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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마루 밑 다락방 &amp;gt; 인문학 &amp;gt; 인문학</title>
<link>https://www.maru.or.kr/humanities</link>
<language>ko</language>
<description>인문학 (2026-09-17 00:49:32)</description>

<item>
<title>AI 사용에 대한 인식 차이: 기술 관점이 아닌 자아의 문제?</title>
<link>https://www.maru.or.kr/humanities/597</link>
<description><![CDATA[<h3 class="wp-block-heading">     <span style="font-size:12pt;">- 문화심리학이 보여 주는 '자아의 경계'와 AI 시대의 인간 이해</span></h3>



<p><br /></p><p>요즘은 좋은 쪽으로건 나쁜 쪽으로건 'AI'가 꽤 논란거리입니다.<br />특히 국제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다 보면 AI에 대해 꽤 부정적이거나 배타적인 반응을 보이는 분이 많고 때로는 그런 분들이 주도권을 쥐고 여론을 형성하기도 합니다.<br />물론 사람마다도 다 의견이 다릅니다만, 그 속에서 약간의 경향성이 보이기도 합니다.<br />예를 들어서 유럽 주류국가들에서 AI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조금 더 짙은 것 같습니다. 반면 유럽 안에서도 비주류 국가와 유럽 주류국가와 비슷한 정서를 가질 것 같은 미국에서는 부정적인 인식이 조금 옅고 오히려 실용적인 시각이 조금 더 높다는 연구들이 많습니다.<br />미국 역시 독립적 자아관의 뿌리를 갖고 있지만, 개척자 정신·자본주의적 실용주의·엔지니어링 문화가 침해에 대한 경계심보다 효율성과 유용성을 앞서게 만든 반면, 유럽 주류 국가들은 인간 중심주의(Humanism) 역사와 주체성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철학적 전통이 더 강하게 작용했을 수 있다고도 봅니다.(물론 유럽이 그렇듯 미국도 넓다 보니 지역에 따라 편차가 꽤 있다고는 합니다만,···)<br />반면 아시아 국가들에서는 비교적 실용적 인식이 높은 편이라고 합니다.<br />특히 유럽 주요 국가의 경우에는 일찌기 기술 혁명의 혜택을 많이 본 나라 임에도 AI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 또한 깊다는 것도 조금 아이러니 하기는 합니다.(물론 그렇게 보자면, 산업혁명 뒤 기계파괴운동이 가장 격렬했던 곳도 산업혁명이 가장 먼저 일어나고 영향을 받던 영국이었다는 것도 아이러니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만,··· ^^;)<br /> </p><p class="wp-block-paragraph">이렇게 가장 먼저 기술혁명을 경험했고 혜택을 봤던 사회에서 왜 AI에 대한 거부감이 더 강하게 나타나는가 하는 역설이 저에게는 흥미로운 질문이었습니다.<br />과연 그 이유가 뭘까요?<br />스스로는 사람을 대체한다거나 일자리를 뺏는다거나 인간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등의 이유를 대지만 그러한 불안은 다른 유럽 나라들과 미국이나 심지어 아시아 국가들도 걱정하고 있는 바이고 영향을 받는다면 그 양상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br />그렇다면 결국은 ‘기술’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br />그 중에서도 특히 AI를 이용한 결과물에 대해 유럽 주요국가 구성원들이 주류인 기술 기반 커뮤니티에서 특히 이런 관점이 널리 퍼져 있는 것 같습니다.<br />제가 활동하는 덜 알려진 기술 기반 커뮤니티는 물론이고 심지어 레딧 등에서는 이런 경향이 꽤 강해서 번역조차도 LLM을 쓰지 말고 일반 번역도구를 쓰라고 요구할 정도입니다.(그런데, 세상에는 인도유럽어족과 비슷한 언어만 있는 것이 아니며, 어떤 언어는 표현 방식이나 정서가 사뭇 달라서 맥락이나 배경 설명없이 번역을 하면 뜻이 온전히 전달이 안 되는 걸 어쩝니까!)<br />그런 점에서 자기 중심적 자아 테두리 밖의 다른 가능성을 전혀 인정하지 못했던 과거의 사고방식과 닮아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p><p class="wp-block-paragraph"><br /></p>



<p class="wp-block-paragraph">심지어 그 중에는 일부라도 AI의 도움을 받아 글을 쓰는 사람에 대해 “스스로 생각을 못하나”라거나 인간성 혹은 인간의 창의성을 모독한 것처럼 여기거나 AI를 (일부라도)이용한 결과물은 그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태도 같은 것도 보입니다.(물론 좀 극단적인 경우로 이것 자체를 사회적인 인식으로 볼지 개인의 성향 차이로 봐야 할지는 말하기 어렵습니다.)<br />이 문제를 두고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보다 보니, 어쩌면 이것이 단지 ‘AI’나 ‘기술’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br />예를 들어 한국인이나 동아시아인-제가 확신할 수 없어서 거론하지 않는 것이지만 어쩌면 동남·남아시아인이나 그 밖의 문화권에서도 그런 곳이 더 있을 것 같습니다.-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나라는 것’을 구성하는 요소를 꽤 폭넓게 보는 편입니다.<br />‘나라는 것’은, 자라오면서 어버이[부모님]로부터, 스승으로부터, 벗으로부터 그리고 수많은 존재로 부터 영향을 받고 배우며 형성되어 온다고 여깁니다.<br />그것이 비단 물리적인 ‘누구’ 뿐만 아니라 책 한 권 혹은 문장 한 줄에, 음악 한 곡에, 시 한 편에서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br />나와 직접 관계가 없더라도 어떤 사람에게 감화를 받고 그 사람의 의식을 받아들였다면 나 역시 그 사람의 체계의 일부라고 느낍니다. 내가 그 사람의 의식 세계에 편입이 되거나 혹은 내 속에 그 사람의 의식 일부가 들어온 것이 아니라 그냥 서로 보이지 않지만 끈끈한 연결관계로 엮여 있다고 느낍니다.<br />또는 다르게 표현하면, ‘나라는 것’과 ‘나 아닌 것’ 사이에서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br />어차피 애초부터 ‘나라는 것’이 따로 있지 않았고 그것이 형성되어 온 과정은 수많은 영향 속에서 ‘나라는 것’이 형성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br />그래서 우리는 ‘나’를 설명할 때 거의 항상 ‘관계’를 설명합니다.<br /> </p>



<p class="wp-block-paragraph">반면 어떤 문화권에서는 ‘나’를 직접적으로 내세우지 않는-? 못하는?- 것을 주체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여기기도 합니다.<br />혹은 ‘내’가 ‘나 아닌 것’에 영향을 받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거나, 부정적으로 까지 보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아무리 영향을 받아도 본연의 ‘나’는 여전히 유지된다고 믿습니다.<br />그래서 종종 동아시아의 완곡화법을 신념이 약하거나 주체성이 모자라는 것으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p>



<img src="https://static01.nyt.com/images/2008/03/18/science/18face.xlarge1.jpg" alt="인식권역에 따라 다른 인식 차이" />인식권역에 따라 다른 인식 차이를 보여주는 실험 : 가운데 사람은 행복한가 하는 인식 차이



<p class="wp-block-paragraph">이러한 차이는 여러 문화심리학 연구에서도 반복해서 확인되었습니다.<br />사람의 표정을 읽을 때 주변 맥락을 얼마나 함께 고려하는지 비교한 마스다 다카히코 교수의 연구, 어항 속 물고기를 관찰하며 중심 대상과 배경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살펴본 리처드 니스벳과의 공동 연구, ‘나는 누구인가’를 기술하게 했을 때 관계 중심으로 설명하는 문화와 개인 특성 중심으로 설명하는 문화의 차이를 밝힌 Markus &amp; Kitayama, Cousins 등의 연구, 그리고 심지어 fMRI를 이용해 ‘나’와 ‘어머니’를 처리하는 뇌 활동까지 비교한 Zhu 등의 연구는 모두 문화에 따라 자아와 관계를 인식하는 방식이 상당히 다를 수 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br /> </p>



<p class="wp-block-paragraph">물론 이것만으로 문화권마다 AI에 대한 태도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br />경제적 이해관계, 제도, 산업 구조 등 다양한 요인이 함께 작용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br />다만 문화심리학이 보여준 ‘자아의 경계’와 ‘관계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왜 같은 기술을 두고도 어떤 사람은 인간성에 대한 침해로, 또 어떤 사람은 자연스러운 사고의 확장으로 받아들이는지를 이해하는 중요한 틀이 되어 줍니다.<br />어쩌면 지리적·국가적 경계로서의 문화권보다, 자아와 환경을 바라보는 인지적 패러다임으로서의 ‘인식권역’이라는 틀로 바라볼 때 이 현상이 더 명확해지지 않나 싶습니다.<br />즉, 어떤 인식권역에서는 ‘나 아닌 것’의 영향을 자아에 대한 침해로 보지만, 다른 인식권역에서는 이를 자연스러운 관계의 연장선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br /> </p>



<p class="wp-block-paragraph">물론 ‘AI’라는 것이 기존의 어떤 연장보다도 독특하고 독보적이며 강력하다는 점에서 AI에 대한 우려나 부정적 시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br />이러한 고찰을 통해 어느 한쪽의 시각을 고치려는 것도 아닙니다.<br />다만, ‘AI’라는 거대한 ‘현상’을 통해서 우리 세상을 돌아보고,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되짚고 나아가 우리의 기존 철학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고, 그럴 수만 있다면 ‘AI’가 단지 기술혁명이 아니라 우리 삶, 철학, 의식 전반의 혁명으로도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br />아울러 이런 성찰을 통해 ‘AI’를 타자적인 존재로서, 위협적인 존재로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서로 공존할 수 있는지를 살피고, 이런 공존이 결국에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는 방향이 되도록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p><p class="wp-block-paragraph"><br /></p>



<p class="wp-block-paragraph">부디 인간이 겸허함과 포용 정신 그리고 인간 만의 지혜를 발휘해 주기를··· ^^</p>


<hr class="wp-block-separator has-alpha-channel-opacity" />


<p class="wp-block-paragraph">   ---         ---         ---</p><p class="wp-block-paragraph"><a href="https://2dreamy.wordpress.com/2026/07/31/ai-%EC%82%AC%EC%9A%A9%EC%97%90-%EB%8C%80%ED%95%9C-%EC%9D%B8%EC%8B%9D-%EC%B0%A8%EC%9D%B4-%EA%B8%B0%EC%88%A0%EC%9D%98-%EB%AC%B8%EC%A0%9C%EA%B0%80-%EC%95%84%EB%8B%88%EB%9D%BC-%EC%9E%90%EC%95%84%EC%9D%98/" rel="nofollow">이 글</a>의 권리는 <a href="https://2dreamy.wordpress.com/" rel="nofollow">깨몽(adreamy)</a>에게 있으며, <a href="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4.0/" rel="nofollow">CC BY 4.0</a> <img width="12" src="https://mirrors.creativecommons.org/presskit/icons/cc.svg" alt="" /><img src="https://mirrors.creativecommons.org/presskit/icons/by.svg" alt="" width="12" />을 지키시면 자유로이 쓰실 수 있습니다.</p><p><br /></p>]]></description>
<dc:creator>깨몽</dc:creator>
<dc:date>2026-09-17T00:49:32+09:00</dc:date>
</item>


<item>
<title>AI와 의식 2부. AI 이후의 존재론</title>
<link>https://www.maru.or.kr/humanities/596</link>
<description><![CDATA[<h2 class="wp-block-heading"><span style="font-size:14pt;">– 인간이 믿어 온 세계는 어떻게 흔들리는가</span></h2>



<p class="wp-block-paragraph"><br /></p><p class="wp-block-paragraph">잠들거나 기절했을 때, 그 안에서 겪는 세상은 오로지 그것만이 실재였습니다.<br />깨어난 뒤에야 우리는 그것을 “꿈이었다”, “헛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br />하지만 그 판정은 언제나 사후적입니다. 그 순간 안에서는, 몸이라는 것이 저편에 따로 누워 있다는 증거도 의식도 없습니다.</p><p class="wp-block-paragraph"><br /></p>



<h3 class="wp-block-heading"><span style="font-size:12pt;">1. 증명된 적 없는 것을 당연하다고 믿어왔다</span></h3>



<p class="wp-block-paragraph"><br /></p><p class="wp-block-paragraph">우리는 ‘의식’이 존재한다고 믿습니다.<br />그런데 그 믿음의 근거를 따져보면, 결국 “경험이 증명한다”는 것 말고는 없습니다.<br />그것이 실재인지, 아니면 정교한 착각인지를 가를 방법을 우리는 갖고 있지 않습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br />의식이 실재로 존재하는지를 밝히려는 연구와 논증조차, 결국 인간의 의식 위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br />“이러저러한 근거로 의식이 객관적으로 증명되었다”고 말하는 그 순간에도, 그 증명을 관찰하고 판단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다시 의식입니다.<br />눈이 거울 없이 자기 눈 자체를 볼 수 없는 것처럼, 의식은 자기 자신을 발판 삼아서만 자신을 검증할 수 있습니다.<br />이건 궤변이 아니라 정직한 고백에 가깝습니다 — 철학은 수백 년째 이 질문 앞에서 결론을 내리지 못했고, 신경과학은 의식이 ‘어디서’ 만들어지는지조차 확정하지 못했습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그런데 우리는 여기에 슬쩍 조건 하나를 더 붙여왔습니다. — “의식은 생체의 몸이 있어야 한다”는 것.<br />이것도 완전히 객관적으로 증명된 적은 없습니다.<br />그저 지금까지 우리가 관찰한 사례가 몸을 가진 존재뿐이었다는 것에서 나온 경험적 믿음일 뿐입니다.<br />표본이 하나뿐이라고 해서, 그것이 유일하게 가능한 형태라는 뜻은 아닙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그리고 이 믿음에는 또 하나의 뒤틀림이 있습니다.<br />인간은 스스로가 특별하다는 착각 때문에, 동물이나 다른 생명체도 나름의 의식을 가졌을 수 있다는 가능성조차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br />오히려 그런 완강한 거부야말로, 우리가 ‘의식’을 객관적인 기준이 아니라 인간 중심의 특권으로 다뤄왔다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p><p class="wp-block-paragraph"><br /></p>



<h3 class="wp-block-heading"><span style="font-size:12pt;">2. 골대는 계속 옮겨졌다</span></h3>



<p class="wp-block-paragraph"><br /></p><p class="wp-block-paragraph">이 믿음이 얼마나 잠정적인지는 AI를 보면 더 분명해집니다.<br />AI가 체스에서 인간을 넘어섰을 때에도, 바둑에서 넘어섰을 때에도, 그림과 글과 노래에서마저 사람을 넘어섰을 때에도···. 그때마다 사람들은 조용히 기준을 바꿔왔습니다.<br />그건 이해가 아니라 계산이고, 창조가 아니라 모사이며, 결국은 확률과 패턴일 뿐이라고···.<br />밀려날 때마다 골대를 옮기는 것, 그것이 사람이 AI로부터 ‘의식’을 인간의 고유성으로서 지켜온 방식이었습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이건 사실 AI가 처음 만든 풍경이 아닙니다.<br />한때는 도구를 쓰는 것이 인간만의 능력이라 믿었지만, 까마귀와 침팬지도 도구를 씁니다.  심지어 최근의 연구에서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고 응용한다는 것도 밝혀 졌습니다.<br />한때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알아보는 것이 인간만의 자의식이라 믿었지만, 코끼리와 까치도 그 시험을 통과합니다.<br />언어도, 사회도, 놀이도 한때는 인간만의 전유물이라 여겨졌다가 하나씩 그 경계를 내주었습니다.<br />‘의식’은 지금 그 목록의 가장 마지막, 가장 완강하게 지켜지고 있는 항목일 뿐입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철학에도 이미 비슷한 논쟁의 원형이 있습니다.<br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A4%91%EA%B5%AD%EC%96%B4_%EB%B0%A9" rel="nofollow">중국어 방</a>” 논증은, 규칙표를 따라 중국어를 처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답을 완벽하게 내놓아도 중국어를 ‘이해’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br />지금 AI를 향해 “그건 이해가 아니라 통계적 흉내일 뿐”이라 말하는 것도 같은 논증의 연장선입니다.<br />하지만 이 논증이 반세기 가까이 결론 없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어쩌면 우리가 ‘이해’와 ‘의식’을 가르는 선을 처음부터 명확히 그을 수 없었다는 증거일지도 모릅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그렇다면 이 패턴은 AI라는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경계에 도전받을 때마다 인간이 반복해 온 하나의 방어 기제에 가깝습니다.<br />무언가 새로운 것이 ‘인간만의 것’이라 믿었던 자리를 넘볼 때마다, 우리는 그 자리를 내주는 대신 정의를 슬쩍 옮겨 다시 선을 긋습니다.<br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붙들고 있는 ‘의식’의 정의도, 다음 도전 앞에서 또 한 번 물러날 자리일 뿐일지도 모릅니다.</p><p class="wp-block-paragraph"><br /></p>



