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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 제 32 대 효소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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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이홍

신문왕의 아들로 6세의 나이에 왕위에 올라 16세에 사망했다.

어린아이가 정무를 살필 수 있을 리는 없으므로 재위 기간 내내 모후가 섭정하였을 것이다.

   

692년에 아까운 나이로 일찍 죽은 아버지의 뒤를 이었으며

재위 3년에 신궁에 제사 지내었다.

이무렵 김인문이 당에서 66세의 나이로 죽었다.

4년에 서시전과 남시전을 설치해 각각 서시와 남시를 관할케 했다.

7년에는 일본으로부터 조공을 받았고, 발해가 건국하였다.

이듬해에 당과 화해하며 조공했는데, 발해의 건국 덕분에 측천무후를 설득하기 쉬웠을 것이다.

9년에 이찬 경영의 모반을 진압했으며, 이와 연루된 중시 김 순원을 파직했다.

그리고 재위 11년 만에 사망했다.

  

진평왕의 옥대 장식이 실제 용임을 간파하고 하나를 연못에 넣어 용이 승천하는 것을 목격했다고도 하고

잠시 잃어버렸었던 만파식적을 되찾아 만만파파식적이라고 개명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이러한 일화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총명한 아이였던 것 같기는 하나... 너무 일찍 죽었다.

당연히 왕 노릇이 뭔지도 모르고 모후와 대신들이 하자는 대로 하며 살았을 것이다.

따라서 아버지 신문왕이 노심초사하여 확립한 왕권은 무용지물이었을 것이고, 귀족세력의 대두도 막지 못했을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측천무후가 죽은 효소왕을 위해 정무를 2일간 맡지 않았다고 하는데 왜 그랬을까?

발해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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