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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7 : 책계왕, 분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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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계왕

고이왕의 맏아들로서 체구가 장대하고 의지가 굳세었다고 한다.

책계왕 시대는 중국 대륙에서 삼국시대가 끝나고 사마씨의 진이 천하를 통일함에 따라 한군현 세력이 부활하는 시기였다.

팽창하는 한군현 세력에 대한 대응으로 주변국들의 이합집산이 심하였을 것이나 기록이 부실하여 알기는 어렵다.

 

책계왕의 왕비는 대방왕의 딸 보과인데, 고이왕 외교의 결실일 것이다.

북방의 위협에 대한 대비로 위례성, 아차성, 사성 등을 수리 또는 수축하였고,

고구려의 침입을 받은 대방에 구원군을 파견하여 고구려와 관계가 악화되었다 하는데....

당시 고구려의 사정이 대방과 싸울 수 있었는지는 논란이 많다.

재위 13년째에 낙랑의 지원을 받는 동예와 싸우다 전사하였다 한다.

이 양반도 쉽지 않은 인생을 살았을 것이나,

기록이 단 5줄에 불과할 정도로, 안습이라 자세한 사정은 모른다.

기록된, 백제의 전사한 왕 일호이다.

 

분서왕

어려서부터 똘똘하고 몸가짐이 발라서 부왕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부왕인 책계왕이 전사하자 왕위를 계승하였다.

당연히 아버지의 원수인 한군현 세력과는 열심히 갈등하였을 것이고,

결실을 맺어 재위 7년째에  낙랑군의 서쪽 현을 점령하였으나 자객에 의해 바로 살해되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가 보낸 자객이었는지는 설이 분분하다.

낙랑에서 보냈다고도 하고, 다음 대 비류왕이 보냈다고도 하고,

심지어는 신라에서 보낸 8살짜리 황창랑에게 살해되었다는 말도 있으나,

8살 짜리는 좀 심하고, 적국에서 보낸 자객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으나, 당연히 대비가 있었을 것이고 기록되었을 것이다.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고이왕계의 독주에 불만을 품은 세력의 작품이 아닐까 한다.

뭐가 됐건 책계왕의 뒤를 이어 분서왕마저 급사함으로 인하여 고이왕계는 몰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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