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칼럼

아이나르카박 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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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나르카박Aynalıkavak조약은 1779년 3월 10일 이스탄불 아이나르카박 궁에서 오스만, 러시아 사이에 체결된 조약으로 정식명칭은 아이나르카박 권리중재조약(터키어:Aynalıkavak tenkihnamesi)이다.

 

 오스만 제국은 퀴췩-카이나르자 조약(1774)으로 300년동안 속국이자 끈끈한 유대관계를 형성했던-크림한국을 상실하였다. 크림의 칸, 데블렛 4세 기라이가 오스만제국에 신속요청을 해오자 러시아는 이를 '퀴췩 카이나르자 조약에 어긋나는 행동'으로 여겨 그를 강제 퇴위시키고, 대신에 친러성향의 샤힌 기라이를 칸에 앉힌다. 그러자 쉬블림포르트Sublime Porte는 공식적으로 러시아의 내정간섭은 조약에 어긋나는 행위라는 입장을 밝혔다. 양국이 크림 한국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형세였다.

 그러한 신경전이 확전되는 것을 막기 위해 프랑스 대사¹의 중재로 두 제국은 아이나르카박 조약에 서명했으며, 조약의 주된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퀴췩-카이나르자 조약의 조항을 비준한다.

 2. 양 제국은 크림 한국 정치에 간섭치 않는다.

 3. 러시아는 크림한국에서 군대를 철수하도록 한다.

 4. ​오스만은 샤힌 기라이를 칸으로 인정한다.

 5. 러시아 상선이 지중해를 자유 통행하도록 보장한다.

 비록 조약이 권리중재의 성향을 띈다 해도, 크림한국 멸망(1783) 전후의 정치/외교적 상황을 보면 무용지물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러시아는 크림에서 중요한 일²이 터질 때 군대를 보내 내정간섭을 하는 등, 퀴췩 카이나르자 조약과 아이나르카박 조약의 내용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고, 결국 크림한국을 합병하고 만다. 오스만 역시 잃어버린 크림을 되찾으려 1787년에 전쟁을 일으키기까지 했으니 아이나르카박 조약은 휴짓조각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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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스탄불 주재 프랑스 대사인지, 러시아 주재 프랑스 대사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조약이 체결된 장소를 볼 때 멀리 떨어져있는 후자보다 전자가 더욱 알맞는 듯 하다.

2. 1781년 바하두르 2세 기라이가 반란을 일으켜 칸에 등극했을 때​ 러시아는 군대를 보내 샤힌 기라이를 칸에 복위시켰다. 이는 퀴췩-카이나르자 조약을 위반한 내정간섭으로 결국 러시아는 1783년 크림한국을 합병한다.

*글에서 언급한 쉬블림포르트는 ​높은 문을 뜻하는 프랑스어로 오스만제국 정부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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