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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 ( 토번 ) : 가르친링 : 나당전쟁 승리의 최고 공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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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친링

토번의 전성기를 연 명재상 가르통첸의 아들로서 군권을 쥔 실세였다.

당시 티벳은 상당한 강국이었으나 동쪽으로의 진출은 당에 의해 막혀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당 고종이 즉위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공격하는데 올인하자 이 동네에 힘의 공백이 발생하였고, 

그 틈에 가르친링은 서역의 4개 주요 도시인 안서사진을 공격하여 고종의 뒤통수를 제대로 때렸다.

이에 열받은 고종은 동쪽이 일단락된 669년 고구려 정벌의 영웅 설인귀에게 10만 군사를 주어 토번을 공격하게 하였는데,

아마도 이 겁 없는 서쪽 오랑캐쯤은 쉽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설인귀의 당군은 명성에 걸맞지 않게 대비천 전투에서 대패하였고, 설인귀를 포함한 주요 지휘관 모두가 포로가 되는 기막힌 신세가 되고 말았다.

가르친링은 포로가 된 당나라 장수들에게 다시는 까불지 말라며 훈계를 한 후 돌려보냈고, 여세를 몰아 서역 경영의 핵심인 안서사진을 점령해 버렸다.


당이 이렇게 서역에서 발목이 잡히자, 문무왕은 요동을 선제공격하며 나당전쟁의 포문을 열었는데,

토번 때문에 정신이 없는 와중에 벌어진 나당전쟁은,

문무왕이 성을 거점으로 삼아 끈질기게 저항하는 한편 화전양면 전술을 사용하는 바람에  

고종과 측천무후를 더욱 정신 사납게 했고,

그러는 사이 가르친링은 서역을 거의 영토화하였다.

이러한 상황 때문인지 676년 기벌포 전투를 끝으로 당은 더 이상의 공세를 중단하고 한반도를 방치하였으나,

쿨하게 신라를 인정한 것이 아니라 일단 토번부터 정리하자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나름 선택과 집중의 묘를 살려, 678년 이경현, 유심례 등에게 18만 대군을 주어 티베트를 침공하게 하였으나,

또 다시 가르친링에게 걸려 승풍령에서 박살났고 유심례는 포로가 되었다.

이 경현이도 포위되어 다 죽게 되었으나, 백제의 유장 흑치상지에게 구원받아 구사일생하는 망신을 겪었다고 하는데,

결국 청해성 전 지역이 토번의 영토가 되고 말았다.

689년, 고종이 죽은 후 측천무후는 위대가, 염온고 등에게 10만 가량의 병력을 주어 안서사진의 회복을 노렸으나,

다시 막아선 가르친링에게 궤멸되었다.

고종의 그늘에서 벗어나 처음 시도한 원정에 실패해서 열 받았는지, 측천무후는 위대가를 유배시키고 염온고는 참수했다 한다.

이 지경이었으니 한반도 재 침공은 꿈도 못 꾸었고 덕분에 문무왕은 나라를 안정시킬 수 있었다.

한반도에서 손을 뗀 측천무후는 티벳을 상대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고

692년 왕효걸에게 30만 대군을 주어 돌궐군과 함께 안서사진으로 진격하게 하였다.

전력을 다한 당의 공세는 확실히 대단해서, 왕효걸은 가르친링의 아우 가르다고리가 이끄는 티벳의 15만 대군을 궤멸시켰고, 안서도호부를 부활시킬 수 있었다.

이로써 상황은 역전되었고 토번이 위기에 몰리게 되었으나, 토번에는 아직 가르친링이 건재하였다.

가르친링은 698년 3만의 군사로 반격을 시작하여 왕효걸의 30만 대군과 맞섰으며, 이듬해 40만으로 증원된 당군을 소라한산에서 거의 전멸시켜 버렸다.

이 전투로 인해 당의 군사력은 급격하게 약화되었고, 국서에 토번을 '서쪽정부'라고 칭할 정도로 위세가 실추되었다.

이후에도 크고 작은 전투가 계속되었으나 단 한 번도 가르친링을 이길 수 없었다고 한다.

 

가르친링의 활약으로, 티벳은 위상이 높아지고 영토가 넓어지는 등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었으므로,

공신이라고 할 수 있는 가르친링 일족의 위세가 하늘을 찌르게 된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상황은 왕권강화를 노리는 야심에 찬 젊은 군주에게는 엄청난 부담이 되었을 것이고,

필연적으로 갈등이 야기되었을 것이다.

결국 역사상 흔한 예처럼 왕은 숙청의 칼날을 들었고, 무자비한 피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가르친링은 국가를 위해, 자신에게 반역의 혐의를 씌우는 군주에게 대항하지 않았고,

청해호 근처에서 자결하여 그 신화와 같은 일생을 마쳤다 한다,

가히 티벳의 이순신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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