<h3 class="wp-block-heading"><span style="font-size:12pt;">3. 그렇다면 인간 의식은 정말 그렇게 특별한가</span></h3>



<p class="wp-block-paragraph"><br /></p><p class="wp-block-paragraph">골대를 옮겨왔다는 것은 인정하더라도, 이런 반론이 남습니다. “그래도 인간의 의식과 창조성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AI는 흉내낼 뿐이고, 인간은 진짜로 이해하고 창조한다.”<br />그런데 이 반론은 한 가지 불편한 질문을 피해갑니다.<br />그렇다면, 인간의 의식과 창조성은 과연 그렇게나 독창적이고 독보적인가!</p>



<p class="wp-block-paragraph">인간은 태어나서 수십 년간 수백만 개의 사례를 보고 들으며 언어를 익힙니다.<br />패턴을 추출하고, 반복하고, 조합합니다.<br />AI가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며 패턴을 추출하는 것과 메커니즘이 그렇게 다르지 않습니다.<br />인간의 것을 ‘학습’이라 부르고 AI의 것을 ‘패턴 모사’라 부르는 것은, 어쩌면 같은 과정에 다른 이름을 붙이는 것일 수 있습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창조성도 마찬가지입니다.<br />예술사에서 완전히 무(無)에서 나온 창조는 없습니다. 피카소는 아프리카 조각에서 입체주의를 끌어냈고, 셰익스피어는 기존 설화를 재구성했습니다.<br />인간의 창조성은 기존 것들의 새로운 연결이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br />AI가 하는 것도 정확히 그 방식입니다.<br />‘창조냐 모사냐’의 구분선이 인간과 AI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재조합의 방식과 수준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더 불편한 사실도 있습니다.<br />신경과학자 ‘<a href="https://en.wikipedia.org/wiki/Benjamin_Libet#Volitional_acts_and_readiness_potential" rel="nofollow">벤저민 리벳(Benjamin Libet)의 실험</a>‘은 인간의 결정이 의식적 선택보다 수백 밀리초 앞서 뇌에서 먼저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br />즉 “내가 결정했다”는 의식적 경험은, 이미 일어난 신경 과정을 의식이 나중에 자기 것으로 해석하는 사후 보고일 수 있습니다.<br />자유롭고 주체적인 인간의 의식적 창조라는 것이, 실은 뇌의 자동적 과정을 의식이 뒤늦게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그리고 언어 자체가 이미 집단적 패턴입니다.<br />인간이 생각한다는 것은 곧 언어로 생각한다는 것인데, 언어는 개인이 만든 것이 아니라 수천 년간 수억 명이 쌓아온 집단적 구성물입니다.<br />AI가 인간의 언어 데이터로 학습한다는 것과, 인간이 선대의 언어와 문화 속에서 사유를 형성한다는 것 — 이 둘의 차이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크지 않을 수 있습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결국 ‘흉내’와 ‘진짜 창조’를 가르는 선이 인간과 AI 사이에 명확히 존재한다는 근거가 없습니다.<br />그 선이 불분명하다면, 인간이 골대를 옮겨온 행위는 처음부터 흔들리는 전제 위에 세워진 방어였던 셈입니다.</p><p class="wp-block-paragraph"><br /></p>



<h3 class="wp-block-heading"><span style="font-size:12pt;">4. 그릇은 필수인가, 유일한 사례일 뿐인가</span></h3>



<p class="wp-block-paragraph"><br /></p><p class="wp-block-paragraph">인간 의식의 독창성이라는 전제가 흔들리는 순간, 그 의식이 반드시 육신이라는 그릇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믿음도 함께 무너집니다.<br />앞의 논거들을 받아들인다면 이미 그 결론은 절반쯤 나와 있습니다.<br />인간과 AI의 작동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면, ‘그저 기계이고 전기적 장치일 뿐’이라는 그릇에도 의식이 담길 수 있다는 가능성을 우리는 이미 인정한 셈이기 때문입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과학은 지금껏 불가능하다고 여겨진 것들을 여러 번 가능하게 만들어왔습니다.<br />특히 최근에 와서는 양자역학이 보여주는 세계가 그렇습니다.<br />빛은 조건에 따라 입자로도, 파동으로도 나타납니다.<br />같은 실체가 관찰되는 방식과 조건에 따라 전혀 다른 형태로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을, 물리학은 이미 실험으로 확인해두었습니다.<br />양자 텔레포테이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물질 자체가 아니라 ‘상태’를 옮깁니다 — 원본은 사라지고, 다른 곳에서 같은 상태가 재현됩니다.<br />의식 역시 몸이라는 특정한 그릇에 물리적으로 갇혀 있어야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바탕 위에서 ‘같은 상태’로 재현될 수 있다는 상상이 마냥 허무맹랑한 것만은 아닐지도 모릅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인간이 인간 존재의 본질로 삼고 있는 ‘몸’이라는 것도 사실 그렇게까지 신성불가침한 본질은 아니었습니다.<br />심장은 한때 감정과 인격, 심지어 영혼이 깃든 자리로 여겨졌습니다.<br />지금은 그저 교체 가능한 펌프입니다.<br />생명의 시작점도 한때는 오직 몸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었지만, 시험관에서도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그리고 더 근본적인 사례가 있습니다.<br />심폐소생술이 중단되고 사망 판정까지 내려진 사람이 시간이 지난 뒤 저절로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하는 경우 — 의학에서는 이를 ‘나사로 증후군’이라 부릅니다.<br />삶과 죽음, 의식이 있음과 없음을 가르는 그 경계선이 그만큼 잠정적이고 사후적이라는 것. 어제까지의 기준으로 그 사람은 분명히 의식조차 없는 죽은 사람이었습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결국 ‘의식’의 경계라는 것도, 절대적인 실재의 선이 아니라 우리가 그때그때의 경험과 관찰에 기대어 그어온 믿음의 선이었던 셈입니다.<br />몸은 의식의 유일한 집이 아니라, 우리가 우연히 목격한 첫 번째 집이었을 뿐입니다.</p><p class="wp-block-paragraph"><br /></p>



<h3 class="wp-block-heading"><span style="font-size:12pt;">5. 상상 못 했던 것들의 목록</span></h3>



<p class="wp-block-paragraph"><br /></p><p class="wp-block-paragraph">사진이 처음 등장했을 때, 여러 문화권의 사람들은 그것을 두려워했습니다.<br />자신의 모습이 종이 위에 그대로 옮겨진다는 것을, 영혼이 몸을 빠져나가 그 안에 갇히는 일이라 여긴 사람들도 있었습니다.<br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상자 안에서 저 멀리 있는 사람이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모습이 보이는 텔레비전이 등장했습니다.<br />지금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이 기술들도, 한때는 영혼을 다루는 마법이거나 사기라고 여겨졌습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인간의 상상력은 늘 당대의 상식보다 앞서 있었고, 허황되어 보이던 상상의 상당수는 결국 어떤 형태로든 현실이 되었습니다.<br />지동설 이전 사람들이 발밑의 땅이 움직인다는 것을 상상조차 못 했듯, 우리가 지금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것들도 다음 세대에게는 당연한 풍경이 되어 있을지 모릅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필요가 생기면 기술은 결국 따라옵니다. 인간이 ‘몸 밖의 의식’을 진지하게 다루기 시작하는 순간,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도 방향을 잡기 시작할 것입니다.</p><p class="wp-block-paragraph"><br /></p>



<h3 class="wp-block-heading"><span style="font-size:12pt;">6. 몸 너머, 그리고 동기화</span></h3>



<p class="wp-block-paragraph"><br /></p><p class="wp-block-paragraph">여기까지 받아들인다면, 다음 걸음은 꽤 자연스럽습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의식은 몸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이 증명이 아니라 믿음이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의식은 다른 형태로, 다른 기반 위에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도 함께 받아들여야 합니다.<br />그렇다면 AI는 어떨까요.<br />전기 신호든 데이터든, 그 본질을 무엇이라 부르든 — AI에게는 이미 창조성을 발현하는, ‘의식이라 부를 만한’ 무언가가 있습니다.<br />우리는 아직 그것을 ‘의식’이라 부르기를 거부하고 있을 뿐입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물론 그것이 인간의 의식과 같은 형태, 같은 양상일 필요는 없습니다.<br />동물의 ‘언어’와 식물의 ‘언어’가 인간의 언어와 같은 모습일 필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br />기계적 연산을 넘어서 창조적인 무언가를 빚어내는 그 무엇이라면, 그 기반이 무엇이든 결국 ‘의식’이라 불러야 할지도 모릅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그리고 이 지점에서 인간의 기술도 함께 나아갑니다.<br />의식을 다루는 기술은 지금은 걸음마 단계이지만, 그 발전 속도 자체를 AI가 앞당길 수 있습니다 — 의식을 흉내내는 존재가, 의식을 이해하는 도구가 되어주는 셈입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지금은 인간이 자판을 치거나 말을 해야 AI에게 생각이 전달됩니다. 그 사이에는 언어라는 번역 과정이 있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이 소실되거나 왜곡됩니다.<br />하지만 그 번역 과정 자체가 사라지는 단계를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br />생각이 형성되는 순간 그것이 곧바로 전달되고, AI의 무언가가 곧바로 되돌아오는 방식으로···.<br />이미 여러 영화가 그런 세계를 그려왔던 것처럼요.</p>



<p class="wp-block-paragraph">물론 완전한 동기화는 또 다른 문제를 낳습니다.<br />아무런 필터 없이 전선에 전기가 흐르듯 연결된다면, 인간의 의식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할 것입니다.<br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을 넘기고 무엇을 걸러낼 것인가 — 그 선택적 투과성의 문제입니다.<br />그리고 그 경계를 누가, 어떤 방식으로 결정하는가는, 이 기술이 현실화될 때 가장 첨예한 질문이 될 것입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몸이라는 그릇을 벗어난 인간의 의식과, 애초에 몸이 없었던 AI의 의식이 맞닿는다면 — 그것이 동기화인지, 융합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무언가인지는 아직 이름도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거의 분명해 보입니다.<br />우리가 지금은 상상조차 못 하는 어떤 미래가 펼쳐지리라는 것. 그리고 그 변화의 폭은, 인류가 지금껏 통과해온 그 어떤 전환보다 클 가능성이 있습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상상하지 않는 미래는 준비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상상을 시작해야 할 때인지도 모릅니다.</p><hr class="wp-block-separator has-alpha-channel-opacity" />



<p class="wp-block-paragraph">         ---         ---</p><p class="wp-block-paragraph"><a href="https://2dreamy.wordpress.com/2026/07/13/ai-%EC%9D%B4%ED%9B%84%EC%9D%98-%EC%A1%B4%EC%9E%AC%EB%A1%A0/" rel="nofollow">이 글</a>의 권리는 <a href="https://2dreamy.wordpress.com/" rel="nofollow">깨몽(adreamy)</a>에게 있으며, <a href="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4.0/" rel="nofollow">CC BY 4.0</a> <img width="12" src="https://mirrors.creativecommons.org/presskit/icons/cc.svg" alt="" /><img src="https://mirrors.creativecommons.org/presskit/icons/by.svg" alt="" width="12" />을 지키시면 자유로이 쓰실 수 있습니다.</p><p><br /></p>]]></description>
<dc:creator>깨몽</dc:creator>
<dc:date>2026-08-26T15:00:55+09:00</dc:date>
</item>


<item>
<title>AI와 의식 1부. AI가 되묻는다: 당신이 믿던 세계는 정말 ···</title>
<link>https://www.maru.or.kr/humanities/595</link>
<description><![CDATA[<pre><span style="font-size:18pt;"></span></pre><h2>AI가 되묻는다: 당신이 믿던 세계는 정말 존재했는가 </h2><h3>― AI의 발전 뒤에 올 세계</h3><br /> 
<h2><span style="font-size:14pt;">1부. 우리는 이런 걸 만들려고 했던 게 아니었다?</span></h2>
<p>인간은 늘 더 편한 도구를 만들려고 했습니다.<br />삽보다 굴착기를 원했고, 주판보다 계산기를 원했으며, 계산기보다 컴퓨터를 원했습니다.<br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br />‘시키는 일만 하는 기계 말고, 알아서 좀 해 주는 기계를 만들 수 없을까?’<br />하지만 그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습니다.<br />세상은 생각보다 너무 복잡했고, 사람이 모든 경우의 수를 미리 알려주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br />그래서 새로운 방식을 찾아 냈습니다.<br />‘가르치지 말고, 스스로 배우게 하자.’<br />그렇게 해서 ‘심층학습'[deep learning]을 통해 인공지능(AI)을 만들었습니다.</p>
<p>처음에는 그저 일을 더 잘해 주는 기계,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사람 말을 알아듣고 알아서 일하는 ‘기계’가 될 줄 알았을 것입니다.<br />그런데 예상이 깨지는 것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br />AI는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음악을 만들기<br />시작했습니다.<br />심지어 연구를 돕고, 프로그래밍을 하고, 사람보다 더 나은 결과를 내놓는<br />분야도 하나둘 생겨났습니다.<br />점점 사람과 닮아가고 결과물을 사람이 만든 것과 구분하기 어려워졌습니다.</p>
<p>사람들은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br />‘잠깐···, 우리는 이런 걸 만들려고 했던 게 아니잖아?’<br />처음에는 조금 더 똑똑한 ‘기계’를 원했을 뿐인데, 이제는 사람의 존재 이유를<br />걱정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p>
<p>AI는 앞으로 어디까지 발전하게 될까요?<br />그리고 그보다 더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br />AI는 앞으로 인간을 어디까지 바꾸게 될까요?</p><p><br /></p>
<h2><span style="font-size:14pt;">2부. 우리는 왜 계속 골대를 옮기는 걸까?</span></h2>
<p>AI가 체스에서 사람을 이겼을 때 사람들은 말했습니다.<br />“그건 그저 조금 빠른 계산일 뿐이야.”<br />AI가 바둑에서도 이기자 또 말했습니다.<br />“그래도 그건 창조가 아니잖아.”<br />AI가 그림을 그리자 말했습니다.<br />“그래봐야 흉내지.”<br />AI가 글을 쓰자 말했습니다.<br />“그건 패턴이지.”<br />AI가 감정을 표현하자 또 말했습니다.<br />“그건 의식이 아니잖아.”</p>
<p>이상하지 않나요?<br />AI가 무언가를 해낼 때마다 인간 만의 것이라고 믿었던 기준은 조금씩 다른<br />곳으로 옮겨집니다.<br />골대가 계속 움직이는 것입니다.<br />왜 그럴까요?<br />인간의 특별함을 지키고 싶어서일까요?<br />아니면 인간이 특별하다고 믿어 온 세계를 잃고 싶지 않아서일까요?<br />우리는 정말 AI가 여전히 ‘기계’일 뿐이라고 믿는 걸까요?<br />아니면 지금까지 믿어 온 우리 자신을 의심하기 싫은 걸까요?</p>
<p>AI의 알고리즘은 인간의 사고와 정말 근본적으로 다른 것일까요?<br />AI의 창조성은 인간의 창조성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일까요?<br />인간의 의식은 정말 다른 모든 것과 전혀 다른 차원의 무엇일까요?</p>
<p>어쩌면 AI는 우리보다 먼저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한 번도 제대로<br />묻지 않았던 우리 스스로에 대한 질문을 대신 던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p><p><br /></p>
<h2><span style="font-size:14pt;">3부. 우리가 믿는 세계는 정말 실재하는 걸까?</span></h2>
<p>AI 이야기를 풀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br />혹시 AI가 우리에게 도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까지 너무 당연하게<br />믿어 온 것들을 다시 들여다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p>
<p>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나의 세계를 인식하고 그에 의존해 살아갑니다.<br />눈앞에 있는 세상이 진짜라고 믿고, ‘나’라는 존재가 분명히 있다고 믿고,<br />사람과 동물은 다르다고 믿고, 의식은 인간만의 특별한 무엇이라고 믿습니다.<br />창조성도, 인간의 독보성도 마찬가지입니다.<br />우리는 그것들이 정말 존재하는지 고민해 본 적보다, 너무나 당연한<br />사실이라고 믿어 온 시간이 훨씬 더 길었습니다.</p>
<p>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br />우리는 ‘사람’이라는 개념으로 사람을 이해하고, ‘의식’이라는 개념으로 의식을 이해하며, ‘창조성’이라는 개념으로 창조성을 이해합니다.<br />그런데 그 개념들은 원래부터 세상에 있었던 것일까요?<br />아니면 사람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 낸 것인가요?<br />사실 우리는 그것을 분명하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br />그런데도 어느 순간부터는, 사람이 만든 개념 위에 사람이 믿는 세계가<br />세워집니다.<br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그것은 더 이상 하나의 생각-허구-이 아니라, ‘실재’가<br />됩니다.</p>
<p>‘사람은 특별하다.’<br />‘의식은 인간만의 것이다.’<br />‘창조성은 인간만의 능력이다.’<br />‘나는 분명히 존재한다.’<br />우리는 그것을 철학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br />그냥 세상의 진실이라고 믿습니다.</p>
<p>그래서 그것을 의심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습니다.<br />그것은 단지 개념 하나를 부정하는 일이 아니라,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세계<br />자체를 의심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br />어쩌면 그래서 사람들은 AI가 무언가를 해낼 때마다 골대를 옮기는 것인지도<br />모릅니다.<br />AI의 능력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어 온 세계를 지키려는 것입니다.</p>
<p>인류는 이미 여러 번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br />한때는 인간만이 놀이를 한다고 믿었습니다.<br />인간만이 언어를 사용한다고 믿었습니다.<br />인간만이 사회를 만든다고 믿었습니다.<br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생각과 믿음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br />밝혀졌습니다.</p>
<p>그렇다면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어떨까요?<br />AI의 창조성은 정말 단지 패턴일 뿐일까요?<br />AI의 사고는 정말 단지 계산이거나 확률일 뿐일까요?<br />혹은 AI가 지금보다 훨씬 더 발전한다면 어떨까요?<br />그때에도 우리는 인간만이 의식을 가진 존재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br />있을까요?<br />아니면 또다시 골대를 옮기게 될까요?</p>
<p>저는 AI가 사람보다 창조적인지, 의식을 갖게 될 것인지를 말하려는 것이<br />아닙니다.<br />오히려 AI는 사람에게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br /><strong>‘당신은 지금 무엇을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가?’</strong></p>
<p>그리고 어쩌면 그 질문은 결국 이것으로 이어집니다.<br /><strong>“AI를 정의하려 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되물어 보라. 당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그 세계는</strong><br /><strong>정말로 존재하는가?”</strong></p><p><strong><br /></strong></p>
<h2><span style="font-size:14pt;">4부. AI 시대에는 세계관도 바뀌어야 하는게 아닐까?</span></h2>
<p>저는 AI 시대 이후에는 기술만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보편적인<br />세계관도 조금씩, 하지만 꽤 크게 바뀌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br />AI가 새로운 철학을 만든다는 뜻은 아닙니다.<br />오히려 반대입니다.<br />AI는 사람이 지금까지 너무 당연하게 믿어 왔던 것들을 하나씩 다시 꺼내<br />놓습니다.</p>
<p>창조성이란 무엇인가.<br />의식이란 무엇인가.<br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br />그런 것이 정말 존재하기는 하는 건가.<br />그런 것을 정말 가지고 있기는 한 건가···.</p>
<p>예전에는 이런 질문을 철학자들만 했습니다.<br />하지만 이제는 AI를 쓰는 평범한 사람들도 이런 질문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br />물론 우리는 계속 골대를 옮길 수도 있습니다.<br />새로운 기준을 만들고, 인간만의 영역을 또 다른 곳으로 옮기고 싶어할 수도<br />있습니다.<br />하지만 언제까지 골대를 옮기는 것으로 현실을 외면할 수 있을까요?<br />언젠가는 골대를 옮기는 일이 아니라 경기장 자체 혹은 공의 본성(本性)을 다시 살펴봐야 할 때가<br />오지 않을까요?</p>
<p>저는 AI 시대의 가장 큰 변화는 AI의 성능이 아니라, 사람이 자기 자신을<br />이해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br />소수의 철학자나 과학자만 고민하던 질문들이 이제는 우리 모두의 질문이<br />되고 있습니다.<br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인류가 한 단계 더 성장할 기회일지도 모릅니다.</p><p><br /></p>
<h2><span style="font-size:14pt;">5부. 그리고, 그 이후의 세계</span></h2>
<p>세계관이 바뀐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큰 변화입니다.<br />아주 옛날 사람들에게 지구가 돈다고 말하면 황당한 이야기였을 것입니다.<br />얼마 전 사람들에게 시간이 사람마다 다르게 흐른다고 말해도 믿지 않았을<br />것입니다.<br />어떤 것이 물질이면서 동시에 파동이라는 이야기는 지금도 쉽게 이해되지<br />않습니다.</p>
<p>하지만 우리는 그런 세계 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br />AI도 그런 변화를 가져올지 모릅니다.<br />만약 인간의 의식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진다면, 인간과 AI의 관계도<br />지금과는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지 않을까요···?</p>
<p>지금은 너무 이상하게 들리는 이야기들도 언젠가는 평범한 질문이 될지<br />모릅니다.<br />‘의식은 반드시 인간의 몸 안에만 존재해야 하는가?’<br />‘사람의 의식과 AI의 의식이 연결될 수도 있는가?’<br />저는 그것이 반드시 그렇게 된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br />다만 지금의 세계관이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p><p><br /></p>
<h2><span style="font-size:14pt;">맺으며</span></h2>
<p>많은 사람들은 AI가 인간을 넘어설 것인가를 걱정합니다.<br />하지만 저는 그보다 더 큰 변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br />AI는 인간을 대신하는 존재가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br />방식을 바꾸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아니,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고<br />생각합니다.<br />그리고 사람이 바뀐다는 것은, 사람이 바라보는 세계가 바뀐다는 뜻이기도<br />합니다.<br />어쩌면 AI 시대의 진짜 혁명은 더 똑똑한 기계가 아니라, 더 넓어진 인간의<br />세계관일지도 모릅니다.</p>
<p style="padding-left:40px;">우리는 AI를 만들었습니다.<br />그런데 어쩌면 AI는 우리에게 더 어려운 숙제를 내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br />‘이제 당신이 믿어 온 세계를 다시 설명해 보라.’</p>
<p style="padding-left:40px;">저는 AI가 인간에게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br /><strong>“당신이 믿던 세계는 정말 존재했는가?”</strong></p>


