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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아이다호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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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다호는 미국의 50개주 중 하나이다. 주도는 보이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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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아이다호는 시굴자 E. D. 피어스라는 사람이 오로피노 크리크에서 금을 찾았고, 1862년 조지 그라임스는 보이시 분지에서 금을 발견하였다. 아이다호 여기저기에서 금이 발견되었다는 소문이 급속도로 퍼지자, 금을 찾고자 사람들이 아이다호로 몰려 들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몰려와 아이다호에서 금이 발견된 근처는 타운이 생겨날 정도였다.

 

1963년 일전에는 오리건주와 워싱준주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1863년 3월 4일 루이스턴이 수도로 정해지면서 정식으로 주로 설립되었다. 영토의 경우는 오늘날 아이다호와 몬태나, 와이오밍 등 오늘날 영토의 거의 포함되었다.  

아이다호에서 철도들의 개발은 영토에 정착자들의 물결을 가져왔다. 몰몬교도들은 1874년 프랭클린에서 아이다호로 들어오는 유타 노던 철도를 가져왔다. 아이다호 북부에 있는 은, 납 광산들은 그 지방에 철도 건설을 활기띄게 하였다. 

1884년으로 봐서 오리건 쇼트라인 철도는 헤일리에서 광산들과 오리건과 함께 빅우드 강을 이었다.

 

또한 아이다호는 과거 미합중국에서 오래전 부터 살고 있었던 인디언들이 끝까지 저항하던 지역으로 유명하다. 미국 육군은 네즈퍼스 인디언들을 오리건으로 강제 이주하려 하였으나 인디언들은 끝까지 저항하였고 1877년 6월 17일 그들은 아이다호 북중부에 있는 화이트 버드 캐니언의 전투에서 군인들을 궤멸시켰다. 하지만 네즈퍼스 인디언들은 곧 군대의 큰 수 보다 전에 후퇴하는 데 강요되었다. 

10월에 캐나다 국경 근처에서 그들은 항복하였다.

 

주로서 수도가 정해지고 설립은 1863년이라면 정식으로 아이다호의 영토가 헌법으로 채택되었을 시기는 1899년이다. 그리고 미합중국의 43번째 주로서 가입했을 시기는 1890년 7월 3일의 일이였다. 이때 공화당 소속의 조지 L. 샤우프가 아이다호주의 초대 주지사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시기에 미국이 참전했을 당시는 아이다호 주는 농업 경제에 붐을 가져왔고 전시 시량 부족이 농장의 번영을 창조하였다. 전시 인플레이션도 또한 대지의 가격과 운영비들을 인상하였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자 아이다호 주의 번영이 폭락하였다.

그리고 현대식의 고속도로가 아이다호에 1930년대에 향상되었다. 1938년으로 봐서 포장된 고속도로가 결국 주의 북부와 남부의 부분을 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동안에 많은 아이다호 주민들은 항공기, 무기와 다른 군사적 공급품들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였다.  아이다호 주는 군사 업무들에 가장 큰 양의 식량을 공급하였다. 사실 아이다호에는 감자, 사탕무 등의 식량 등을 대량 생산하는 지역으로 유명하다.


오늘날에는 아이다호는 농업 경제가 중대하게 극히 남아 있으나 다른 경제적 활동, 관광, 건설업, 식품 가공업 등의 회사들이 많이 들어섰고 특히 새로운 휴양지들이 가장 빠른 번창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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