 카라가크의 교전에서 패배하였다. 이에 대해 복수라도 하는 듯, 오스만제국은 2년 뒤 사카르트벨로를 침공해 삼츠헤 공국 영내로 진입하였다. 그 당시 삼츠헤의 지배자는 서(西)사카르트벨로에 위치한 이메레티 왕국의 왕, 바그라트 3세였는데, 오스만제국이 재차 침공해오자 그는 주변국들에 파병지원요청을 했지만 이에 응한 나라는 루사라브 1세의 카르틀리 왕국과 구리엘리가(家)의 구리아 공국 뿐이었다.¹ 이메레티의 속국인 밍그렐리아의 레반 1세 다디아니는 자신과 동맹관계인 바그라트의 요청을 거절했다. 패배의 조짐이다.....

 

전투

사카르트벨로와 오스만제국의 양 군대는 현 터키의 바시안 군(Pasinler 군)의 동쪽 경계에 위치한 소호이스타라는 곳에서 조우했다. 바후슈티 왕자의 연대기에는 이 전투에 대한 몇몇 이야기들이 있다. 바후슈티 왕자의 연대기에서 '삼츠헤의 귀족들은 봉신으로써 지니는 군사적 봉사를 거부하고 이를 불쾌히 여겼으며, 전투에 참전하지 않고 관망하였다' 라 기록했다. 확실히 삼츠헤 지역은 오스만제국과 가까이 위치했으니 지역 유력자인 귀족들이 봉건제의 특성상 국왕에게 물자조달 등의 협조를 해야 되었는데, 이를 거부했고 패배를 견인했다는 점에서 신뢰가 간다. 대부분 사카르트벨로 공후국들과 삼츠헤 지역 귀족들의 비협조로 인해 전투에서 오스만제국이 승리하는 결과를 낳았고, 패배한 구리아,카르틀리,이메레티 연합군은 큰 피해를 입고 패주하였다.

 

 소호이스타 전투에서 승리한 오스만제국은 삼츠헤 공국을 침략하여 케이호소로 2세를 아타베크(영주)로 임명했으며,² 나아가 남서부 카프카스를 침략하였다. 그리고 제국은 삼츠헤 공국에게서 토르툼, 바시안, 이스피르 지역을 합병하는 소기의 득을 보았으며 오스만-사파비조의 아마샤 평화조약(1555.5)에 일정한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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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무래도 사카르트벨로 제국이 이메레티의 바그라트 3세의 파병요청을 무시한 것에는 이들 간의 정치적 이유가 있었을 듯 싶다.

2. '아타베크(atabek)'라는 호칭은 중동권에서 주로 쓰이는 호칭인데, 삼츠헤 공국에서 므타바리(公)과 더불어 사용되었던 듯 하다. 참고로, 삼츠헤 공위를 맡았던 가문은 자켈리가(家)였다.

p.s) 생각해보니까 전투 관련해서는 간단히 기록했고 그 당시의 상황을 적었네요. 자료의 부족으로 그러하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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