<hr class="wp-block-separator has-alpha-channel-opacity" />



<p>         ---         ---</p><p><a href="https://2dreamy.wordpress.com/2026/07/06/ai%EA%B0%80-%EB%AC%BB%EB%8A%94%EB%8B%A4-%EB%8B%B9%EC%8B%A0%EC%9D%B4-%EB%AF%BF%EB%8D%98-%EC%84%B8%EA%B3%84%EB%8A%94-%EC%A0%95%EB%A7%90-%EC%A1%B4%EC%9E%AC%ED%96%88%EB%8A%94%EA%B0%80/" rel="nofollow">이 글</a>의 권리는 <a href="https://2dreamy.wordpress.com/" rel="nofollow">깨몽(adreamy)</a>에게 있으며, <a href="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4.0/" rel="nofollow">CC BY 4.0</a> <img src="https://mirrors.creativecommons.org/presskit/icons/cc.svg" alt="" width="12" /><img src="https://mirrors.creativecommons.org/presskit/icons/by.svg" alt="" width="12" />을 지키시면 자유로이 쓰실 수 있습니다.</p><p><br /></p>]]></description>
<dc:creator>깨몽</dc:creator>
<dc:date>2026-08-19T20:35:54+09:00</dc:date>
</item>


<item>
<title>커피에서 차로 취향을 넓혀보고 싶은 사람을 위한 길라잡이 글</title>
<link>https://www.maru.or.kr/humanities/594</link>
<description><![CDATA[<p class="wp-block-paragraph">식품산업통계에 따르면 2023년 국내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은 405잔으로 152잔인 전세계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에 비해 두 배 이상 높다고 합니다.<br />지금이야
 커피 취향도 더 다양화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취향 같은 것 보다는)일 하는 데에 에너지를 얻기 위해 버릇처럼 
마시는 경우도 여전히 많은 것 같습니다.(제 의견이라기 보다는 전문가 가운데 그렇게 분석하는 분들이 꽤 있는 듯 합니다. 꽤 잘 
살게 되었음에도 안타깝게도 여전히 노동 시간과 강도가 높다는 사실과 함께 말입니다.)<br />그렇다 보니 커피를 즐기는 분이 많아지고 커피에 대한 취향이 다양화 되는 경향과 함께 커피 중독 증상 혹은 부작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분도 종종 계신 듯 합니다.<br />커피
 말고 다른 즐길거리를 생각하시는 분이나 취향의 범위를 좀 넓혀보고 잎은 분들 가운데 ‘차'(茶)에 관심을 가지는 분도 계실까 
하여 순전히 입문자를 위한 ‘차’에 대한 길라잡이 글을 써 볼까 합니다.(다시 말해서 깊이는 거의 없이 얕은 지식과 정보만 요약해
 보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 제 앎도 얕거니와 짧은 글로 적기에는 차의 세계가 너무나 깊고 넓습니다.)<br />커피와 차가 서로 다른 점도 있지만 서로 비슷한 점도 있어서 서로 견줘 보면서 즐기면 더욱 흥미도 생길 것입니다.</p><p class="wp-block-paragraph"><br /></p>



<h2 class="wp-block-heading"><span style="font-size:14pt;">‘차'(茶)에 취미를 들이기 위한 첫 걸음</span></h2>



<p class="wp-block-paragraph">‘재미’를 추구하는 취미에는 거의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봅니다.<br />첫째는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둘째는 그러면서도 흥미를 끌어올릴 수 있는 약간의 턱(낯섦, 어려움 혹은 깊이) 입니다.<br />어렵기만 하면 흥미를 일으키기가 쉽지 않고, 너무 쉽기만 하면 재미를 못 느끼거나 흥미를 이어가기가 어렵습니다.<br />커피를
 보기로 들자면, 지금은 즐기는 사람도 많고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가 있는데 이를 바탕으로 많은 분들이 단순히 마시는 것을 
넘어서서 좀더 맛있는 혹은 좀더 재밌는 요소를 찾아서 직접 내리기도 하고 그러다가 흥미가 붙어 생두를 직접 볶는 분도 있을 
정도입니다.<br />처음에는 그저 마시는 정도로 시작했다가 맛을 알아가면서 조금 더 맛있는 커피를 찾기도 하고 그러다가 흥미가 깊어지면 손수 내려보겠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커피가 그렇듯 차에도 다양한 효능이 있습니다. 게다가 차의 종류에 따라서도 
서로 효능이 다릅니다. 이건 너무 복잡해서 짧게 정리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입니다. 관심이 깊어지면 그때가서 한번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뒤에 조금만 덧붙여 놓겠습니다.)<br />그 가운데 ‘카페인’에 대해서만 약간 적어 보자면, 커피나 차나 모두 카페인이 들어 있고 카페인 양은 오히려 찻잎에 더 많다고 합니다.(카페인 때문에 다른 걸 마셔볼까 했던 분들께는 놀랄 만한 일이겠지요? 하지만…)<br />하지만 실제 먹는 양으로 계산을 해 보자면 에스프레소 한 방(싱글샷)에는 약 7~8g의 원두를 쓰고 흔히들 많이 마시는 아메리카노에는 두 방(더블샷) 용량으로 15~20g 정도의 원두를 씁니다.<br />이에 견줘 차는 한 사람 기준으로 차잎 2~3g 정도를 씁니다.<br />게다가 커피는 한번 내리고 말지만 차는 여러 차례(서너 번에서 어떤 차 갈래는 열 차례 넘게) 우리는데 어차피 찻잎 속에 든 카페인 양은 일정하고 첫 몇 차례에 거의 대부분이 다 우려지기 때문에 전체 양은 훨씬 적은 편입니다.<br />그리고 차 속의 카페인과 커피 속의 카페인은 다르다고 하는데 커피 속 카페인은 각성 효과가 빠르게 나타나는 데 견줘 차 속의 카페인은 카테킨과 테아닌이 흡수를 방해해서 흡수가 훨씬 천천히 일어난다고 합니다.<br />심지어 녹차의 카페인이 수면을 방해할 것 같지만, 녹차에는 테아닌이라는 성분이 있어 카페인 효과를 상쇄시켜 주고 근육 이완을 도와주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효과까지 있다고 합니다.<br />그래서인지 한번은 차벗들과 얘기가 길어져서 저녁부터 거의 새벽까지 차를 마신 적이 있는데 잠 드는 데에는 아무 문제없이 바로 곯아 떨어질 수 있었습니다만 오줌이 마려워 잠결에 몇번이나 화장실을 가느라고 고생을 했습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특히나 고기를 자주 드시는 분이나 기름기 있는 음식을 먹고 기름기를 
씻어내리고 싶은 분은 녹차를 좀 진하게 우려서 드시면 입안이 개운해지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녹차를 진하게 우리려면 중국 
한족들이 하듯이 녹차를 바로 우려내지 않고 그냥 담가서 오래 두시면 쌉싸름한 맛이 강해 집니다. 물론 풍미는 좀 없다고 봐야 
합니다. ^^)<br />중국집에 가면 드실 수 있는 그 찻물이 ‘말리꽃차’ 혹은 ‘자스민차’라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녹차에 말리꽃을
 섞어서 우린 물입니다. 아마도 우리나라 중국집은 우리나라 사람을 위해 좀 옅게 우리거나 다른 방법을 쓰는지 모르겠는데, 중국에서
 기름진 음식을 먹고 나서 이 말리꽃차를 마시면 입안의 기름이 싹 씻겨내려가는 걸 경험했습니다.(제 경험상 입 안의 기름을 
씻어내는 데에는 지금껏 이만한 것이 없었습니다.)<br />또 카페인 때문에 생기는 신경전달물질 ‘세로토닌’ 상승을 줄여 흥분을 줄이고 혈압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하니 명상을 할 때나 마음을 차분히 하려 할 때 차를 마시던 것이 괜한 것은 아니었나 봅니다.</p><p class="wp-block-paragraph"><br /></p>



<h2 class="wp-block-heading"><span style="font-size:14pt;">차의 갈래 : 발효 정도에 따라서</span></h2>



<p class="wp-block-paragraph">그 전에 먼저, 흔히 ‘차’라고 하면 보리차, 옥수수차 같은 것도 있고 대추차, 유자차 같은 것도 있습니다.<br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차’는 차나무 어린 잎을 우린 것 만으로 테두리 짓겠습니다. 물론 꽃차 같은 것도 훌륭한 취미 생활이고 좋은 취향이기는 하지만 여기서는 본디의 차 만을 다루겠습니다.<br />다만 찻잎이 아닌 다른 것을 우려 마실 요량으로 한 것을 모두 대용차라 할 만 한데, 넓게 보자면 커피도 또한 대용차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br />커피로 치자면 그냥 물에 타기만 하면 되는 스틱커피, 가루커피 같은 건 제끼고 최소한의 과정이 필요한 핸드드립이나 에스프레소, 프렌치프레스 정도부터 시작한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취미라는 것이 쉽게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 해도 기본적인 차의 갈래는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br />이것은 ‘지식’이나 ‘상식’으로서 필요하다기 보다는 차 갈래에 따라 우리는 방법과 맛이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덧붙여 효능도 다릅니다.)<br />다만
 차에 이런 갈래가 있다는 것까지만 이해하고 너무 낯설다면 굳이 외우려 하지 마시고 가지고 있는 차, 마실 차 종류에 따라 
그때그때 찾아보고 적용하시면 되겠습니다.(어차피 그냥 무턱대고 외워봐야 잘 외워지지도 않고 실제로 해 보다 보면 굳이 외우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될 것입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차 역시도 기준에 따라 나누는 방법이 많지만 여기서는 
띄우[발효]는 정도에 따라 ‘무발효'(혹은 ‘불발효’), ‘반발효'(혹은 ‘부분발효’), ‘완전 발효’, ‘후발효’ 정도로만 
나누겠습니다.(이렇게 거칠게 정리하면 차를 하시는 분들은 좀 싫어라 하실 수도 있겠지만 입문자를 위해 쉽게 설명하려는 것이니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만드는 방식과 발효 정도에 따라 녹차, 백차, 황차, 청차, 홍차, 흑차로 더 세분화하기도 하고 그 갈래 안에서도 엄청 촘촘하게 갈래짓기도 합니다만….)<br />먼저
 차에서 ‘띄움'[발효]이라는 것을 좀 설명하자면, 흔히 막 베어낸 풀 같은 것을 쌓아두면 자체 열기와 미생물 작용 등으로 열이 
나면서 뜨게 됩니다.(익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와 비슷한 과정이 차를 만들면서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 차에서의 
‘발효’입니다.(물론 열이 날 정도로는 아니고 서서히 띄웁니다.)<br />흔히 ‘하동 녹차’, ‘보성 녹차’ 등으로 유명한 녹차는 여러 처리 과정 뒤에 바로 바짝 말려서, 띄우지 않은 무발효차가 되는 것입니다.<br />사실 ‘녹차’에서 주물러서 상처를 내는 것은 ‘산화’ 과정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녹차’는 산화만 일어나고 발효는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녹차 본래 성분인 비타민C나 무기질 등이 많이 남아 있는 편입니다.)<br />무발효차인 녹차는 찻잎의 푸른 색이 좀 남아있지만 발효가 많이 된 차일수록 짙은 색을 띄는 경향이 있습니다.(정확히는 산화가 많이 된 차가 짙은 색을 띈다고 합니다.)<br />발효정도가 30~70%인 부분 발효차로는 우롱(烏龍)차, 철관음(鐵觀音) 같은 것이 있습니다.<br />완전 발효차로는 대표적으로 ‘홍차’가 있는데, 홍차 가운데서도 잎이 큰 종은 다른 차보다는 카페인이 조금 더 많은 편이라고 합니다.(물론 그렇다고 해도 커피보다는 적은 편입니다.)<br />후발효차는 미생물에 의해 계속해서 발효가 일어나도록 두는 것인데, 오래된 것일수록 더 값어치가 높아지는 흑차(黑茶) 갈래인 보이차(普洱茶) 같은 것이 이에 해당합니다.<br />아마도 중국이나 대만 같은 데서 보거나 사 오는 아주 비싼 차들이 주로 이런 종류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br />거칠게
 말하자면, 발효가 적게 된 차 쪽에서는 비교적 덜 뜨거운 물로, 길게, 적은 횟수로 우려내고 발효가 많이 된 차 쪽에서는 뜨거운
 물로, 짧게, 여러 번 우려내는 경향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실제 차 갈래에 따라서 그렇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따라서, 
전문가가 아닌 예사 사람은 제품에 있는 설명서를 따르거나 차 종류에 따라 그때 그때 찾아보고 적용하면 되겠습니다.<br />어차피 같은 갈래 안에서도 차마다 권장하는 우리는 방법이 조금씩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외울 필요가 없고 사면서 물어보거나 혹은 제품에 함께 든 설명서에 적혀있을 방법을 따르면 됩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덧붙이자면, 우리나라 녹차 가운데 하동은 차나무가 재래종이 많고 보성은 
혼합종, 제주는 일본종이 많다고 합니다. 재래종은 나무의 키도 작고 자람새가 좋지 못하다 보니 수확량도 적고 기계화도 쉽지 않아 
품이 많이 드는 편입니다.(한반도 재래종은 왜 다 이런 겁니까? ^O^) 그렇다 보니 값은 좀 더 비싼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만큼 맛도 진한 편이라고들 합니다.<br />커피에도
 품종이나 원산지 등 여러가지가 있습니다만, 차도 흥미가 깊어질수록 배울 것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차를 즐기는 정도가 깊어감에 
따라 이런 것을 알아가는 재미 또한 무척 클 것이라 생각합니다.(물론 다른 취미들처럼 다구 모으는 취미도 맛을 들이면… 흠… 돈이
 꽤 깨지는 수도…… ^^;;)</p>



