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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 부흥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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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고구려는 그냥 죽지 않았다.

유민들은 안시성, 요동성, 신성 등을 중심으로 계속 저항하였다.

지금까지 고구려를 지켜왔던 이 위대한 성들의 주민들...이들은,

저 철없는 연가네 3형제 따위가 말아 먹을 수 없는, 진정한 고구려인들이었고 

고구려의 혼이었을 것이다

 

여러 갈래의 부흥운동 중 대표적인 것은 검모잠과 안승의 부흥운동이었다.

검모잠은 670년 궁모성에서 군사를 일으킨 후 황해도 방면으로 이동하,

왕족인 고안승을 고구려왕으로 추대하였고 신라에 도움을 청하였다 

당시 신라는 나당 전쟁을 수행 중이었으므로 안승을 고구려왕에 봉하고 고구려 부흥군을 지원하였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된 것이다

당은 당연히 부흥군을 제거하기 위해 움직였고...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우던 중 의견이 갈리면서 안승이 검모잠을 살해하였다.

똘똘뭉쳐 싸워도 될까 말까한데....이 꼬라지면 될 일도 안된다.

안승은 결국 신라로 날랐고 이로써 부흥운동은 사실상 끝이 났다. 

에휴... 백제도 그러더니...


투항한 안승은 보덕국왕에 임명되었고 매소성 투에도 참여하여 공을 세우는 등 신라에 적극 협력하여 

진골 대우를 받았으며 이후 고구려계가 백제계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게 하는데 공헌하였다.

그리고 이 고구려계는 나중에 왕건이 고려를 세우는 기반이 된다.

 

당나라로 압송었던 보장왕도 고구려 부흥운동을 벌였는데 비록 사전 발각되긴 하였으나

그 후예가 요동에 소고구려를 세워 고구려의 명맥을 이어 나갔다는 설이 있다.

안승과는 별도로 만주에 잔류했던 고구려인들도 반항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발해의 건국으로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발해

비록 말갈인들이 주축을 이루기는 하였으나 고구려의 정통 후예임을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고구려가 그렇듯이 발해도 우리 조상 국가들 중의 하나이고 우리 역사가 분명하다.

고구려도 마찬가지이지만 발해라고 해서 후예가 반드시 하나여야만 할 이유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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