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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레이의 난(1702~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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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레이의 난(우크라이나어:Повстання Пал?я)은 코사크인들의 반란으로, 코사크군 연대장인 펠레이의 주도 하에 폴스카-리에투바 연방에 대항하여 1702년~1704년까지 일어났던 반란이다.

 

펠레이의 난(1702~1704) 기간동안 코사크인들은 드네프르 강과 드네스트르 강 사이를 수중에 넣었다. 빗금이 쳐져있는 데는 당시 이들이 차지한 영역임을 나타낸다.

 

 1699년 폴스카의 새로운 국왕으로 등극한 아우구스트 2세는 자국 내의 코사크군을 해체하고 오스만제국과의 평화조약에 서명했다. 이는 코사크인들의 반발을 샀으며 1702년 폴코브니크(полковник, 연대장) 펠레이가 국왕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고, 이는 폴스카-리에투바 연방에 반기를 든 큰 규모의 마지막 코사크인들의 반란이 되었다. 다른 코사크 연대장들도 반란에 동참하였으며, 펠레이와 그를 따르는 반도들은 빌라 체르크바(Бiла Церква), 파스티우(Фа?ст?в), 네미리우(Немир?в)와 다른 마을들을 수중에 넣었다. 펠레이와 그를 따르는 반도들은 이전부터 적대했던 - 폴스카 귀족, 가톨릭교 성직자와 유대인들을 - 그들의 영향력이 미치는 지역에서 학살했다. 1702년 10월 17일, 펠레이의 코사크군은 베르디치우(Бердич?в) 근교에서 아담 미코와이 시에니아브스키의 폴란드-리에투바 군대와 전투와 1703년 2월에 벌어진 잇다른 전투에서 패배했다. 상황이 그렇게 전개되자 펠레이의 반란군은 빌라 체르크바를 최후의 보루로 삼았다.


 로씨야의 차르 표트르 1세와 좌안 우크라이나의 아타만(=헤트만)인 이반 마제파가 폴란드에 대항하여 스베리예와 동맹을 맺었을 시점에¹ 빌라 체르크바의 펠레이는 그를 따르는 코사크들과 함께 투항하였고 반란은 종결되었다. 펠레이의 난의 종결은 당시 대북방전쟁에서 스베리예를 상대로 한 폴스카의 잇다른 패전이 큰 역할을 한 것이었다. 이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에 대항하여 반란을 주도했던 펠레이는 1705년 표트르 1세에 의해 마제파와 함께 시베리아로 추방되었고, 1709년 마제파와 함께 폴타바 전투에서 싸우던 중에 배신하여 러시아에게 투항하였으며, 그로부터 1년 뒤에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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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704~05년 즈음에 표트르 1세와 코사크 아타만 이반 마체파의 추구하는 바가 달랐다. 표트르 1세는 스베리예와의 잠정적 동맹을 통해 칼을 갈고 있었으며, 이반 마체파는 스베리예를 이용해 코사크 헤트만국에 대한 로시야의 영향력을 축소하려 했다.

p.s) 스베리예=스웨덴, 폴스카=폴란드, 로씨야=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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