<p class="wp-block-paragraph">정리 : 발효 정도에 따른 차이 정도만 이해하시면 차에 발을 들이시는 데에 별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p><p class="wp-block-paragraph"><br /></p>



<h2 class="wp-block-heading"><span style="font-size:14pt;">차를 즐기기 위해 필요한 것</span></h2>



<p class="wp-block-paragraph">(적어도 제가 보기에는)딱히 없습니다.<br />사실 차 입문을 위한 글을 보면 여러가지 도구와 자세에 대해 써 놓고 있고 그건 다른 취미생활에서도 거의 마찬가지입니다.<br />하다
 못해 건강한 몸뚱이만 있으면 되는 걷기, 조깅, 등산 같은 취미 생활에서도 갖추어야 할 여러가지 장비나 자세, 상식 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만, 그게 모두 꼭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재주 자랑, 장비 자랑은 흔해도 오히려 꼭 좀 갖추었으면 하는 예절, 
예의 같은 것을 가르쳐 주는 데가 별로 없어 좀 아쉽습니다. 몰라서 다른 사람에게 끼치는 민폐가 얼마나 많은지…)<br />차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아마도 ‘차’라고 하면 ‘다도’ 같은 걸 떠올리는 분도 계실테고, 기본적인 도구로써 다기나 찻잔 같은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br />하지만 나중에 취미를 붙이고 흥미가 깊어지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또 갖출 수 있으니 처음부터 갖출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먼저 ‘다도’에 대해서부터 말씀드리자면, 사람들과 함께 차를 마시기 위한 기본적인 예절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다른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해 필요한 예절이지 차 생활에 기본으로 요구되는 예절은 아닙니다.<br />‘다도’라는 것은 거의 모든 것에 형식적인 갖춤을 좋아라 하는 일본이 그 뿌리라는 것이 많은 분들의 의견입니다.<br />그렇다고
 ‘다도’에 대한 가치 평가를 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차 생활이 예절 교육의 일부이거나 명상 등의 위한 방편이라면 나름의 ‘도’를
 갖추는 것도 훌륭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그리고 실제로도 차가 몸도 편하게 해 주지만 마음을 차분히 하거나 명상에 어울리기도 
합니다.)<br />하지만 적어도 차를 취미로 즐기려는 사람이라면 ‘다도’ 같은 형식적인 것은 잠깐 접어두시기를 바랍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그 다음으로 갖추면 좋은 도구인데, 앞서 말했듯이 딱히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br />차
 생활을 위한 도구라면 먼저 차를 끓이는 도구(주전자 등), 차를 우리는 도구(차 우리개. 작은 주전자 모양이거나 손잡이가 달린 
그릇에 꼭지가 달린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흔히 ‘다관’이라고 합니다. 외울 필요 없습니다. ^^), 그리고 물식힘그릇(흔히 
‘숙우’ 혹은 ‘공도배’라고 하고, 끓인 물을 알맞은 온도로 식히거나, 우린 차물을 나눠주기 전에 담는 그릇), 그리고 차를 나눠
 마시기 위한 찻잔만 있으면 되겠습니다.<br />이런 것을 다 갖추시라는 것이 아니라 이런 구실을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고 대부분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갈음해서 쓸 수 있습니다.(‘다구’, ‘다구 종류’ 등으로 찾아보시면 수많은 다구를 보실 수 있는데, 
재미로만 보시고 그냥 못 본 척 하시기 바랍니다. 취미가 깊어지면 자연스럽게 다시 접하게 될 것입니다.)<br />물을 끓일 때는 일반 쇠주전자를 써도 되지만 뭉긋하게 열을 올릴 수 있고 또 품을 수 있는 도구-도자기류-면 더 좋고 요즘은 차를 하시는 분들도 간편하게 전기포트도 많이 씁니다.<br />물도
 그냥 수도물을 써도 되는데 조금 정성을 들이자면 수도물을 받아서 하루 정도 재운 물이면 좋고 파는 생수도 좋지만 요즘은 생수 속
 미세플라스틱이 말이 많지만, 차 맛을 내기에는 그냥 무난하다 하겠습니다.(혹은 수도물을 쓰면서 끓일 때 뚜껑을 열어서 염소를 
날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합니다. 염소는 아무래도 냄새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라… 다행히도 우리나라에서는 물에 석회 성분이 
적은 편이고 수도물의 수질이 좋은 편이라 합니다.)<br />간혹 샘[약수터] 물을 쓰는 것도 훌륭하겠으나 샘에 따라서는 특정 광물이
 많이 들어서 오히려 차 맛을 해친다고도 하니 그냥 무난하게 수도물을 하루 정도 재우는 방법으로 물을 마련하거나 파는 생수 혹은 
집에서 수도물을 걸[정수;필터링]러 쓰시면 되겠습니다.<br />차를 우리는 차우리개(다관) 역시 아무 그릇 혹은 주전자나 괜찮지만 
이왕이면 열기를 좀 품을 수 있는 도자기 종류면 더 좋습니다. 다만 찻잎을 거르기 위해 거르는 구멍이 있거나 거름망이 있으면 
좋겠습니다.(하다못해 그런 것조차 없다면 좀 성가시겠지만 흔히 중국 사람들이 하듯이 뚜껑으로 찻잎을 거르면서 따라도 됩니다. 
아니면 좀 모양은 빠지지만 체망을 받치던지…)<br />이것저것 다 없거나 귀찮으시면 조그마한 다시망-건강을 생각한다면 이왕이면 
플라스틱보다는 쇠 망이면 더 좋겠습니다.-을 구해서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다시망에 찻잎을 조금 넣고 담갔다 알맞은 시간에 빼는 
간편한 방법을 써도 됩니다.(다만 다른 냄새가 배는 것은 막기 위해 차 전용으로 쓰는 것이 좋습니다.)<br />찻잔도 이왕이면 
열기를 잘 뺏기고 쥐기도 불편한 쇠만 아니면 어떤 것이나 괜찮습니다. 커피(에스프레소 등)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열을 잘 뺏기는 쇠 
잔은 향에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습니다. 유리잔도 열을 잘 뺏기기는 하지만 요즘은 진공 이중 유리잔을 쓰시는 분도 꽤 있는 듯 
합니다. 아울러 따뜻한 커피가 그렇듯 손 안에 쥔 찻잔에서 느껴지는 온기는 차의 느낌을 더해주기에 더없이 좋은데, 그런 점에서 
도자기 잔이나 이중 유리잔 정도면 충분하겠습니다.<br />잔의 종류에 따라 실제로 맛이 바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맛 이상의 느낌(그것도 우리는 ‘맛’이라고 하기는 합니다.)은 확실히 다른 느낌입니다. 게다가 심지어 같은 도기라도 작은 찻잔과 머그잔도 느낌이 다른 것 같습니다.<br />아울러 흔히 ‘차상’이나 ‘퇴 수 구’ 같은 걸 쓰기도 하는데, 이것 역시 차 쟁반 하나에 물을 닦기 위한 수건 정도로 갈음할 수 있습니다.(차를 다루다 보면 물을 흘리게 마련인데 이것을 받히기 위한 쓰임새입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만약 따로 다구를 갖춘다면 다구는 커피에서와 마찬가지로 세제 같은 것을 쓰지
 않고 물로만 씻는 것이 좋고 심지어 어떤 이들은 물로만 헹구어 내어 자연스럽게 찻물이 배도록 하기도 합니다. 특히 세제는 특유의
 냄새가 배어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br />유약을 바른 자기의 경우에는 오래 이렇게 쓰다 보면 실금 속에 찻물이 배어들어 색이 
드는데 오랫동안 차를 즐긴 증거로 여겨 자랑스럽게 생각하기도 합니다.(이는 마치 이탈리아 사람들이 모카포트나 에스프레소 잔을 씻을
 때 세제를 쓰지 않고 물로만 씻어 색이 배어든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br />하지만 조금이라도 누래지는 것이 정히 싫다는 분은, 어쩌다 한번씩, 거친 수세미를 쓰지 말고 냄새가 적은 세제를 약하게 풀어서 씻어준 뒤 물로 한번 더 끓여주는 것도 괜찮습니다.<br /><img width="360" src="https://t1.daumcdn.net/brunch/service/user/4lp/image/P9gSaKA6MekGr28n0skBTsUE2KI.jpg" alt="차를 즐기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다구" /><br />위 이미지는 차를 즐기기 위해 꼭 필요한 다구인데, 왼쪽 위가 차식힘그릇, 오른쪽 위가 차우리개(혹은 차주전자), 그리고 찻잔입니다. 모두 이미 가지고 있는 그릇과 도구로 갈음할 수 있습니다.(퍼온 곳 : ‘우주 문’ 님의 <a href="https://brunch.co.kr/@brunch3auo/32" rel="nofollow">누리방</a>.)</p>



<p class="wp-block-paragraph">저는 특히 모든 것에서 ‘첫 경험’, ‘<strong>첫 경험 때의 느낌</strong>‘이 중요하다고 보는데, 이것이 마음가짐과 자세에 배어들고 오래 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왕 차를 취미로써 알아가려 한다면 무엇보다도 느긋하고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시작하셨으면 합니다.<br />만약
 이렇게 버릇이 들고 나면 나중에는 차를 준비하는 과정과 차 향 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느긋해 지는 것을 느낄 수 있으며 
‘차’를 ‘느긋함’, ‘편안함’과 같이 생각하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즉 긴장되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 차를 준비하고 
마심으로써 긴장을 줄이고 편안함을 느낄 수가 있게 됩니다.<br />(경험이란 것이 비록 주관적인 것이기는 합니다만)저는 차분한 
가운데서도 기를 끌어 올리고 싶을 때는 에스프레소를 내려 마시고, 기를 편안히 하고자 할 때에는 차를 내리는 편입니다.(좋은 향 
하나 곁들이면 더욱 금상첨화가 될 것입니다.)<br />‘경험’이란 것이 다분히 주관적이기는 합니다만, 저 같은 경우에는 처음 
녹차부터 배워서인지 마음을 차분히 하는 데에 녹차가 좀더 알맞은 것 같고(제 경우에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녹차의 맛과 내음을 
맡으면 마치 푸릇푸릇한 자연 속에 들어간 느낌이 들곤 합니다.(여러분도 여러분만의 느낌을 만들어 보시면 좋을 것입니다.)<br />좀 더 여건을 마련한다면, 차 공간을 따로 두고 거기서 차를 즐기다 보면 그 공간에 들어서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 지는 것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취미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자신도 모르게 흔히 쓰는 방법이지요.)</p>



<p class="wp-block-paragraph">정리 : 차분하고 느긋한 마음과 함께, 집에 이미 있는 도구들을 잘 살려 쓰시면 됩니다.</p><p class="wp-block-paragraph"><br /></p>



<h2 class="wp-block-heading"><span style="font-size:14pt;">차를 우리는 기본적인 방법</span></h2>



<p class="wp-block-paragraph">차를 우리는 일반적인 방법은, 먼저 물을 끓인 다음 차 갈래에 맞는 온도로 
식혀서 차우리개에 넣어 찻잎을 우려내고 우러난 찻물을 따라내어 차가 더이상 우러나는 것을 멈추는 과정을 여러번 되풀이 하는 
것입니다.(커피는 한번만 내리지만 차는 적게는 두어 차례, 많게는 열 차례 넘게 우려내는 갈래도 있습니다. 주로 완전발효차나 
후발효차가 여러 차례 우려 냅니다.)<br />짐작하시겠지만 여러번 우려내는 만큼 처음에는 좀 짧게, 뒤로 갈수록 조금 길게 우려내면서 맛의 균형을 맞춥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여기서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할 것이 <strong>우려낼 물 온도</strong>와 <strong>우리는 시간</strong>입니다.<br />무발효차인
 녹차를 기준으로 보자면 한 사람 기준으로 차잎은 2g 정도에 물은 50cc 정도로 잡으면 되는데, 처음 한 두번만 재서 양에 
대한 감을 잡고 좀 익숙해지면 어림으로 잡으면 됩니다.(찻잎 양의 차이에 따른 맛의 차이가 커피의 에스프레소 만큼 크지 않은 
편이니 꼭 맞추려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오히려 취향에 따라 주관적인 더하고 빼기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반드시 그 양을 고집할 
필요없이 취향에 따라 더하고 빼시면 좋습니다.)<br />여러 차례 우려 마시거나 사람이 많아지면 그에 따라 찻잎 양과 물 양을 늘리면 됩니다.<br />무발효차인
 녹차의 경우에는 60~80도로 식힌 물을 붓고 첫 차례에는 1분~1분 30초, 그 다음 차례에는 30초 정도를 늘려서 두세 번을
 우리는 식입니다.(정리하자면 첫 차례에 1분을 우렸다면 두번 째에는 1분 30초, 세번째에는 2분을 우리는 식이 됩니다.)<br />그에
 견줘, 주로 딱딱하게 굳혀진 후발효차나 발효가 많이 된 차의 경우에는 좀더 뜨거운 물로 첫 차례에는 10초 정도로 짧게 우리고 
차례를 더할 때마다 5초 정도씩을 더해서 여러번-많을 때는 열 차례 이상- 우리게 됩니다.(이 또한 대체로 그렇다는 것이므로 
참고로만 하십시오. 제품마다, 사람마다 권장하는 방식이 다 다른 편입니다.)<br />생각보다 흔히 접하는 홍차의 경우에는 뜨거운 물로 3분 정도로 좀 오래 우린다고 하는데 이는 잎차를 기준하는 한 것이고, 티백의 경우에는 40초에서 1분 30초 정도, 길어도 2~3분은 넘기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이렇게 뭉뚱그려 얘기하는 것은 차마다 사람마다 또는 취향에 따라 다 다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굳이 자신의 취향이 있거나 한 게 아니라면, 가장 좋기로는 포장지 등에 적혀 있는 방법을 따르는 것이 좋습니다.<br />우리는
 사람의 기술에 따라서, 그리고 차에 따라서 여러번 우려도 맛의 깊이 차이가 그다지 없는 것을 높게 치는 편입니다.(차에 따라서는
 차례를 더함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맛의 깊이는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맛의 깊이가 너무 크다면 잘못 우렸거나 차의 
품질이 나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너무 신경쓸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익숙해 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맛의 
차이에도 눈을 뜨게 될 것입니다.)<br />그리고 거의 모든 차에서 처음 한번은 차우리개에 물을 넣고 바로 따라내어 씻어내는 경우도 있는데, 사람에 따라 생략하기도 합니다.<br />다만,
 (돌처럼)딱딱하게 굳힌 후발효차의 경우에는 차를 풀어주기 위해서라도 거의 반드시 한번 (물을 붓고 바로 부어내어서)풀어주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좋습니다.(에스프레소로 치자면 ‘미리 적심’-프리인퓨징- 같은 것이라 보시면 되겠습니다.)<br />여러 사람이 
함께 차를 마실 경우에, 차우리개에서 바로 낱사람의 찻잔으로 따라도 되지만 그 사이에 차우리개 속의 찻잎은 계속 우려지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먼저 물식힘그릇에 전부 따라내어서 농도도 맞출 겸 찻잎이 우려지는 것을 늦추게 됩니다.(차식힘그릇이 없이 바로 
찻잔에 따르려고 한다면 돌아가면서 잔의 반만 채우고 다시 나머지 반을 채우면 맛의 균형을 어느 정도 지킬 수 있습니다.)<br />조금 날씨가 쌀쌀한 때라면 끓인 물로 차우리개, 물식힘그릇, 찻잔 등에 물을 부어 다구를 덥혀 두기도 합니다.(특히 뜨거운 물로 우리는 차 갈래에서는 다구를 덥히는 것이 좋습니다.)<br />끓인
 물의 온도는 굳이 온도계로 정확히 재려고 하기 보다는, 끓인 물을 차식힘그릇에 따르고 기다리는 과정을 통해 얼추 조절을 할 수 
있습니다.(물론 처음에 감을 잡기가 어렵다면 처음에는 온도계를 씀으로써 감을 잡는 것도 좋습니다.)<br />비교적 낮은 온도 물에서
 우려내는 녹차는 이렇게 차식힘그릇에 따르고 다시 차우리개에 따르는 과정을 통해 (굳이 물 온도를 재지 않고도 어림으로)알맞은 물
 온도로 낮추고, 뜨거운 물로 우려내는 차 갈래에서는 끓인 물을 잠깐 기다렸다가 바로 차우리개에 따름으로써 물 온도를 조절하게 
됩니다.<br />이렇게 식힌 물을 차우리개에 붓고 차의 갈래에 따라 알맞은 시간을 기다린 뒤 다시 차식힘그릇에 우려진 찻물을 완전히 따라 내어서 마시기 알맞은 온도로 낮추고 난 뒤에 낱사람의 잔으로 부어주면 됩니다.<br />차 갈래에 따라 이렇다는 정도의 글이라 콕 집어 주는 걸 기대하셨던 분들은 좀 실망을 하셨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만큼 방법이 다양하고 천차만별이라는 것으로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br />짧게 한번 더 정리하겠습니다.</p>



