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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 제 4 대 광종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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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종비 대목왕후 황보씨는 광종의 이복누이였다.

성씨가 다른 것은  출생의 비밀 때문이 아니라태조가 자식들에게 성씨를 부여할  아들들은 왕씨로, 딸들은 어머니의 성씨를 따르게 하였기 때문에, 태조의 4 신정왕후 황보씨의 딸은 황보씨가 된 것이다.

 황보씨가 족내혼으로 이복 오라비와 결혼하였는데남편이 덜컥 왕이 되는 바람에 황보씨 왕후가 되었다.

  

족내혼은 가문의 부와 권력의 누수를 방지하기 위해 같은 가문 사람들끼리 결혼하던 고대의 풍습이었고

모계의 전통이 강했던 신라에서는 흔한 일이었으므로, 그냥 왕씨로 통일해도 되었을 텐데 태조는  이리 해괴한 일을 벌였을까?

노골적인 신라 왕실의 근친풍습이 중국을 비롯한 북방의 관습과 달랐고원래   놈들은 지들이 선진문명이라고 우기는 법이므로  중국 놈들은 근친혼을 야만적이라고 멸시하곤 했다

미약한 왕권을 그나마 유지하고 외척의 발호를 막기 위해서는 근친혼 만한  없는데되놈들은  경멸을 해대니   없이  가리고 아웅하는 방법을 택했다는 이야기이다...아닐 수도 있다.

속사정이야 뭐가 되었건 고려는 이러한 고심이 필요할 정도로 왕권에 비해 호족들의 세력이 막강한 나라였다.

태조는 대단한 능력의 창업 군주였으므로각지의 기세등등한 호족들을 달래고 어르면서 끌고 나갔으나,

강력한 왕권을 행사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고 그저 장악력이 있는  두목 정도의 권위였다.

정비 6 , 후비 23 ... 29명의 왕후들은  태조의 미약한 왕권을 가려주는 장식들이었으나뒤를 이은 자식들에게는 가시 면류관에 다름 없었고기세등등한 호족들에게 둘러싸인 옥좌는 찬란한 영광의 자리가 아니라 벼랑 끝에 마련된 위험천만한  자리였다.

 위험한 옥좌는 늠름한 기상의 혜종을 어리석고 병약한 왕으로 만들었으며저돌적이고 야심찬 성격이었던 정종을 천둥에 놀라 죽어버리는 졸장부로 만들었으므로광종도 빛나는 왕이 아닌 미친 왕이 될 수도 있었다..

따라서 광종에게 개혁이란 왕의 권위니 이상적인 사회니 하는 한가한 형이상학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과 직결되는 절박한 실존의 문제였다.

조폭 연합체 비슷한 체제 하에서멍하니 있다가는 이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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