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고려사 분류

거란의 2차 침입: 강조의 몰락

컨텐츠 정보

  • 5,159 조회
  • 0 추천
  • 0 비추천
  • 목록

본문

101011월 거란의 성종이 기세도 등등하게 압록강을 건넜다.

말 타고 활 쏠 줄 아는 놈들은 거의 다 끌고 왔는지, 거란에서 동원한 인원만 40만, 거기에 원한에 사무친 여진의 병력이 추가 되었다 한다.

하늘을 대신하여 흐트러진 천하의 공도를 바로잡는 거창한​ 무대의 막이 오른 것인데...

이 무대의 고려쪽 첫 등장인물인 양 규는 거란의 하늘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대군이 도착하기만 해도 천하가 앙복할 것이라 기대해 마지 않았을 성종은 감히 천군을 몰라보는 소국의 촌뜨기가 어이없고 답답했을 것이나,

어리석은 백성에게 깨우침을 주는 것도 천자의 도리...라 생각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지만,​

양 규에게 천하의 넓음과 천자의 위엄을 보여주기로 결심하고, 직접 대군을 휘몰아 공격을 퍼부었다.

​그런데....흥화진은 난공불락의 강동6주라는 명성에 걸맞게 7주야가 지나도록 요지부동이었고,

천명을 받은 대국의 천자는 첫 싸움부터 한 줌도 안 돼 보이는 요새 앞에서 툭탁거리는 한심한 신세가 되었다.

이 꼴로 세월만 보내다가는 천자의 위엄이고 나발이고 다 물 건너간 형국이 되기 십상이므로

처해진 성종은 무로대에 20만을 남겨 무엄한 홍화진을 고립시킨 후고려의 주력이 머무르고 있는 통주로 남하하였다.

 

당시 통주에는 독재자 강 조가 고려 전역에서 긁어모은 30만 대병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20만으로 추정되는 거란군이 몰려들자, 성을 나와,  진을 펼쳐 대적하였다.

병력 수도 더 많고, 전장을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었으므로 나름 타당한 결정이라 우길 수 있었고,

초반전에는 대 기병 장비와 지형을 적절히 이용한 교과서적인 진이 위력을 발휘하여 제갈 공명처럼 승리할 수 있었으므로,

강조를 비롯한 고려군 수뇌부는 적의 전투력이 소문보다  대단하지 않은 것으로 착각하였고, 조조의 팔문금쇄진을 능가하는 자신들의 위대한 진을 이용하여 적을 궤멸시킬 꿈에 부풀었으나,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거란의 파상 공세는 야전의 경험이 별로 없던 고려군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강력한 것이었다.

결국, 기병의 돌파에 이은 후미 차단, 그리고 각개격파라는 고색창연한 수법에 알면서도 당하고 말았는데,

설상가상으로, 장기를 두며 여유를 부리던 강 조를 위시해 수뇌부 전원이 포로가 되는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지는 바람에,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기병들에게 포위된 고려 병사들은 자기 목숨은 지가 알아서 챙겨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통주성으로 가는 퇴로는 이미 차단되었으므로, 곽주를 향해 열린 유일한 탈출로를 이용하여 도망치기 시작했는데,

무질서하게 패주하는 보병은 기병의 손쉬운 먹이에 불과하였고.....

완함령에서​ 곽주군에게 구원될 때까지 3만이 넘는 고려군이 학살당하고 말았다.

반면 통주성은 눈앞에서 30만 대군이 궤멸되는 것을 보고 아연실색하였으나,

고려군의 등뼈라 할 수 있는 중랑장들이 궐기하여 주민들과 함께 성을 지켜내는 쾌거를 이루었다.

고려로서는 기적 같은 일이었으나, 성종은 기가 찼을 것이다.

30만이나 되는 주력을 박살냈는데도, 떨어질 생각을 안 하는 통주성을 바라보며 분통을 터뜨리던 대국의 천자는 별 수 없이 고려의 패잔병들이 도망친 곽주로 말머리를 돌렸다.

 

홍화진에 이어 통주까지 패스할 수밖에 없었던 거란은, 체면도 체면이지만, 보급문제가 심각해졌다.

거란군은 전원 기병이고, 보급을 담당하는 부대가 따로 있어서, 보급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롭다고는 하지만 그 또한 한계가 있었고,

워낙 대병이다 보니 계속 길바닥에서 보급을 해결하기도 어려웠다.

이러한 속사정이 있는 거란은 곽주성을 향해 사력을 다해 달려들었고, 이들의 사나운 기세에  방어사 나리는 전의를 잃고 한밤중에 도망가버리는 작태를 연출하였으나,

완함령의 영웅 신영한을 비롯한 나머지 무장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하여 고려 무인의 기개를 보였다.

이들의 눈물겨운 분전으로 통주성에 이은 또 한 번의 기적이 이루어지는가 했으나, 전력의 현격한 열세는 극복하기 힘들었고,

결국 대부분의 무장들이 전사하면서, 강동6주의 요새 중 유일하게 함락되는 비운을 맛보고야 말았다.

어쨌든 고려에 침입한 이래 처음으로 근거지를 마련하게 된 거란의 하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고,

서경을 향해 진군할 수 있게 되었다.

 

서경.

고구려의 옛 수도이자 현 북한의 수도,

참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하는 땅인데...

당시에도 북방 최대의 도시이자 군사적 거점으로서, 다물의 비원이 깃든 고려의 제 2 수도였다.