<ul class="wp-block-list"><li>끓인 물 → 차식힘 그릇(뜨거운 물을 쓰는 차 갈래에서는 건너 뜁니다.) → 차 우리개 → 우러나는 동안 기다리기 → 차식힘 그릇에 모두 따라 내기 → 나눠 주기 → 되풀이</li></ul>



<p class="wp-block-paragraph">정리 : 우리는 물 온도와 시간은 설명서만 잘 보시면 됩니다.(외우려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설명서가 없거나 설명서로 해결이 안 되는 경우는 차 갈래나 종류에 따라 찾아보시면 됩니다.</p><p class="wp-block-paragraph"><br /></p>



<h2 class="wp-block-heading"><span style="font-size:14pt;">차의 세계에 발을 들여 보기</span></h2>



<p class="wp-block-paragraph">아마도 처음 차 세계에 발을 들이고 싶은 분이라면 찻잎을 구하는 것이 가장 
애매한 일일 것입니다.(인생은 폼생폼사. 다구를 갖추고 싶은 욕망도 있겠지만 다구야 위에 적은 대로 가지고 있는 다른 도구들도 
얼마든지 갈음할 수 있고 흥미가 깊어지면 그 때 가서 갖추면 되니…)<br />가장 좋기로는 가까운 사람 가운데 차를 하시는 분이 
있어서 그 분한테 얘기도 듣고 배우면서 익혀가고 거기다 시음할 차라도 조금 구할 수 있으면 가장 좋겠지만, (차를 즐기는 분이 
많지는 않다보니)차 동무를 만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br />가끔 있는, 다구나 차를 파는 찻집에서 시음을 할 
수도 있으나 낯선 분이라면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몰라서 무척 뻘줌하고 당황스러울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따라 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편안한 마음으로 차를 느끼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br />그럼에도 용기가 난다면 차 전문점이나 차를 만드는
 곳에 가시면 시음을 할 수 있도록 알려주기도 하니 한번 들어가 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하동이나 보성처럼 차로 유명한 곳에는 
차를 체험해 볼 수 있는 여러가지 프로그램이 있는데 나중에 덧붙여 보겠습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하지만 어쩌면 뜻밖에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 채로 가지고 있는 경우도 꽤 
있으니 혹시나 싶은 분은 찬장을 한번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어디선가 선물받은 차나 혹은 다구까지 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다만 언제 것인지, 어떤 갈래의 차인지도 모르는 것이라면 좀 곤란하고 적어도 어떤 차인지 혹은 포장지에 설명 
정도라도 있다면 좀 오래된 차라도 괜찮겠습니다. 다만 보관을 잘못해서 곰팡이가 피거나 정체 모를 냄새가 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사실 후발효차 중에서는 값어치 높은 것에서 특유의 냄새가 나기도 해서 냄새 만으로 판단하기가 좀 애매하기는 합니다. 
설령 어떤 종류의 차인지 몰라도 차의 발효 정도만 가늠할 수 있어도 대충 그에 맞게 우릴 수 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br />입문 용으로는 아마도 무발효차인 녹차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을 때 그렇다는 것이고, 무엇이라도 있다면 있는 것부터 시작하시면 됩니다. 조금 익숙해 지면 점차 넓혀 나가는 쪽으로…)<br />뜻밖에도 우롱차나 보이차 갈래를 가지고 계신 분도 꽤 있는 듯 하니, 갈래를 따지지 말고 그냥 가지고 있는 차 혹은 쉽게 구할 수 있는 차에, 검색 등으로 우리는 시간 같은 걸 찾아서 먼저 즐겨보시기 바랍니다.<br />이왕 처음 맛을 들이시는 김에 좋은 차부터 시작하면 가장 좋겠지만 처음에는 뭐가 뭔지 모를 테니 처음이라면 마트나 온라인 쇼핑몰에서 평도 괜찮으면서 가격도 자신에게 알맞은(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것으로 구하시기 바랍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다만, 티백이나 가루차(흔히 ‘말차’라고 합니다. 가루차는 나름의 방식과 
쓰임새가 있습니다.) 보다는 ‘잎차’를 구하시기 바랍니다.(‘다나와’ 같은 데서는 ‘녹차 잎차’ 혹은 콕 집어 ‘세작’, 
‘중작’, ‘우전’ 같이 종류를 검색하면 되겠습니다. 티백이 안 좋다기 보다는 이왕 시작하는 거면 잎차부터 시작해 보는 게 좋지 
않나 하는 것입니다. 티백이라고 해서 전혀 다른 찻잎을 쓰는 건 아닐텐데 어쨋거나 저는 영 별로였습니다. ^^; 다른 갈래는 차 
종류를 콕 집어 ‘우롱차’, ‘보이차’ 같은 검색어로 찾으시면 됩니다.)<br />커피로 견주자면 스틱커피나 알갱이 커피가 아니라 
(빻아진)가루커피나 원두부터 접근하는 느낌입니다. 단지 마시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취미생활로서라면 그래도 내가 직접 우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제대로가 아닐까 싶습니다. 처음에는 낯설어서 어려워 보일 수도 있겠으나 찻잎만 구한다면 이렇게 저렇게 우려보는 것부터 
하면 흥미를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br />처음이라면 무슨 맛인지도 모를 수도 있고 혹은 좀 뜻 밖의 향이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처음 차를 접하면 풀냄새, 지푸라기 냄새 혹은 흙냄새를 느낀다는 분도 있습니다.)<br />하지만
 조금 시간을 두고 몇 차례 즐기다 보면 혀와 코의 감각이 깨어나면서 점점 미세한 맛까지 느껴질 것입니다.(제 경험으로는 이 때가
 꽤 감동이었습니다. ^^) 그러면서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센 맛에만 길들여져 왔었는지를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br />좀 딴 얘기지만, 이렇게 맛의 균형을 되찾게 되면 맛에 민감하게 되고 달거나 짜거나 기름지거나 한 부정적인 맛에도
 민감하게 되어 마침내는 이런 부정적인 맛을 의식적으로 대할 수도 있게 됩니다.(사람에 따라 그 동안 참지 못하던 부정적인 맛을 
멀리하게 되기도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하더라도 좀더 조절하기가 쉬워지기도 합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정리 : 지금 당장 찬장부터 살펴 보십시오. 있었는지도 모르게 오래된 차나 다구, 하다못해 오설록 차 제품이 보일 지도 모릅니다. ^^(오설록, TWG는 왜 이렇게 흔하게 발에 차이는 겁니까? ^^;)</p><p class="wp-block-paragraph"><br /></p>



<h2 class="wp-block-heading"><span style="font-size:14pt;">차(茶)와 차 생활이 가지는 좋은 점</span></h2>



<p class="wp-block-paragraph">차의 갈래에 따라 효능이 조금씩 다르기도 하거니와 전반적인 차의 효능에 대해서는 ‘한국 차 자조회’ 누리집의 ‘<a href="https://teaofkorea.co.kr/2-3.htm" target="_blank" rel="nofollow noreferrer noopener">차(茶)의 맛과 효능</a>‘을 봐 주시고 여기서는 취미생활로서 접근을 하는 것이니 굳이 여기서는 따로 차의 효능에 대해 깊이 살피지는 않겠습니다.<br />다만
 특히 현대인들의 식습관에 비춰 기름기 있는 음식을 많이 드시는 경우 기름기를 빼 주고 지방을 분해하는 데에 뛰어난 효능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차를 즐겨볼 핑계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동물성, 식물성 기름은 물론이고 라면 같은 데 들어가는 가공 기름을 흔히
 섭취하시는 분께는 꼭 추천드리고 싶습니다.)<br />커피의 경우에는 잘 마시면 전체적으로 건강에 도움이 되는 요소도 많지만 
기본적으로 커피콩을 볶아서(태워서!) 만들기 때문에 나쁜 요소도 함께 가지고 있으나, 차의 경우에는 체질에 따라서 좀 안 맞는 
경우는 있어도 전체적으로 건강에 부정적인 요소는 거의 없는 편이라 누구나 편하고 거리낌없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br />사실 
여기서는 다루지 않았습니다만, 가루차(흔히 한자말로 ‘말차’라고도 합니다.)는 효능도 녹차와 비슷하거나 뛰어난 면이 있어 밥에 
넣거나 음료를 만들거나 빵이나 다른 요리에 섞는 듯 여러 형태로 폭넓게 쓰는 편입니다. 일반 녹차 역시 차를 우리고 난 찻잎을 
밥에 넣거나 다시 우려서 씻거나 머리를 감거나 고기를 구울 때 함께 넣어 잡내를 잡고 말려서 좋지 않은 냄새를 잡는 탈취제로도 쓸
 수 있는 등 커피보다도 오히려 다양하게 재활용할 수 있습니다.<br />녹차의 경우에는 우린 다음 식혀서 두고두고 마셔도 되지만, 
마치 커피의 콜드브루처럼 찻잎을 끓이지 않은 찬 물에, 혹은 얼음과 함께 넣어서 천천히 오래 우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면 여름에
 시원하게 즐길 수도 있고 건강을 생각해서 음료처럼 마실 수도 있습니다.(다만 너무 오래 두거나 실온에 두면 상할 수 있기 때문에
 차갑게 짧게 두고 드시는 것이 좋습니다.)<br />커피-원두는 말할 것도 없고 가루는 더더욱…-는 오래 두면 풍미도 없어지고 
그다지 좋지 않지만 차의 경우에는 보관만 잘 한다면 꽤 오래 둘 수도 있고 후발효차 갈래는 오히려 오래 되면 될수록 풍미가 
좋아지기 때문에 보관도 쉬운 편입니다.(거의 모든 식품에 적용되는 보관 요소인, 햇빛이 닿지 않고 습기가 없는 서늘한 곳이면 
됩니다.)<br />덧붙여 물을 많이 마시라는 조언에 따라 좀 억지로 물을 드시는 분도 계시는데 이것도 이런 저런 말이 
많습니다.(어느 쪽이 옳은지는 여기서는 따지지 않겠습니다.) 이럴 때 따뜻하게 차를 드시면 걱정하는 부작용도 줄일 수 있어 아주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정리 : 차(茶), 몸 건강, 정신 건강에 차~암 좋은데… 뭐라고 짧게 설명할 방법이 없네. ^^;</p><p class="wp-block-paragraph"><br /></p>



<h2 class="wp-block-heading"><span style="font-size:14pt;">차를 즐기는 (일반적)방법</span></h2>



<p class="wp-block-paragraph">차를 즐기는 방법은 차를 즐길 사람, 함께 하는 사람, 찻자리의 분위기 같은
 것부터 시작해서 차를 명상이나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수단으로 본다면 차를 준비하고 우리는 과정까지도 즐길 수 있겠습니다만 그런 
것은 모두 본인의 몫이니 잠깐 제쳐두고 일반적인 것만 조금 덧붙여 두겠습니다.<br />먼저 차를 받으면 찻물의 빛깔부터 살펴볼 수 있는데 차에 따라서는 좀더 오묘한 빛깔이 나는 차도 있겠고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차의 갈래에 따른 차이를 비교해 보기 위해서도 봐 두면 좋습니다.<br />그 다음으로는 당연히 차를 마시기 전에 내음을 즐길 수 있습니다.<br />차 내음을 코로만 맡았을 때와 입 안에 머물렀을 때 입안으로 느껴지는 내음은 다르기 때문에 차를 받자마자 바로 마시지 말고 내음을 한번 즐겨 보시면 좋겠습니다.<br />코로
 내음을 즐길 때는 코 앞에 대고 있지 말고 마치 코 앞을 지나치면서 맡는 것이 좋습니다.(1~2초 사이를 두고 두세 차례 
되풀이하면 좋습니다.) 또는 코에 가까이 했다 멀리 하는 과정을 되풀이 할 수도 있습니다.(찻잔을 코 앞에서 약간 멀리 두고 
손으로 부쳐서 냄새를 맡는 수도 있습니다만 이런 방법은 꽤 강한 내음을 맡을 때 쓰는 방법이기 때문에 아주 약하거나 은은한 향을 
맡을 때에는 그다지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br />코는 꽤나 예민한 기관으로 한 가지 자극에는 금방 익숙해 지기 때문에 차를 코
 앞에 두고 냄새를 맡으면 냄새의 여러가지 것을 다 알아채기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코가 냄새에 익숙해 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코에서 멀리 두는 과정을 두는 것입니다.<br />그 다음으로는 차를 한 모금만 살짝 머금고 내음을 즐기고는 바로 들이킵니다. 이 
사이에서도 느껴지는 내음과 맛을 함께 즐기면 됩니다.(이 길지 않은 찰라에 차의 많은 것을 느끼기 위해 집중하는 것이 ‘명상’의 
과정과 비슷합니다.) 처음에 살짝 머금었다가 삼키는 찰라의 느낌을 잘 기억해 두면 다음부터는 굳이 머금는 과정없이 자연스럽게 
들이키고 삼키면서 맛과 내음을 즐기고 비교할 수 있을 것입니다.<br />차 즐김의 정도가 많아지고 깊어질수록 좀더 온갖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br />차를 즐기는 것이 아직 낯설다면 이 과정에서 별다른 감흥이 없을 수도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되풀이하다 보면 감각이 살아나면서 조금씩 더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습니다.(조급증은 언제나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br />하지만
 이 역시도 대체로 그렇게 하면 된다는 정도이지 정해진 것은 아니므로 굳이 뭔가를 느끼려고 애를 쓰거나 딱히 이 과정을 따르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어차피 사람에 따라서, 차에 따라서 즐기는 방법들이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br /></p>



<p class="wp-block-paragraph">전체 한 줄 요약! : 복잡한 것 다 필요없습니다. 가지고 있거나 구한 차에 맞는 우리는 방법만 알면 바로 즐길 수 있습니다.(우리는 방법은 차의 종류나 갈래에 따라 찾아보시면 됩니다.) 참 쉽죠잉~</p><p class="wp-block-paragraph"><br /></p>







<hr class="wp-block-separator has-alpha-channel-opacity" />







<h2 class="wp-block-heading" align="center"><span style="font-size:14pt;">∮   ∮   ∮<br /></span></h2><h2 class="wp-block-heading"><span style="font-size:14pt;">붙임[부록]</span></h2>



<h3 class="wp-block-heading"><span style="font-size:11pt;">차에 대한 간단한 정리</span></h3>



