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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 제 34 대 효성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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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승경

성덕왕의 둘째 아들로서 질풍노도의 시기인 16 ~ 7세 정도에 즉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버지처럼 모후의 섭정을 한 3 ~ 4년 받았더라면 좋았을 터인데,

안타깝게도 모후인 소덕왕후는 동생인 경덕왕을 낳고 바로 죽어 버렸다.

어쨌든 태자였으므로 아버지 성덕왕의 뒤를 이어 737년에 왕위에 올랐다.

즉위하자마자 당의 책봉을 받았고 도덕경을 하사 받았다는데,

도덕경에서 뭔가를 얻을 수 있는 나이는 아니었고... 그저 당의 호의를 받은 정도로 만족했을 것이다.

즉위 3년째에 첫 부인 박씨와 이혼하고 김 순원의 딸을 왕비로 맞이하였다 하는데

모후인 소덕 왕후도 김 순원의 딸이므로 이모를 왕비로 맞이한 것이다.

원래 족보가 엉망인 신라에서 이 정도는 양호한 것이므로 못 봐줄 정도는 아닌데..

문제는 결혼 후  두 달만에 동생을 태제로 삼은 것이다.

이제 갓 20에 도달했을까 말까인 신왕이 새 장가를 갔는데 동생을 후계자로 지명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타당한 일일까?  

이듬해에는 왕이 총애하는 후궁을 왕비 일족이 죽이는 사건이 발생했고 그러자 후궁의 아비가 반란을 일으켰다 하는데..

태제를 임명할 때는 가만히 있던 왕비 일족이, 왕이 총애한다고 후궁을 잡아 죽였고, 후궁 일족은 복수를 암살이 아닌 반란으로 하였다?

왕비의 일족이라면 그 아비인 김 순원을 말하는 것일 텐데,

이 김 순원이 효소왕 때 반란과 연루되어 파직되었고, 성덕왕에게 딸을 후비로 들여보내었던 그 김 순원이라면.

그는 전 왕과 현 왕 모두에게 장인이면서, 현 왕과 다음 왕 모두의 외할아버지가 되는 막강한 외척이므로 당대의 실세였을 것이고,

태제 임명을 비롯한 효성왕기에 발생한 모든 사단의 원흉이었을 것이다.

...고려 때 이자겸의 대선배 쯤 되는 인물이라하겠다.


진실은 항상 안개 저 편에 있으므로 뭐가 뭔지 알 수는 없으나, 뭐가 되었건 효성왕 주변이 안정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하겠고,

재위 6년째인 742년 5월에 사망하여, 짧은 인생을 마쳤다.

 

모후의 이른 부재가 애를 이렇게 만든 것인지, 아니면 천성적으로 몸이 약했는지는 모르지만,  

아직 훈육과 보호가 필요한 나이에 왕이 되어,

외척 세력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제명대로 못 산 것이 아닌가 하여 보기에 안쓰럽다.

시호가 효성인데, 무슨 효를 이루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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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신비님의 댓글

시작 부분에 이 왕이 언제부터 언제까지 재임했는지, 적어주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아래 처럼....

신라의 제34대 왕(재위 737∼742) : 8C 전반 통치

아온님의 댓글

음... 좀 딱딱한 듯하여...
역사에서 연도는 중요하지만 흥미를 잃게 만드는 원흉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즉위년도만 언급을 하고 나머지는 연대기처럼 기술을 하여 옛날 이야기처럼 풀어가고 있습니다.
전공을 하고 논문을 쓰는게 아닌 이상 좀 편안하게 바라보면서,
인물 중심으로 이 양반 시기에는 무슨 일이 있었고,어떻게 대처를 하였으며,또 왜 그렇게 하였을까를 자유롭게 상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게 제가 역사를 즐기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연도는 넣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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