이렇게 서경이 지닌 군사적, 정치적 의미가 막중하였으므로,

고려 조정은 시간을 끌기 위해 거짓 항복을 하는 한편 동북면 주둔군을 투입하기로 결정하였고,

명령을 받은 탁사정과 지채문은 즉시 서경으로 이동하였다.

한편 서경의 수뇌부는 곽주가 함락된지 3일 만에 거란이 서경 인근으로 육박해 들어 오자,

하는 일 없이 자리만 높은 놈들이 늘 그러하듯이, 신속하게 자체적으로 항복을 결정하였고, 항복 문서를 거란으로 보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지채문은 분기탱천하여, 즉시 항복 사절을 추격하여 살해하고 항복문서를 불태웠으나,

대국의 천자는, 이제야 정신을 차린듯한 고려 조정의 거짓 항복을 믿고, 지멋대로 서경 유수를 새로 임명하는 등, 서경 접수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를 알 리 없는 지 채문은 뒤 이어 도착한 탁 사정의 대군과 합세하여 서경의 혼란을 진압하였는데,

바로 다음 날 서경을 접수하기 위한 거란의 선발대가 도착하였다.

탁 사정의 새로운 서경군은, 멋도 모르고 희희낙락하는 이넘들을 몽땅 도륙하였고,

이러한 기막힌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지도 모르고, 유유자적하며 뒤 따르던 신임 유수의 본대마저 몰살시켜버렸다.

마치 잘 짜여진 각본 처럼,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난 탁 사정에 의해 서경이 구원된 셈이었는데,

만일 탁사정이 단 하루만이라도 늦게 도착하였다면, 거란이 서경을 접수했을 공산이 크고

그랬더라면 ​이후의 전쟁 양상 또한 크게 달라졌을 것이므로, 우리 입장에서는 하늘이 도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나,

농락당한 꼴이 된 거란 하늘의 아들은 크게 노하였고총공격을 명하였다.

 

분노한 거란의 공격은 당연히 거칠었으나,

서경의 구원자 탁 사정은 안에서 방어만 하기보다는 성을 나가 거란군을 요격하겠다는 대담한 전략을 내어 놓았고,

군민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주력을 이끌고 서쪽문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이 인간이 성문을 나가자 마자 무엇을 보았는지, 거란군 방향이 아닌 남쪽을 향해 돌진하였고 그길로 도주하고 말았다.

이게 무슨 신출귀몰한 작전인가 하고 어리둥절해 하던 거란군은 이내 별 것이 없음을 알았고,​

덕분에 양동작전을 위해 동문으로 나갔던  대도수만 집중공격을 받아 포로가 되고 말았다.

1차 침입 때에도 소손녕을 혼내 주었던 ​ 발해 왕자 출신의 맹장이 별 이상한 인간 때문에 포로가 되었으니 얼마나 분통이 터졌을까?​

탁 사정... 이 놈의 뇌구조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어찌 되었건, 하루 만에 지휘부와 주력군이 증발하는 황당한 사태에 직면한 서경은 패닉상태가 되었으나,

다행히 강 민첨 등 중간급 간부들이 정신을 차리고 분전하여 간신히 함락을 막을 수 있었다.

통주에 이어 고려군의 허리가 위력을 발휘한 쾌거였고, 고려에게 주어진​ 또 한 번의 천운이라 할 수 있었으나,

닭 쫒던 개 꼴이 된 거란의 천자는 고려의 하늘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한편, 여전히 거란의 하늘에는 관심이 없는 흥화진의 양규는, 항복하라는 대국 천자의 지엄한 명을 가볍게 묵살하고,

정예라고는 하나, 단 700기에 불과한 병력을 이끌고 곽주를 탈환하는 기염을 토하였으며,

통주까지 작전구역을 넓혀 나갔다.

양 규가  이 난리를 치는데도 무로대에 남았다는 20만은 짹 소리도 없었던 것으로 보아 

이넘들은 전사들이 아니거나 일차 침입 때처럼 허풍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징기스칸도 전투병력이 20만을 넘지 못했고, 대륙을 집어삼킨 청도 20만 정도 였는데

거란 주제에​ 40만은 아무리 봐도 무리이다.

40만이든 20만이든, 서경 함락에 실패하고, 고려 내 유일한 근거지인 곽주마저 상실한 거란의 하늘은 울고 싶었을 것이다. 

분통이야 터지지겠지만, 이러한 상황 전개는 거란의 위기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제 정신이 박힌 최고 지도자라면 철군을 심각히 고려하거나, 여의치 않더라도 최소한 확전을 막고 협상을 시작했어야 하지만,

엄마의 치마폭에서 놓여난지 얼마 안 되는 이 젊은이의 뇌 구조는 그러한 냉철한 판단을 할만큼 성숙하지 못하였는지,

서경을 방치한 채 개경을 향하여 남하하라는 열받은 감정을 따르는 명령을 내리고 말았다.

딴에는 저항이 심한 곳을 우회하여 적의 종심을 타격하는 유목민 군대의 유서 깊은 전략을 택한 것인데...

그러기엔 보급선이 너무 길어져 있었다.

이 꼴을 본 고려의 조정은 강감찬 등의 주장으로 끝까지 항전할 것을 결의 하였으며 ,

전쟁에 별 도움도 안 되면서 괜히 어정대다 포로라도 되면 아주, 매우, 많이.... 골치 아파지는 

아직 어리버리한 미래의 명군 현종을 개경에서 치워버리기로 결정하였는데,

​군사적으로는 상대의 무리를 응징하는 타당한 전략이었으나,

멋도 모르고 왕위에 올랐던 현종에게는 고생 길이 훤하게 열린 결정이었다.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최근글




새댓글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