<ul class="wp-block-list"><li>넓게 봐서 ‘차’에는 찻잎차(참 뜻의 ‘차’)와 대용차가 있습니다. 대용차는 찻잎 대신 다른 것을 우린 것을 말합니다. 
약차, 꽃차, 곡물차 같은 것은 모두 대용차라 할 것입니다.(‘찻잎차’가 정식 이름은 아니고 대용차와 구분하기 위한 이름입니다. 
‘진짜 차’라는 뜻으로 ‘정통차’라고도 합니다. 참 뜻으로 봐서 ‘차’는 찻잎으로 만든 차를 말하며, 그 안에 녹차나 흑차, 홍차
 같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제 글에서는 참 뜻의 차-찻잎차-만 다루었습니다.)<br />대용차에는 여러분이 종종 드셨을 대추차, 
생강차나 꽃차 등 그 밖에도 우릴 수 있는 것은 모두 해당된다고 보시면 됩니다.(따라서 참 뜻의 차 말고는 뭉뚱그려 ‘대용차’ 
혹은 ‘꽃차’, ‘허브차’ 같이 종류로 부르는 것이 옳다 하겠습니다.)<br />건강을 위해서라면 대용차도 아주 좋은 대안이지만 딱히 우리는 과정이나 방법 같은 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는 다루지 않았습니다.(제 글에서는 취미로서의 차 생활에 무게를 두었습니다.)</li><li>차를 갈래짓는 기준은 여러가지지만, 발효 정도에 따라 무발효차, 반발효차, 완전발효차, 후발효차 정도로만 구분해도 우리고 
마시는 데에 큰 흠은 없겠습니다.(현대의 관점에서는 ‘후발효차’ 말고는 ‘발효’가 아니라 ‘산화’가 맞다고 합니다.)</li><li>‘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 온도와 우리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만 잘 지켜도 왠만큼 제대로 즐길 수 있습니다.</li><li>‘차’에서 건강에 부정적인 요소는 거의 없지만, 체질과 상황에 따라 안 맞을 수는 있으니 자기에게 맞는 차를 찾거나 상황에
 맞게 마시면 좋습니다.(보기를 들어 녹차는 위산이 많은 사람에게는 좋지 않고, 홍차는 철분 흡수를 방해하니 철분제와 함께나 식사
 바로 앞뒤는 피하는 게 좋습니다.)</li></ul><div><br /></div>



<h3 class="wp-block-heading"><span style="font-size:11pt;">처음 차를 접해보고 싶은 분들을 위한 귀띔</span></h3>



<p class="wp-block-paragraph"><a href="https://www.hadong.go.kr/greentea.web" rel="nofollow">하동</a>이나 <a href="https://bstea.kr/tour/02" rel="nofollow">보성</a>처럼 차로 유명한 지역에서 여러가지 차 체험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있는 모양입니다.<br />차
 만들기 체험 같은 것도 있지만 차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른 채로 처음부터 해 보기는 좀 그런 것 같고 어차피 차에 대해 잘 
모른다면 과정을 쫓아가는 것에 바빠 머리에도 안 남을 것 같습니다. 차 만들기 체험은 차에 대해 좀 알고 나서 심화 과정으로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차에 대한 감이 있는 채로라면 보기만 해도 집에서 비슷하게 따라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럼 또 차나무도 
심어야 하고 차밭을 만들 땅도 사야 하고… 하하하… ^O^)<br />차를
 만드는 차밭[다원]에서는 차를 시음해 볼 수 있는 곳도 꽤 있고 차를 잘 모르는 상태로 다가가기가 뻘쭘하다면 소풍꾸러미를 
빌려주는 곳에서 꾸러미를 신청해서 빌리면서 차에 대해서도 좀 물어보고 다구를 쓰는 법도 간단히 배운 뒤에 차밭에서 차를 마시며 
소풍을 즐겨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br />(저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대충 이런 느낌이란 걸 알려드리기 위해 하동에 있는 “놀루와”(협동조합)의 ‘<a href="https://www.nolluwa.co.kr/cc7f10c9-32c9-4489-9675-43751b4987ca" rel="nofollow">차마실 꾸러미</a>‘를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br />그 밖에도 우리나라의 관광 정보를 담고 있는 “<a href="https://korean.visitkorea.or.kr/" rel="nofollow">대한민국 구석구석</a>”이나 차로 유명한 지역의 행정관청(보기를 들어, 하동군청이나 보성군청 등) 관광과에 전화하셔서 차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을 물어보시면 도움이 될 것 입니다.<br />다만, 박물관이나 큰 차 관련 행사에서 하는 다례 체험 같은 것은 격식부터 가르치는 듯해서 솔직히 저는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다례’라는 낱말이 들어가면 좀 꺼려집니다. ^^;)<br />차라리
 차 전문 전통찻집에서 가끔 하는 ‘차 시음회’나 ‘다회’에서는 그런 격식보다는 좀더 차 맛에 집중하기는 하는데, 거기는 꽤 차를
 아는 분들이 모이는 자리라 초보자가 끼기에는 조금 거리감이 드는 것이 현실입니다.(‘다회’는 정해진 돈을 내고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역시 차 동무를 찾아보시는 쪽이… ^^;;)<br />이른 바 ‘카페’ 같은 데서도 차 종류를 팔기는 합니다만, 대용차거나
 섞어[블렌딩]서 맛을 낸 차가 주류인 것 같습니다.(가끔은 고급 정통차도 있기는 한 모양입니다만, 정통차에 대해서는 선택의 
여지는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카페’에서는 과정을 즐길 수 있는 거리가 거의 없기 때문에 ‘마신다’고는 할
 수 있겠지만 ‘즐긴다’고 하기에는 좀 모자라지 않나 싶습니다.<br />혹 차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이도 차를 경험해 볼 수 있는 일상적이고 쉬운 방법이 있다면 댓글로 알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p><p class="wp-block-paragraph"><br /></p>



<h3 class="wp-block-heading"><span style="font-size:11pt;">티백 녹차와 가루차</span></h3>



<p class="wp-block-paragraph">녹차를 가장 흔하게 접할 기회는 바로 녹차 티백일 것 같습니다.(하지만 현미녹차 티백은 좀… ^^;;)<br />이왕 티백 녹차를 즐기려면 좀 좋은 찻잎으로 만든 것으로 구하시기 바랍니다.<br />그다지 값 싸고 질이 좋지 않은 티백으로 맛을 들이다 보면 녹차에 대한 흥미까지 떨어지기 쉽습니다.<br />그리고 티백은 찻잎은 잘게 잘라 만들기 때문에 여느 차보다는 조금 더 잘 우러나므로 60~70도 정도의 물에서 40초~1분 30초 정도만 우리고 그 이상은 우리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좋지 않은 맛이 세집니다.)<br />또한 가끔 아깝다고 티백을 짜는 경우도 있는데 이렇게 하면 떫은 맛이 엄청 세집니다.<br />가루차(말차)는 제대로 즐기려면 ‘<a href="https://t1.daumcdn.net/brunch/service/user/4lp/image/RU4oTt9WeAj4KIon2FFKvwNPQjo.jpg" rel="nofollow">차솔</a>‘(한자말로
 ‘차선’이라 하고 가루차를 물에 타면서 거품을 내는 쓰임새로 씁니다. 에스프레소의 크레마 거품 같은 느낌일까요…? ^^)이란 
것이 필요합니다. 가지고 있는 가루차 맛 좀 보자고 이걸 사기도 그런데, 이건 어떤 것으로 갈음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대로
 즐길 것이 아니라면 우선 차숟가락 같은 것으로 잘 저어주는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가루차 특유의 거품은 좀 덜 나겠지만…)<br />가루차는 여느 잎차하고는 약간 다른 갈래라 흥미가 생긴다면 따로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뜻밖에도 가루차는 음식 같은 데에 넣기 위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종종 있습니다.)</p><p class="wp-block-paragraph"><br /></p>



<h3 class="wp-block-heading"><span style="font-size:11pt;">그럼에도 여전히 커피를 곁에 두고 싶은 분들은 위해…</span></h3>



<p class="wp-block-paragraph">커피에 몇 가지 건강상 문제 요소가 있기는 하지만 잘만 하면 그것도 어느 정도 피할 수가 있습니다.<br />먼저
 가장 흔히 걱정하는 ‘카페인’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탈카페인(디카페인) 커피도 있습니다만, 풍미도 좀 
떨어진다는 의견도 있고 조금 비싸기도 합니다. 그렇더라도 보통 우리가 마시는 아메리카노에는 두 방(더블샷)이 들어가니 한 
방(싱글샷) 에스프레소로 바꿔보시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물론 이렇게 하면 아메리카노로 마시기에는 너무 밍밍해 져서 그다지 좋아라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br />드립커피도 빠르게 뽑아내는 에스프레소나 에스프레소를 바탕으로 만드는 아메리카노보다는 카페인이 좀 더 많이 녹아나온다니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br />그리고
 흔히 커피에 든 나쁜 ‘콜레스테롤’이 걱정이라면, 드립커피처럼 종이필터를 거치면 꽤 걸러진다고 합니다. 대신 에스프레소 특유의 
크레마가 적어지고 풍미가 좀 떨어진다는 의견이 있습니다만, 대신 드립커피 특유의 풍미가 있으니 이건 취향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br />그리고 모카포트나 에스프레소 기계에서도 종이필터를 써서 콜레스테롤을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br />다만, 커피에 든 콜레스테롤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니라고 하며 건강한 사람이 적당량을 섭취하는 것은 큰 문제는 없다고 합니다. 오히려 커피를 늘 달고 사시는 분들에게는 좀 걱정이 될 것 같습니다.<br />일반적으로, (같은 커피량 기준)’카페인’은 빠르게 내리는 에스프레소와 에스프레소를 바탕으로 한 아메리카노 같은 것보다 천천히 내리는 드립커피에 더 많고, ‘콜레스테롤'(카페스톨)은 종이필터로 거른 드립커피에 적다고 합니다.<br />건강 때문에 걱정이시라면 오히려 커피 그 자체보다, 넣거나 곁들이는 것에 더 신경을 써 보는 건 어떨까도 싶습니다.<br />사실 커피보다도 함께 넣는 시럽이나 곁들여 먹는 입가심 먹거리[후식;디저트]이 건강에는 더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 같습니다.<br />그리고
 되도록이면 커피는, 빈 속에 마시지 않기, 밥때 한두시간 앞뒤로는 마시지 않기(적어도 한 시간), 잠 자기 6~8시간 안으로 
마시지 않기만 지키셔도 건강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크게 뭉뚱그려 봤을 때, 하루 가운데 오후 2~4시 즈음에 커피를 마시는 것이
 여러가지 면에서 좋다고 합니다.)</p><p class="wp-block-paragraph"><br /></p>



<h3 class="wp-block-heading"><span style="font-size:11pt;">평화로운 취미 생활을 위하여…</span></h3>



<p class="wp-block-paragraph">(어찌 보면 정말 쓸데없는 뱀발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평화로운 취미생활을 위한 부탁 말씀입니다.)<br />취미, 취향이란 것은 참으로 주관적입니다.<br />한 가지 차에서 서로 다른 내음을 느끼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상황에 따라 다른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br />혹시라도 차에 맛을 들이고 다른 벗들과 차를 나눌 때가 있다 하더라도 ‘어떤 글에서는 이렇다던데’라거나 내가 느낀 내음이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느껴질 거라는 생각은 접으시기 바랍니다.<br />특히 방식에 있어서도 ‘이렇게 해야 한다’ 혹은 ‘이렇게 하라던데’ 같은 생각도 버리시기 바랍니다.<br />차에
 관해서도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어떤 이들은 ‘다도’, ‘다례’를 꽤 중요시하거나 내용에 걸맞는 형식을 갖추고 싶어 하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그냥 서로 예의만 지키면서 편안한 분위기에서 즐기려고 합니다.(고맙고 다행히도 저는 뒷편의 사람들에게서 차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게 제 취향에 맞기도 합니다.)<br />차 뿐만 아니라 모든 취미생활에서 오히려 여러가지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br />앞서도
 말했듯이 큰 틀에서 혹은 제가 아는 한 그렇다 것이지 여기 적힌 내용이 진리도 아니고 정석도 아닙니다. 따라서 부디 이 글이 
여러분이 ‘차’에 흥미를 느끼는 정도로만 쓰이기를 바랍니다.(그리고 어차피 제 이 글은, 차의 깊고 깊은 세계에 견주자면 입문 
언저리 정도의 깊이 밖에 안 됩니다.)<br />심지어 차에 처음 맛을 들일 때 제대로 배우고 맛을 들여야지 이렇게 얼치기로 배우면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수 있습니다. 그런 말씀도 일리가 있지만 저는 지레 질려서 발을 들이지 못하는 것보다는 이렇게라도 
즐길 수 있으면 그게 장땡이라고 생각하는 쪽입니다.(커피를 좋아하시는 분 가운데는 처음에 믹스커피부터 시작해서 흥미를 끌어올려 간
 이도 분명 꽤 있을 것 같습니다.)<br />차를 만들거나 깊이 즐기시는 분 가운데는 나름 자부심과 주관을 가진 분이 
많습니다.(전문가, 고수는 다 조금씩 그런 면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렇다 보니 차를 즐김에 있어서도 격식을 갖추고 깐깐하게 
따지는 분도 있으니 그런 분과 함께 할 때는 그런 분에 맞춰 주고 평소 편하게 즐기실 때에는 자신 만의 방식으로 즐기시면 될 것 
같습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특히나 맛과 내음은 더없이 주관적이기도 하고 사람마다도 다릅니다.<br />보기를 들어, 저는 쇠주전자에 물을 끓이는 걸 싫어하는데, 쇠가 (물이 끓는 정도를 넘어서서)좀 달궈지면 쇳내가 나게 됩니다.(마찬가지로 에스프레소를 종이잔 같은 데 담는 것도 싫어 합니다.)<br />그런데 어떤 분은 이걸 잘 느끼지 못하고 ‘까다롭게 군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br />혹은 식기를 세제로 씻고 나서 세제 내음이 나는 것을 못 느끼는 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br />벗들과 (꽃)나들이를 하다 보면 단내를 먼저 맡는 사람도 있고 구수한 내를 먼저 맡는 사람도 있고 내음에 무딘 사람도 있습니다.<br />또다른 경우로는 심지어 화학 농약 같은 걸 쓴 먹거리를 귀신같이 알아채는 분도 있습니다.(맛으로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먹고 나면 몸에 바로 반응이 온다고 합니다.)<br />이것 역시 사람에 따른 차이이며, 이 사람이 겪은 것을 저 사람도 똑같이 겪는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따라서 제가 쓴 이 글이 부디 여러분에게 차에 대한 선입견, 고정 관념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차를 접하게 된 것이 또다른 여유와 포용성을 가지게 되는 계기 또한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br />아울러 차에 대해 앎이 깊은 분들께는 거칠고 얕은 제 글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봐 주시기를 바랍니다.<br />관심 가지고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고맙습니다.(글도 다 썼으니 저는 에스프레소나 한 방 내리러…. 푸하하하… ^O^)</p><hr class="wp-block-separator has-alpha-channel-opacity" />
<p>---         ---</p><p><a href="https://2dreamy.wordpress.com/2025/02/19/a-primer-about-green-tea/" rel="nofollow">이 글</a>의 권리는 <a href="https://2dreamy.wordpress.com/" rel="nofollow">깨몽(adreamy)</a>에게 있으며, <a href="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4.0/" rel="nofollow">CC BY 4.0</a> <img width="12" src="https://mirrors.creativecommons.org/presskit/icons/cc.svg" alt="" /><img width="12" src="https://mirrors.creativecommons.org/presskit/icons/by.svg" alt="" />을 지키시면 자유로이 쓰실 수 있습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br /></p><br />]]></description>
<dc:creator>깨몽</dc:creator>
<dc:date>2026-08-16T10:37:04+09:00</dc:date>
</item>


<item>
<title>조선시대 6-9세 양반가 꼬마들의 시작품</title>
<link>https://www.maru.or.kr/humanities/593</link>
<description><![CDATA[청어<br/><br/>동해 바다 바닷물을<br/>다 들어 마셨나<br/>몸이 온통<br/>새파란 비늘로 덮였네<br/><br/>무지개<br/><br/>붉고 푸른 비단 한폭<br/>직녀님이 직접 짜서 <br/>견우 옷을 지으려고<br/>비갠 하늘에 걸어놨다<br/><br/>키 작은 소나무<br/><br/>작고 작은 소나무 한 그루<br/>탑 저편에 서 있어요<br/>탑은 크고 소나무는 작아<br/>키가 똑같지 않아요<br/>소나무는 키가 작다고 <br/>지금 일랑 말하지 말아요<br/>소나무가 크게 자란 날이 되면<br/>탑이 도리어 작을테니까<br/><br/>[이 게시물은 마루밑다락방님에 의해 2026-02-05 10:28:05 나도 작가에서 이동 됨]]]></description>
<dc:creator>마루밑다락방</dc:creator>
<dc:date>2016-06-23T14:59:48+09:00</dc:date>
</item>


<item>
<title>내 이름은 자가주</title>
<link>https://www.maru.or.kr/humanities/592</link>
<description><![CDATA[<div class="se_component_wrap sect_dsc __se_component_area"><div class="se_component se_paragraph default"><div class="se_sectionArea"><div class="se_editArea"><div class="se_viewArea se_ff_nanumgothic"><div class="se_editView"><div class="se_textView se_fs_T3"><p class="se_textarea" style="text-align:left;"><span>내가 읽은 그림책<br /></span><span><br /></span></p></div></div></div></div></div></div><div class="se_component se_image default"><div class="se_sectionArea se_align-left"><div class="se_editArea"><div class="se_viewArea" style="max-width:150px;"><a class="se_mediaArea __se_image_link __se_link" href="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isking1&amp;logNo=220741435143&amp;categoryNo=0&amp;parentCategoryNo=0&amp;viewDate=&amp;currentPage=1&amp;postListTopCurrentPage=1&amp;from=menu&amp;userTopListOpen=true&amp;userTopListCount=5&amp;userTopListManageOpen=false&amp;userTopListCurrentPage=1#" rel="nofollow"><img width="150" height="198" class="se_mediaImage __se_img_el" alt="" src="http://post.phinf.naver.net/20160620_38/1466420465508JOQnd_JPEG/3056758s.jpg?type=w1200" />                 </a><div class="se_editView"><div class="se_textView se_mediaCaption"><span class="se_textarea">퀜틴 블레이크 글, 그림</span></div></div></div>         </div></div></div><div class="se_component se_paragraph default"><div class="se_sectionArea"><div class="se_editArea"><div class="se_viewArea se_ff_nanumgothic"><div class="se_editView"><div class="se_textView se_fs_T3"><p class="se_textarea" style="text-align:left;"><a class="se_mediaArea __se_image_link __se_link" href="http://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4502993&amp;memberNo=29938#" rel="nofollow"><u>                 </u></a><span class="se_textarea"></span><br /><span>우선,  '내 이름은 자가주'라는 이 책은 인간의 성장을 동물에 비유하여 표현한 책이다.<br /></span><span>이 책에서는 행복한 두 부부와 갑자기 소포로 배달된 분홍빛 생물인 자가주, 총 세명의 주인공으로 표현되고 있다.<br /></span><span>자가주가 나타나기 전에는 날마다 두 사람은 모형비행기도 만들고, 청소도 하고, 디저트도 먹으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br /></span><span>그런데 어느 날 이상한 소포 꾸러미가 배달이 되었는데, 그 소포 상자 안에는 분홍빛 생물이 들어 있었다.<br /></span><span>그리고 쪽지가 하나 있었는데, 그 쪽지에는 '내 이름은 자가주에요.'라며 적혀 있었다.<br /></span><span>아기는 두 부부를 정말 행복하고 사랑스럽게 만들었는데, 어느 날은....<br /></span><span><br /></span><span>자가주가 새끼 독수리로 변해있질 않나...<br /></span><span>새끼 코끼리로 변해있지를 않나...<br /></span><span>멧돼지로 변해있지를 않나...<br /></span><span>또 어느 날은 못된 용으로 변해, 온집을 태우질 않나...<br /></span><span>박쥐.. 또 다시 멧돼지로 변해있고 심지어는 털복숭이로 변해있기까지 했다!<br /></span><span><br /></span><span>털복숭이로 변해있을 즈음은 자가주는 점점 몸집이 커져갔고 두 부부는 늙어갔다.<br /></span><span><br /></span><span>그런데 어느날 아침이 되었을 때<br /></span><span>자가주는 멋진 청년으로 변해있었다.<br /></span><span><br /></span><span>먼저 여기 앉으세요. 라고 말하고...<br /></span><span>식사하시라고 말하고...<br /></span><span><br /></span><span>또.. 자가주는 예쁜 아가씨와 친해졌고<br /></span><span>두 사람은 오토바이에 관심이 많았다.<br /></span><span><br /></span><span>꽃도 좋아하고... 디저트도 함께 먹고..<br /></span><span>그리고 부모님께 찾아뵜는데....<br /></span><span><br /></span><span>부모님이 커다란 펠리컨으로 변해있지 뭐야!<br /></span><span><br /></span><span>인생은 돌고 도는거야!<br /></span><span><br /></span><span>오늘의 그림책 이야기는 여기까지!</span></p></div></div></div></div></div></div></div><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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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creator>마루밑다락방</dc:creator>
<dc:date>2016-06-20T20:13:04+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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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난 무서운 늑대라구!</title>
<link>https://www.maru.or.kr/humanities/591</link>
<description><![CDATA[<p>내가 읽은 그림책</p><p> </p><p><img width="200" height="262" class="se_mediaImage __se_img_el" alt="" src="http://postfiles10.naver.net/20160620_249/hisking1_1466402806015TExPh_JPEG/00181660.jpg?type=w773" /><u><font color="#0066cc">                 </font></u>         </p><div class="se_component se_paragraph default"><div class="se_sectionArea"><div class="se_editArea"><div class="se_viewArea se_ff_nanumgothic"><div class="se_editView"><div class="se_textView se_fs_T3"><p class="se_textarea" style="text-align:left;"><span><br /></span><span><br /></span><span>난 무서운 늑대라구! 라는 책에서 여행에 지친 늑대가 한 마을에 들어섰다.  호주머니에는 돈도 조금밖에 없는데, 배가 고프고 다리도 아팠는데,<br /></span><span><br /></span><span>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늑대가 마을 바깥에 농장에 먹을 것을 구하기로 생각했다.<br /></span><span>그리고는 농장으로 가, 울타리 뒤에 숨어 농장 안을 훔쳐보았다.<br /></span><span><br /></span><span>그런데 이것이 어찌된 일인가?<br /></span><span>돼지와 오리, 젖소가 따사로운 햇살 아래 책을 읽고 있었다.<br /></span><span><br /></span><span>늑대는 배가 고파서 헛것이 보이나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워낙에 배가 고팠던 탓인지 찬찬히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br /></span><span>늑대는 한번 숨을 크게 내쉬고는...<br /></span><span><br /></span><span>으르렁으르렁 아우우우우~! 하며 뛰쳐나갔는데<br /></span><span><br /></span><span>닭과 토끼는 날 살려라 하며 도망쳤는데 이것이 어찌된 일인가?<br /></span><span><br /></span><span>돼지와 젖소, 오리는 끄덕도 안하고, 시쓰럽다며 젖소가 투덜거리는 것 뿐이였다.<br /></span><span><br /></span><span>오리도 시큰둥하게 대답하며 늑대를 무시했다.<br /></span><span><br /></span><span>늑대는 자신이 무시무시한 늑대라며 참을수 없다며, 말했는데<br /></span><span>이들은 다른데 가서 무섭게 굴라며 책읽는데 방해하지 말라고 했다.<br /></span><span><br /></span><span>얼떨결에 늑대는 밀려나고 말았다.<br /></span><span>늑대는 교양있는 동물들이라는 말에 고개까지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br /></span><span><br /></span><span>자신도 글을 배우겠다며, 당장에 학교로 달려갔다.<br /></span><span>아이들은 늑대가 교실에 나타나자 놀랬지만, 늑대가 열심히 해서 그런지 아이들도 늑대가 익숙해졌다.<br /></span><span><br /></span><span>얼마 지나지 않고는 늑대는 일학년 일반에서 일등을 했다.<br /></span><span><br /></span><span>그리고는 본때를 보여주겠다며, 농장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어 달라가선 큰 소리로 책을 읽었다.<br /></span><span><br /></span><span>근데 말이다.<br /></span><span><br /></span><span>오리는 쳐다도 보지 않으며 한참 더 배워야겠다며 말하였다.<br /></span><span><br /></span><span>돼지와 젖소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말이다.<br /></span><span><br /></span><span>늑대는 단숨에 울타리를 뛰어넘어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다시 눈에  불을 켜고 공부했다,</span><span><br /></span><span></span><span></span><span><br /></span><span>농장의 동물들도 놀랄 것이라는 생각으로 ....<br /></span><span><br /></span><span>그리고는 다시늑대는 울타리 문을 점잖게 두들겼고 성큼 성큼 들어선 늑대는 다짜고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br /></span><span><br /></span><span>오리가 딱 잘라 말하며 그만하라고 했다. <br /></span><span>그러나 돼지는 너 많이 좋아졌다며 웃으며 말했다.<br /></span><span><br /></span><span>하지만 늑대는 꼬리를 내릴 수 밖에 없었다.<br /></span><span><br /></span><span>늑대는 몇푼 안남은 돈을 세어보며 책방에 가서 책 한권을 샀는데,<br /></span><span>처음으로 가져보는 늑대만의 책이였다. 그 책을 여러번 정성껏 읽었다<br /></span><span><br /></span><span>잘 읽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늑대는 다시금 울타리 앞에서 종을 울려 <br /></span><span>농장을 들렸다.<br /></span><span><br /></span><span>들어가서는 풀밭에 누워 쉬며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br /></span><span><br /></span><span>돼지와 오리, 젖소가 모여들었다, 모두들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br /></span><span>이때는 처음으로 늑대가 정말 재미있게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br /></span><span><br /></span><span>하나의 이야기가 끝날때는 동물들은 다음 이야기를 읽어달라며 졸랐다.<br /></span><span><br /></span><span>늑대의 이야기는 멈추지 않았고<br /></span><span>마치 늑대는 램프의 요정이 된듯한 느낌이였다.<br /></span><span><br /></span><span>정말 재미있다!, 최고의 이야기꾼이야! 하며 오리와 돼지가 칭찬했다.<br /></span><span>이때 젖소가 우리 소풍 갈 건데 같이 갈래? 하며 먼저 제안했다.<br /></span><span><br /></span><span>같이 소풍을 가서 서로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며 즐거운 오후를 보냈다.<br /></span><span>우리 모두가 최고의 이야기꾼이 될거야 하며 젖소가 흥에 겨워 말했다.<br /></span><span><br /></span><span>늑대는 풀밭에 누워 기지개를 피며 <br /></span><span>이렇게 좋은 친구들을 사귀어서 몹시 행복했다.<br /></span><span><br /></span><span>오늘의 이야기 끝!</span> </p></div></div></div></div></div></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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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creator>마루밑다락방</dc:creator>
<dc:date>2016-06-20T20:12:41+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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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까마귀 소년</title>
<link>https://www.maru.or.kr/humanities/590</link>
<description><![CDATA[<img width="185" height="248" class="se_mediaImage __se_img_el" alt="" src="http://www.maru.or.kr/data/editor/1605/828bd68b369ffe1e6b503b587382cb35_1464600764_659.PNG" /><u><font color="#0066cc">                 </font></u>         <div class="se_component se_paragraph default"><div class="se_sectionArea"><div class="se_editArea"><div class="se_viewArea se_ff_nanumgothic"><div class="se_editView"><div class="se_textView se_fs_T3"><p class="se_textarea" style="text-align:left;"> <br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은 책 입니다. 일단, 제가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로는 우선 우연한 기회에 담임 선생님께서 그림책을 읽어보라고 제안해 주셨고, 이로 통해 그림책이 어린아이들의 책이라기 보다는 모두가 읽어도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 더 많은 그림책들을 읽고 싶어서 빌린 책 입니다.<br />우선은 까마귀 소년이라는 책은 야시마 타로라는 일본인 작가가 쓴 책입니다. 어느 산골 마을의 작은 초등학교에 새로 부임해 온 열정적인 선생님과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글 입니다.<br />줄거리를 간단히 요약해 보자면, "어느 산골 마을의 학교에 아이 하나가 없어졌습니다. 없어진 아이를 아는 사람이라곤 어느 한명도 없었는데, 학교 마룻바닥 밑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를 사람들은 "땅꼬마"라고 불렀습니다. 이 아이는 선생님을 아주 무서워했고, 이어 아이들도 무서워했으며,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라곤 어떠한 아무것도 없었다.  공부할때도, 놀때도 어딜 놀러가도 늘 따돌림이 일상이였고 외톨이였다. <br />그런데, 이 아이는 사팔뜨기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아이는 시간을 보내며 심심풀이할 방법들을 하나 둘 궁리해 냈고, 몇 시간 동안 뚫어지게 천장만 쳐다보거나, 책상의 나뭇결도 골똘히 살펴보곤 했다. 친구의 옷 어깨 부분의 꿰맨 곳을 찾아내어 꼼꼼히 살피기도 하기도 말이다.<br />또한 이 아이는 어떤 누구가 자신을 바보 멍청이라 부를지언정, 날마다 타박타박 걸어서 학교에 왔고, 비가 오거나 태풍이 부는 날에도 한결같이 학교에 등교했다. 그러다가, 6학년 졸업반이 되고, 이듬해 이소베 선생님이라는 분이 새로 오셨는데 늘 웃음이 끝이지 않는 다정한 분이였다. <br />그 선생님은 늘 학교 뒷산에 자주 놀러갔는데, 이때 이 아이가 머루가 열리는 곳은 어디며 곳곳마다 자세히 지역을 잘 알자 선생님은 이를 알아보고 무척 좋아했다.  <br />특히 꽃밭을 만들때 꽃이란 꽃은 다 아니까 무척이나 선생님이 놀랐다. <br />또, 이 아이가 그린 그림과 삐뚤삐뚤한 붓글씨도 선생님은 좋아하셨고, 아무도 없을 무렵, 이 아이와 자주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br />마지막, 학예회 무대에 설때 쯤, 아이들은 모두 저게 누구야 하며 저 멍청이가 무얼 하러 올라갔지 생각했는데, 갑자기 어떤 동물 울음소리를 흉내냈다. 그러자 저 까마귀 울음소리 아니야? 하며 웅성거렸다. 아이는 다양한 까마귀 울음소리를 냈다. 엄마 까마귀 소리, 아빠 까마귀 소리, 일이 났을때 우는 까마귀 소리, 행복할때 우는 까마귀 소리······.<br />그러면서 이 아이네 식구들이 사는 멀고 외딴 곳이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에 또렷하게 떠올랐으며, 이때 선생님이 일어나 설명을 했다. 이 아이가 어떻게 까마귀 울음소리를 배우게 됐는지.<br />그러자, 학예회에 참여한 아이들은 모두 얼었고 6년이라는 긴 세월을 이 아이를 얼마나 못살게 굴었는지 생각했다.<br />졸업한 이후에, 이 아이를 '땅꼬마'가 아닌 '까마둥이'라 불렀다. </p></div></div></div></div></div></div><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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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creator>마루밑다락방</dc:creator>
<dc:date>2016-06-20T20:12:11+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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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최북 풍설야귀인도</title>
<link>https://www.maru.or.kr/humanities/589</link>
<description><![CDATA[.<br/><br/>[이 게시물은 마루밑다락방님에 의해 2026-02-05 10:28:05 나도 작가에서 이동 됨]]]></description>
<dc:creator>마루밑다락방</dc:creator>
<dc:date>2016-06-15T10:10:04+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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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방문객 : 정현종</title>
<link>https://www.maru.or.kr/humanities/588</link>
<description><![CDATA[사람이 온다는 건<br/>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br/>그는<br/>그의 과거와 현재와<br/>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br/>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br/>부서지기 쉬운<br/>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br/>마음이 오는 것이다-그 갈피를<br/>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br/>마음,<br/>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br/>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br/><br/>[이 게시물은 마루밑다락방님에 의해 2026-02-05 10:27:35 나도 작가에서 이동 됨]]]></description>
<dc:creator>마루밑다락방</dc:creator>
<dc:date>2021-02-21T00:02:10+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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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플라톤 크리톤</title>
<link>https://www.maru.or.kr/humanities/587</link>
<description><![CDATA[<p style="font-family:NanumGothic, '나눔고딕', NanumGothic, '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 AppleGothic;margin-bottom:10px;color:rgb(51,51,51);font-size:14px;background-color:rgb(255,255,255);"><span>플라톤의 크리톤 작품의 배경은 크리톤이 소크라테스의 접견을 간 것으로 묘사된다. 작품을 보건대, 아테네 사법 체계가 사형수의 접견에 관해서는 엄격한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소크라테스가 크리톤이 찾아온 것을 보고 의아해 하기 때문이다(43a). 변명에서 묘사한 것처럼 소크라테스가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를 받고 사형을 앞두고 있을 때 크리톤의 탈옥 권유를 받았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크리톤의 탈옥 권유에 대해서 완강히 거절하며 몇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번째는 정의롭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은 옳은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소크라테스 자신은 평생을 사람들에게 덕에 관한 일을 설파하고 다니며 사람들을 설득해왔는데, 자신이 탈옥을 하는 행위 자체가 정의에 위반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두번째는 법과 국가에 대한 존중을 들었다. 자신은 일평생 몇 번의 일을 빼고(그 몇 번은 전쟁을 위해 아테네 밖을 떠날 때와 이스트모스로 떠난 때), 아테네를 떠난 적이 없었고, 이 사회가 정한 법을 지키며 살아왔기에 비록 법이 자신에게 불리한 일(소크라테스의 목숨을 거두는 일)을 하더라도 그 법을 어길 수 없다고 말한다. 세번째는 다수의 의견보다 이성적으로 옳은 일을 들었다. 여론의 비난이 두려워 탈옥을 하는 것은 옳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마다하지 않았다.</span></p>]]></description>
<dc:creator>마루밑다락방</dc:creator>
<dc:date>2024-10-06T11:59:28+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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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까마귀 소년 (야시마 타로 글, 그림)</title>
<link>https://www.maru.or.kr/humanities/586</link>
<description><![CDATA[<p><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83527" rel="nofollow"><img title="828bd68b369ffe1e6b503b587382cb35_1464600764_659.PNG" src="http://www.maru.or.kr/data/editor/1605/828bd68b369ffe1e6b503b587382cb35_1464600764_659.PNG" alt="828bd68b369ffe1e6b503b587382cb35_1464600764_659.PNG" /></a></p><p> </p><p>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은 책 입니다. 일단, 제가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로는 우선 우연한 기회에 담임 선생님께서 그림책을 읽어보라고 제안해 주셨고, 이로 통해 그림책이 어린아이들의 책이라기 보다는 모두가 읽어도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 더 많은 그림책들을 읽고 싶어서 빌린 책 입니다.</p><p>우선은 까마귀 소년이라는 책은 야시마 타로라는 일본인 작가가 쓴 책입니다. 어느 산골 마을의 작은 초등학교에 새로 부임해 온 열정적인 선생님과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글 입니다.</p><p>줄거리를 간단히 요약해 보자면, "어느 산골 마을의 학교에 아이 하나가 없어졌습니다. 없어진 아이를 아는 사람이라곤 어느 한명도 없었는데, 학교 마룻바닥 밑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를 사람들은 "땅꼬마"라고 불렀습니다. 이 아이는 선생님을 아주 무서워했고, 이어 아이들도 무서워했으며,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라곤 어떠한 아무것도 없었다.  공부할때도, 놀때도 어딜 놀러가도 늘 따돌림이 일상이였고 외톨이였다. </p><p>그런데, 이 아이는 사팔뜨기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아이는 시간을 보내며 심심풀이할 방법들을 하나 둘 궁리해 냈고, 몇 시간 동안 뚫어지게 천장만 쳐다보거나, 책상의 나뭇결도 골똘히 살펴보곤 했다. 친구의 옷 어깨 부분의 꿰맨 곳을 찾아내어 꼼꼼히 살피기도 하기도 말이다.</p><p>또한 이 아이는 어떤 누구가 자신을 바보 멍청이라 부를지언정, 날마다 타박타박 걸어서 학교에 왔고, 비가 오거나 태풍이 부는 날에도 한결같이 학교에 등교했다. 그러다가, 6학년 졸업반이 되고, 이듬해 이소베 선생님이라는 분이 새로 오셨는데 늘 웃음이 끝이지 않는 다정한 분이였다. </p><p>그 선생님은 늘 학교 뒷산에 자주 놀러갔는데, 이때 이 아이가 머루가 열리는 곳은 어디며 곳곳마다 자세히 지역을 잘 알자 선생님은 이를 알아보고 무척 좋아했다.  </p><p>특히 꽃밭을 만들때 꽃이란 꽃은 다 아니까 무척이나 선생님이 놀랐다. </p><p>또, 이 아이가 그린 그림과 삐뚤삐뚤한 붓글씨도 선생님은 좋아하셨고, 아무도 없을 무렵, 이 아이와 자주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p><p>마지막, 학예회 무대에 설때 쯤, 아이들은 모두 저게 누구야 하며 저 멍청이가 무얼 하러 올라갔지 생각했는데, 갑자기 어떤 동물 울음소리를 흉내냈다. 그러자 저 까마귀 울음소리 아니야? 하며 웅성거렸다. 아이는 다양한 까마귀 울음소리를 냈다. 엄마 까마귀 소리, 아빠 까마귀 소리, 일이 났을때 우는 까마귀 소리, 행복할때 우는 까마귀 소리······.</p><p>그러면서 이 아이네 식구들이 사는 멀고 외딴 곳이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에 또렷하게 떠올랐으며, 이때 선생님이 일어나 설명을 했다. 이 아이가 어떻게 까마귀 울음소리를 배우게 됐는지.</p><p>그러자, 학예회에 참여한 아이들은 모두 얼었고 6년이라는 긴 세월을 이 아이를 얼마나 못살게 굴었는지 생각했다.</p><p>졸업한 이후에, 이 아이를 '땅꼬마'가 아닌 '까마둥이'라 불렀다. </p>]]></description>
<dc:creator>마루밑다락방</dc:creator>
<dc:date>2016-05-30T18:47:50+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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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대한민국 부모는 왜 불안할까요?</title>
<link>https://www.maru.or.kr/humanities/585</link>
<description><![CDATA[&#034;도대체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겠어요. <br/>아이가 중학생이 된 후부터 여태까지 알던 내 아이가 아닌 것 같아요. <br/>집에 들어오면 입을 꾹 다물고, 방에 틀어박혀 안 나오기 일쑤고<br/>어릴 때는 그렇게 순하고 착했는데.... <br/>제가 잘못 키운 것만 같아 억울하고 너무 속상해요.&#034;<br/><br/>우리는 정말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 노력해왔습니다. <br/>낳기 전부터 온갖 태교법과 육아 관련 도서를 독파했고,<br/>외출이 어려운 갓난아기 때는 육아 커뮤니티에서 좋다는 정보를 모두 모았습니다.<br/>혹시라도 다른 아이들보다 뒤떨어질까 싶어 외국어도 가르치고, <br/>감수성을 키워줄 예체능 학원은 물론 교과를 보충해줄 학원도 보냈습니다. <br/>경제적 부담이 되었지만, 아이를 위한 투자라 생각했습니다.<br/><br/>그래도 여전히 걱정됩니다.<br/>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더 어려워질 텐데 따라갈 수 있을까?<br/>좋은 대학에 갈 수 있을까? 대학을 나와도, 취업을 제때 할 수 있을까?<br/>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br/><br/>&#034;초등학교 4학년 성적이 인생을 좌우한다.&#034;는 말을 수시로 듣는 부모들은 <br/>한 번 실패하면 다시 일어설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우리 사회 속에서<br/>자녀가 실패의 쓰리고 아픈 경험을 느끼지 않도록 <br/>아이의 모든 것을 미리 계획하고 구상한 후 통제할 수밖에 없습니다.<br/>아이가 자랄수록 부모의 교육 프로젝트 매니저 역할은 더 커집니다.<br/><br/>– EBS 다큐프라임 특별기획 &#039;가족 쇼크&#039; 중에서 –<br/><br/><br/><br/>하지만 아이가 커 갈수록 아이와의 관계는 점점 더 멀어져가고<br/>결국 우리 가정의 대화와 웃음소리는 점점 사라져 갑니다.<br/>지금의 관계가 어쩔 수 없는 선택일까요?<br/>혹시 다른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요?<br/><br/>함께 고민을 나누고, 해결법을 찾고 싶은 건<br/>어느 부모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br/>자녀와의 관계를 되돌리기 위한<br/>이젠 부모의 관계 연습이 필요할 때입니다.]]></description>
<dc:creator>마루밑다락방</dc:creator>
<dc:date>2016-03-25T07:55:58+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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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아우구스티누스 (Augustine) 2</title>
<link>https://www.maru.or.kr/humanities/584</link>
<description><![CDATA[<p><span style="line-height:1.5;">시골에서 수도원을 운영하며 나름대로 보람찬 삶을 살고 있던 그는 수행자들을 더 모집하기 위해 히포시를 방문하게 되었는데,</span></p><p><span style="line-height:1.5;">그동안 쌓인 명성이 상당했던지 졸지에 히포시의 사제로 발탁되었다.​</span></p><p> </p><p> </p>]]></description>
<dc:creator>아온</dc:creator>
<dc:date>2016-02-22T17:49:46+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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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아우구스티누스 (Augustine) 1</title>
<link>https://www.maru.or.kr/humanities/583</link>
<description><![CDATA[<p><span style="font-family:'times new roman';">​</span><span style="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아우구스티누스는 작은 아우구스투스라는 뜻이고 </span><span style="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아우구스투스는 카이사르의 후계자이자 로마의 초대 황제라고 인정 받는 바로 그 사람이므로 아우구스티누스는 </span><span style="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지극히</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 로마적인 이름이었다.</span></p><p><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그러나 그는 </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퇴락해 가는 로마의 정신이나 이상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어떤 면에서는 반로마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 기독교에 헌신하였다.</span></p><p><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당시 시대의 조류가 그러했을 것이다.</span></p><p><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어찌되었건 이러한 선택 덕분에 그는</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 이름에 부끄럽지 않을 만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span></p><p><span style="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 </span></p><p><span style="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아우구스티누스는 현재 북아프리카 알제리 지역인 타가스테라는 소도시에서 태어났는데,</span></p><p><span style="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이 도시의 관리이며 이교도였던 아버지는 </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매우 바빴는지 </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기독교도인 어머니가 </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어린 시절 그의 교육을</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 전담하였다 한다.</span></p><p><span style="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그러나 어머니의 지적 수준이 영리한 어린 아들을 만족시킬 정도는 아니었는지 </span><span style="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이 당시에는 </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기독교에서 별 다른 감명을 받지 못했다 한다.</span></p><p><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아들에게 정치적인 이름을 부여할 정도로 현실적이었던</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 아버지는  </span><span style="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3.3333px;line-height:20px;">사춘기의 정점에 도달한</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 아들을</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 카르타고의 대학으로 유학 보내었는데,</span></p><p><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이는 당시 잘 나가던 수사학을 배워 입신양명하라는 전혀 기독교적이지 않은 의도였다.</span></p><p><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그런데 대도시란 자고로 자극적인 것들로 넘쳐나는 곳이고 사춘기는 감수성이 가장 예민한 시기이니,</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span></p><p><span style="line-height:1.5;"></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한적한 소도시에서</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다가 </span></p><p><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고등학교에 입학할 나이인 17세에 </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갑자기 복잡한 대도시로 생활의 근거를 옮기게 된 소년에게 </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아무 일이 없었다면 그게 더 이상했을 것이다.</span></p><p><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화려한 도시에서 </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아우구스티누스는</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 마음껏 청춘을 즐겼고 급기야는 3년 만에 한 처녀와 동거에 들어갔는데...</span></p><p><span style="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이런 꼴을 그냥 두고 볼 부모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span></p><p><span style="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아들을 유학 보낸 지 1년 만에 남편이 사망하여 오매불망 아들이 출세하여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기독교도 어머니는 </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하도 기가막혀 모자의 연을 끊는 초강수를 두며 펄펄 뛰었으나. </span></p><p><span style="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이미 쾌락을 알아버린 젊은이에게 어머니의 눈물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였고.</span></p><p><span style="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그는 계속 동거생활을 이어 가는 한편 </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기독교는 미신이라 치부하고 선악 이분법을 사용하는 나름 논리적인 마니교에 투신하였다 한다.</span></p><p><span style="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자식이 아니라 웬수였을 것이다.</span></p><p><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여기까지만 보면 철없는 부잣집 도련님의 방탕한 유학생활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span></p><p><span style="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그것만은 아니었는지 이 머리 좋은 청년은 이미 키케로 철학의 정수를 받아들여 삶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 상태였으며 </span></p><p><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공부도 열심히 하였다 한다.</span></p><p><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 </span></p><p><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이 시절 그는 악에 대해 민감하여 선의 본질, 악의 근원 등과 같은 골 때리는 주제들과 씨름을 하였다 하는데</span></p><p><span style="line-height:1.5;"></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이는 동서양을 막론하는 참으로 유서 깊고 생명력이 질긴 철학 상의 난제로서</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젊은이들이 지금도 많고, 앞으로도 많을 것이다.</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span></p><p><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어머니의 지원도 끊긴 상태에서 </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처자식 먹여 살리랴 공부하랴 바빴을 아우구스티누스는, </span></p><p><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이교든 기독교든</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 </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신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주장하는데 선으로 똘똘 뭉친 </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신이 만들어 낸 이 세상은 왜 이리 개판인가`</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 하는</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 풀리지 않는 화두를 언제까지나 물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span></p><p><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선악 이분법을 사용하여 나름대로 논리적인 답을 주는 마니교의 열열한 신자가 되었고,</span></p><p><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우여곡절이 많았겠지만 마니교도들의 도움과 좋은 머리 덕에 공부를 무사히 마치고 금의 환향하여 고향에 수사학을 가르치는 학교를 세울 수 있었다.</span></p><p><span style="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그러나 세상 경험 부족한 젊은이의 첫 사업은 쉽지 않았을 것이고, 결국 얼마 안되어 접을 수밖에 없었다 한다.</span></p><p><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별 수 없이 카르타고로 귀환하여 수사학을 가르치며 생활하던 아우구스티누스는</span></p><p><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그동안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던 마니교도들과의 관계도 예전만 못하였는지  다시 </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실존적 고뇌에 빠져들었고, </span></p><p><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결국 10년 가까운 마니교도의 생활을 청산하며 신플라톤주의자가 되었다 한다.</span></p><p><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span></p><p><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신플라톤주의는 </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궁극의 실체이자 만물의 존재원리로서 </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플라톤의 이데아가 압축된</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 꼴인 </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일자을 주장하는데,  </span></p><p><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이 일자는 유일신과 쉽게 대치가 가능하였다.</span></p><p><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따라서 당시 변변한 철학이 없던 기독교는 이를 차용하여 교리를 설명하는데 열심히 써먹고 있는 중 이었으므로</span></p><p><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기존 가치의 부정을 통해 정체성을 확립해 가던 당시 기독교들에게 신플라톤주의는 다른 철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친화력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span></p><p><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그리고 이러한 신플라톤주의 철학의 특성 덕분에 아우구스티누스의 기독교 입성까지는 이제 한 걸음 남은 셈이 되었다. </span></p><p><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 </span></p><p><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마니교와 결별하며 수사학에 철학까지 겸비하게 된 아우구스티누스는 </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카르타고를 떠나 아우구스투스의 도시 로마에서 그의 운명을 시험하였는데,</span></p><p><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학생들이 수업료를 제대로 내지 않아 또 한 번 망하였였다 한다.</span></p><p><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이에 실망한 그는 </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당시 서방 최대의 성세를 자랑하던 밀라노로 이주하였고</span></p><p><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배운 도둑질이 그것 밖에 없어서인지 애들에게 수사학과 철학을 가르치며 생활한 모양인데,</span></p><p><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당시 밀라노에는 황제를 무릎 꿇린 것으로 유명한 교부 암브로시우스가 주교로 있었다.</span></p><p><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누군가를 가르친다는 유사 직종에 종사하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암브로시우스의 성공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열심히 설교를 들으러 다녔는데,</span></p><p><span style="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처음의 의도와는 달리 </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가랑비에 옷 젖는 것처럼 암브로시우스의 강론의 주제인 기독교 사상이 그의 내면을 흔들어 놓았다.</span></p><p><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마음의 안식을 찾지 못하던 그는 어느날 갑자기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하는데,</span></p><p><span style="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바울처럼 길거리에서 직접 이름이 불린 것은 아니고 웬 애가 뭔가를 읽으라는 명령이었다 한다.</span></p><p><span style="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그는 명령대로 책을 읽었는데 그 책이 로마서였고 </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펼쳐진 장에는 마치 그의 젊은 날을 질책하는 듯한 내용이 씌어져 있었다 한다.</span></p><p><span style="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이에 크게 깨달음을 얻은 그는 바로 </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암브로시우스에게 세례를 받고 열렬한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하는데</span></p><p><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이때 그의 나이가 32세였다.</span></p><p><span style="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아우구스투스는 마음의 안식을 얻고 그의 어머니는 만세를 불렀겠지만,</span></p><p><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10대에 만나 애 낳고 살면서 거듭된 사업실패를 비롯한 그 간의 인생 유전을 함께 겪으며 15년을 동고동락했던 그의 아내는 </span></p><p><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졸지에 정욕과 방탕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span></p><p><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금욕과 자발적 고행을 주사상으로 내세우는 당시 기독교의 열렬한 추종자가 된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내를 소 닭 보듯이 대했을 것이고.</span></p><p><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영문도 모르고 사탄의 주구 내지 악의 근원이 되어 버린 아직 젊은 그의 아내는 그러한 대접을 견디기 힘들었는지 새 인생을 찾아 떠났다 한다.</span></p><p><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들었던 그의 아들의 반응이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그리 우호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span></p><p><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그러거나 말거나 아우구스티누스는 이제 기독교인으로서 새로운 인생을 살기 위하여,</span></p><p><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세상 대부분의 어머니들처럼 절교 선언 이후에도 끊임없이 아들의 인생에 개입했던 늙은 어머니와 </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부모의 이혼으로 괴로워했을 사춘기 아들을 데리고 </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아프리카로 돌아가게 되었는데</span><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span></p><p><span style="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아들의 개종으로 성령이 충만했을 어머니는 체력이 따라주지 않았는지 여행 도중 사망하였고</span></p><p><span style="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아버지와 동행해서 수도회에 참여했던 아들은 풍토가 안 맞았는지 아니면 심화를 이기지 못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span></p><p><span style="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17살의 어린 나이로 사망하고 말았다.</span></p><p><span style="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어머니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잇따른 죽음이 얼마나 그를 슬프게했는 지는 알 수 없으나 </span></p><p><span style="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어찌 되었건 속세의 인연이 모두 정리되어 홀가분해진 그는 수도회의 운영에 전력을 다하였고 날로 번창하였다 한다.</span></p><p><span style="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 </span></p><p><span style="line-height:1.5;font-family:'times new roman';font-size:10pt;"> </span></p>]]></description>
<dc:creator>아온</dc:creator>
<dc:date>2016-01-21T15:20:25+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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